지리산 반야봉 산행
*** 지리산 반야봉 산행 ***
-.일자 : 2025년 6월 4일
-.코스 : 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반야봉-성삼재(18.5km / 6시간 42분)
요즘 몰빵이 달라졌다, 생일 축하 모임 틈새를 이용해 지리산의 철쭉 산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쉬는 날에는 어떻게든 집을 나서야 하는 나로서는, 꽃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데, 선거의 선택과 조바심이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 술을 찾게 했고, 역사는 진보와 보수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지만, 개표 방송에서는 주체성도 없이 머슴처럼 스스로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워 과음을 했는데 몰빵도 나와 다르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산행 취소를 제의한다.
산행 후 친구들과 기분 좋게 축배를 들자는 심리에, 집사람에게는 산행을 나설 거라며 선빵을 날렸더니, 약속을 잡아놓고 밀어내기를 하고 있어 차선책으로 조계산을 찾고자 했는데, 몰빵이 집에서 출발한다고 하여 괜히 신경전만 벌였다.
차를 고쳤어도 신뢰성을 잃어 차선책으로 구례까지만 내 차로 이동하고 버스를 타고 성삼재까지 가자는 계획은 말을 꺼내자마자 묵살되고, 오늘도 순천에서 광양까지 이동해 온 몰빵에게 미안하다.
성삼재 초입의 가로수가 단풍이 든 듯 알록달록하고, 녹음이 드리워진 구불구불한 도로를 거슬러 올라 성삼재 주차장에 주차하는데 바람이 거세다.


등산 길목에서 고결함이 꽃말인 하얀 산목련 꽃이 반긴다.

노고단 대피소와 중계탑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잘 다듬어져 있고, 딱딱한 돌과 시멘트 대신 푹신한 보행로를 설치해 놓아 산문으로서의 배려도 있다.
연초록의 숲이 바다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다. 산 아래는 초록의 동색이 되었는데, 여긴 계절의 시간이 더디 가고 있어 새싹이 막 키워낸 연초록이다.

무넘이 고개를 지나고 돌계단을 올라 리조트만 같은 노고단 대피소에 들어선다.
화장실 옆에 또 다른 화장실을 신축하고 있고, 취사장에는 식수가 보이지 않지만 루프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여인의 여유로움이 산장을 럭셔리하게 격상시켜 놓는다.
저런 건 풋풋한 나잇대에나 가능한 것이고, 만추에 접어든 우리는 부지런히 걸어서 건강과 추억을 쟁여 놓는 게 상책이다.



연분홍의 병꽃이 도열하여 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숲을 벗어나며 천국의 문이 열리듯 올라선 노고단 고개에는 첩첩의 산릉이 펼쳐져 있고, 키오스크로 출입금지 구역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노고단을 향해 가파르지도 않은 나무 데크가 융탄자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탁 트인 시야에는 우리의 목적지인 반야봉이 걸려 있는데, 저렇게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르기가 결코 쉽지 않다.




풍경이 다큐에나 나오는 이국처럼 아름답다. 자연 보호를 위해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보호되고 있는 철쭉과 산상고원의 야생화들은 참 예쁘다.
떨어지지 않으면 꽃이 아니고,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닌데, 산철쭉은 연분홍 꽃잎을 떨구고 있고 바람은 쉼 없이 불어와 가늠할 수 없는 바다처럼 새파래진 풀숲을 헤집어 춤추게 한다.
향긋한 바람이 불어 오는, 이래저래 오늘은 축제의 날이다.






바람에 날라가지 않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산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전망대 데크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진 산줄기와 섬진강이 흘러 들어가는 남해를 조망한다.
지리는 광활하고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노고단 고개로 내려와 돼지령으로 향한다.
우리의 입산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계절을 붙잡고 있는 연초록의 숲길에 살랑이고 있는 바람이 무척이나 좋다.

돼지령으로 이어진 등로는 관목들이 자라 숲이 되었고, 키가 훌쩍 자란 철쭉 터널이 길을 인도하고 있다.

여전히 신록이 우거진 숲길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맑은 공기가 좋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전설과 이야기를 전해 준 곰이 지리산의 주인이 되고, 사람들의 출입을 경계하여 예전의 생태계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 전국토의 산을 탐험했던 우리들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갔었던 그때의 자신감 회복을 원하지만 노쇠하여 그 시절만을 추억 할 뿐이다.


돼지령에 근접하면서 멧돼지 떼가 자주 나타났다는 설화에 몰빵의 전설 따라 삼천리가 시작된다.
유년 시절, 동네 어른에 의해 개로 착각한 여우로부터 목숨을 구한 일, 살쾡이를 약초 괭이로 잡아 지게에 지고 왔다는 이야기들이 침묵 속에 묻혀 간다.
우리들만의 산길이다.

