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 수확 하던 날 **
-.일자 : 2025년 6월 16일
어릴 적 우리 가족의 삶은 온통 농사에 매달려 있었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졌고, 비닐하우스의 경작지는 해마다 옮겨야 했다. 짚으로 포트를 만들어 모종을 심고, 매일 거적을 덮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온도 변화에 힘들어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친 보리타작과 해마다 반복되던 태풍에 의한 벼 쓰러짐, 실익이 없었던 양파 재배는 어린 마음에 농사에 대한 거부감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은퇴 후 전원생활이나 농촌에 대한 낭만은 나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농사일을 놓지 못하고 밭일을 하시며, 수확한 농산물을 핑계 삼아 자식들을 부르시곤 한다. 도와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자책이 쌓여 괜히 큰소리로 마음을 숨기려 할 때가 많고,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앙금이 쌓여 가고 있다.
어머니께서 그나마 복이 있으신 것은, 매주 어머니의 근황을 묻고 맛집 투어를 함께하는 여동생과, 먼 거리에서도 늘 찾아와 건강을 챙겨드리고 명소를 함께 다니며 적적함을 달래드리는 동생 부부가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이중적인 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밭에서 일하실 수 있는 어머니의 건강이 큰 위안이 된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그리고 그 삶을 이어가고 계시기에, 나는 오늘도 마음 한켠이 든든하다.
오늘만 해도 나는 나만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수영을 마치고 로커룸에서 휴대폰을 꺼내니 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중이라며 밭에 와서 가져가라고만 하신다.
자식에게 혹여 부담이 될까 봐 이 한여름 같은 퇘약볕에서도 혼자 수확을 다 해놓고 가져만 가라는 것도 괜히 귀찮고도 미안하다, 왜 이런 무더운 날씨에 말없이 홀로 밭일을 하셨는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천륜인 만큼 성질이나 내지 말자며 밭으로 달려간다. 정작 어머니의 몫은 비닐봉지 하나이고, 나는 몇 박스에다가 상추, 당근, 파 등이 트렁크에 한가득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한대인데, 내 자식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마땅한 도리를 요구하고 있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조금 거들었다고 생색을 내고 있는 나, 밭에서 어머니집에까지 오는 것도 자식 덕분에 차를 타고 왔다며 고마워하는 어머니. 우리는 천륜으로 맺어진 공생관계이지만, 어머니는 무한 희생이다.
자식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어머니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지 않고 알을 돌보다가 죽게 되는 문어와도 같은 숭고한 삶을 살고 계신다.
효도라는 건 지금 당장 해야 하는데, 매번 가슴만 아리는 이 무거운 헤어짐이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모르겠다.
환갑이 넘었어도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의존증은 더해만 간다.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깜상의 휴일 알차게 즐기기 (0) | 2025.06.21 |
---|---|
성황 구봉산 운동 (0) | 2025.06.19 |
붉은 오월에 일상... (0) | 2025.05.20 |
25년 깜상의 봄나들이(포스코수련원&선암사) (2) | 2025.04.26 |
여수 영취산 진달래 & 섬진강 벚꽃 (3)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