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랑길 도장찍기(서해랑길 47코스,서해랑길 46코스) ***
-.일자 : 2025년 5월 3일
=== 서해랑길 47코스(변산해수욕장-격포항 14.3km) 중 일부 ===
펜션이 복층 구조이고 2층을 선점한 몰빵의 코 고는 소리가 주변의 소음을 흡수해버린 듯 옆에 주군의 숨소리가 새근거리는데 어쨌든간 날은 밝았습니다. 왜 이놈의 일기예보는 틀리지도 않고 모처럼의 서해랑길을 방해하는지, 거리가 휑하고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광양에서 출발하는 김 하사의 도착 시간에 맞춰 라면을 끓이고 소주로 경직된 근육들을 풀어 서해랑길 투입에 준비합니다. 조력자가 있어 출정 행사가 좀 길어졌고, 하필이면 송포항 직전의 산속에다가 필수 코스를 만들어 놓아서 방향 감각의 상실로 주변만을 맴돌다가 시간을 허비합니다.
바닷가라 비바람이 몹시도 몰아치고 있어 김 하사님의 눈길이 우리를 쫓고 있습니다. 어차피 흐려서 볼 것도 없어 차라리 걷는 게 편한데, 숲속은 바람이 없어서 걸을 만합니다.
바람의 마중과 함께 백사장이 길게 펼쳐집니다. 비에 젖은 나그네들은 펜션의 온기가 그립고, 일상에서 벗어나 고기를 굽고 이야기를 나누는 캠핑카의 낭만이 우릴 더 초라하게 하는 해변입니다.
완충 지대를 벗어나자 다시금 고사포 해수욕장입니다. 고사포 해수욕장에 야영장이 생기기 전인 소나무만이 빼곡했던 때부터 이곳을 다녔던 터라서 이곳은 살갑지만, 그때를 회상해볼 여유조차 없이 텐트 존의 미로를 헤쳐 나갑니다.
이곳의 철조망은 텐트장의 영역 표시인지 군사시설의 유물인지가 궁금합니다. 해수욕장 출입이 자유로운 이곳에서 철조망은 과거 해안경계 등의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것인데, 폐철로처럼 남아 경관을 해칩니다.
마눌님이 고생하지 말라고 방수 신발을 사주었는데 발등이 아파 고문 수준이라서 김하사의 신발로 교체했지만 전달된 통증은 그대로입니다. 짝짝이 양말을 신어도 발에 물집 하나 없이 쌩쌩한 주근이 부러워집니다.
바다는 비를 포용했고 우리는 비를 튕겨 내고 있습니다. 성진항에 정박된 배들은 긴 여정 끝에 찾아온 안식처처럼 평온해 보이고, 김하사는 우리의 보호자처럼 적시적소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촉촉히 젖어든 몸을 차에 실습니다. 필수 경유지 3개를 찍었고, 오름길의 계단에는 수문에 몰린 물고기 떼처럼 도보꾼들이 있는데, 차로 이동하면서 해변로와 나란히 하고 있는 서해랑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운 건 왜일까요?
=== 서해랑길 46코스(격포항-궁항-해양수산-도정리 모항 10.1km) 중 일부 ===
적벽강에서 내립니다. 비는 의지를 시험하려는 듯 거세졌고, 후줄근한 우릴 바라보는 김하사의 눈길은 더 애처롭습니다. 붉은 색을 띠어야 할 적벽은 비에 젖어 시커멓고 경치도 별로인데, 당나라 성을 쓰는 주군이 뜬금없이 적벽강을 아느냐 묻습니다. 나도 삼국지에서 연합군이 바람이 부는 날 불화살과 불붙은 배로 조조군을 격퇴시킨 것쯤은 알고 있지만, 전통파 김씨이기에 말을 안 섞습니다.
서해랑길은 노랗게 유채꽃이 핀 수성당으로 들어가며 관광객들과도 함께 합니다. 이곳 용왕과 산신을 함께 모신다는 수성당은 부안 여행 시에 나의 산보 코스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자연의 신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져 있어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앞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 도로에 합류됩니다. 숙박형 프로그램도 있다는 변산반도생태탐방원을 찾아들기엔 우린 지금 너무 젖어 있습니다.
소노벨변산을 지나고 있고 곧 채석강이 있는 격포해수욕장입니다. 군산에 동생이 거주하고 있어 대명콘도 때부터 애용했던 소노벨변산은 매우 친숙하여 로비에서 커피 한잔하며 몸이라도 녹이려 했지만, 나의 의견에는 기피 현상이 있는 친구들이라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김하사가 대기하고 있을 격포항 주차장이 지척에 있으니 괘념치 않고 여인네 동상이 있는 해넘이 전망대를 넘어 격포해수욕장에서 또 하나의 코스를 마무리 짓습니다.
바다와 함께하는 제대로 된 서해랑길이나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어 괜히 격포항을 기웃거리다가 여객터미널에서 찻길이 막혀 되돌아 나와 해변길이 아름다운 궁항과 연포해수욕장을 차로 잘라 먹고 전북해양수련원으로 들어갑니다.
해변에는 솔섬과 해넘이 전망대가 있고 마실길과 함께 하는 길은 모항까지 4.7km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차에서 덮여진 몸이 훅 달려든 냉풍에 온몸이 떨려 와 앞만 보고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잖아도 알코올 주입이 안 되면 말수가 적어지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지켜가고 있는데, 이젠 제 살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 각개전투가 되어 도로에 올라섭니다.
조망되는 해안들은 어느 동남아의 휴양 분위기이고 몰빵은 프라이빗 해변을 가지고 있는 싱그릴라펜션 앞에서 기어코 머리에 꽃을 꽂고 경관 쉼터에서 박쥐처럼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그래, 미치자. 제정신이 아니어야만 이 현실에서 헤어날 수가 있습니다.
도로에서 해변으로 내려가고 데크와 흙길의 고운 해변로를 따라서 전망대를 만납니다. 평소라면 술 한잔 나누며 풍월을 읊거나 오침 때리기 딱 좋을 장소입니다.
모항해수욕장이 펼쳐지며 모항전망휴게소에 올라서고 보니 아무래도 지금쯤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서 종점인 대항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김하사를 호출하여 점심을 겸해 에너지 충전으로 몸을 덮입니다.
몸은 생각과는 달리 비를 피하고 온기 속의 휴식에서 안락함과 편안함에 적응을 하여버려서 더 이상 진행하는 의지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김하사는 한 구간이라도 더 진행시켜 보려 했지만, 즐기자고 왔다가 죽자고 진행을 했다가는 아예 주저앉을 수도 있기에 우리들의 노쇠한 몸이 이끄는 본능에 결국 귀가로 결정을 봅니다.
귀가의 이동거리가 짧아졌지만 그만큼 긴장도가 떨어져서 전부 기절하다시피 졸다 보니 순천이고, 가계의 브레이크타임을 밀고 들어가 염소탕으로 2박 3일의 해단식을 합니다. 길 위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팔도를 유랑할 수 있는 것은 전생에 무언가 하나로 엮여진 그런 인연이지 싶습니다. 기적은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고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 또 기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음에 또 걸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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