고즈넉한 산속의 침묵을,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가 현실로 이끈다. 침묵이 금일까? 안전자산인 국제 금값이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금광에서 채광을 하듯 지금을 축적하고 있어 하산할 때는 갑부가 될 것만 같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고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축인다. 샘이 있는 푸른 정원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끈적임을 없애 주어 기분이 상쾌하고, 약수 한모금을 마시니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여지껏 정원을 걸어왔다면 지금부터 등산이 시작된다. 요즘은 일상의 것들에서도 점점 기억이 없어져 가는데, 이 오름길은 참 낯설게만 느껴져 거리를 종잡을 수가 없다. 임걸령 쉼터가 있어 중간쯤 올랐다는 걸 어림짐작하고, 묵묵히 걸어 노루목에 올라선다.

몰빵이 토끼굴을 찾듯 계속 주변의 바위 틈새를 살핀다. 예전 산에서 술이 자연스러웠던 때에 후답자들을 위해서 미션을 하듯 숨겨 놓았던 술병을 지금에서야 기억해 낸 것은 기적이지만, 설마 찾는다 해도 약이 아닌 독이 될 것 같다. 바위에 걸터앉아 토마토 하나씩 베어 물며 산하를 내려다본다. 너울진 첩첩산중이 삶의 터전을 메우고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삼도봉과 반야봉의 길목이 되는 노루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꼬마는 무언가 꺼림칙한 듯 반야봉 오르막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모와 대치하고 있어, 산행을 하며 아이들을 닦달하였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산을 오르다 보면 누구나 체력적으로 힘들고 마음이 지치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모처럼 몸에 저항이 온다. 꼬마가 부모와 실랑이를 벌였던 이유다.

쉴 새 없이 불어오던 바람은 멀찍이 물러나 있고, 몰빵은 스틱으로 늘어난 몸무게를 버티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쉼터의 산객은 집에서 새벽 3시에 출발했고, 우리는 7시 50분에 출발해 여기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잊고 지내다 친구 덕에 찾게 된다.
고사목으로 기후 변화가 현실화되었고, 병꽃이 계절을 이끌고 있어 이미 철쭉 군락지에는 마지막 꽃잎조차 남아 있지 않아 철쭉 산행의 의미는 없어졌다.


홀로 100대 명산 인증을 남기고 있는 틈새에서 우리도 정상 인증을 한다.
지리산의 주능선과 바래봉으로 펼쳐진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라면과 김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바람이 시원하단 몰빵과 달리 난 추워서 머물 수가 없다.






내림길은 역순이다. 오를 때보다는 풍경이 있어 지루하지가 않고, 반야봉 삼거리에서 노루목까지의 체감 거리는 이정표와 달리 너무 멀게 느껴지고 있다.


올랐던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서 주능선인 노루목에 접속하고 임걸령을 향해 내려가는데, 그새 길이 낯설고 발밑에만 집중했던 오름길과는 달리 내림길의 트인 시야에 눈이 게으름을 피운다.
임걸령 쉼터에서 달달한 커피로 당을 보충하고 달콤한 바람에 몸을 말린다.


임걸령을 지나고 산상정원의 산책로를 따라서 돼지령으로 들어서고 노고단을 조망하며 좌표를 확인한다. 노고단 사면길이라 이젠 얼마 남겨 놓지 않았는데, 아가씨가 바위를 기어가고 있는 게 포착된다.
산행은 오로지 내 발로 걷는 것이기에 근육이완제와 포도당을 건넬 뿐 딱히 해줄 방법이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산행의 본질이니만큼 이런 고통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지선상에 돌탑이 보여 금방일 거라 여겼던 노고단 고개가 이정표에 0.5km나 남아 있어 몰빵은 여성을 함께 데리고 오지 못함을 자책 하는데 곧 회복될 거라며 말리고 있는 내가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인다.




노고단 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놀며 즐기자는 것이 18km를 넘기고 있고, 연이은 산행에 몸은 마음의 갑작스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보니 피곤했던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 졌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 있다고 퇴직 후의 제2의 출발점에서 힘겨워했는데, 이렇게 틈틈이 놀아도 되니 다닐수 있는 직장이 있어 다행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 내내 날씨가 너무너무 좋고, 연신 달콤한 바람으로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없지만 주차비가 11,900원이나 되어 두 사람의 버스비 값이 넘지만, 로스 시간 없는 것으로 퉁친다.

바람은 들녘에도 불고 있고 산의 나뭇잎들을 뒤집어 놓고 있다. 내일이 망종으로 계절은 순서대로 진행되어 , 들녘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었고 모가 심어져 있다.
브레이크타임 해제에 맞춰 광주에 있는 주군을 불러 들이고 오늘의 무용담을 설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