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북한산 백운대(구름과 함께한 산행)

camsang 2026. 8. 3. 16:59

*** 폭염 속 북한산 백운대, 구름과 함께한 산행 ***

-.일자:2026년 7월 28일
-.코스: 북한산우이역-백운대탐방지원센터-하루재-백운봉암문-백운대-용암문-대동문-소귀천계곡-백운산우이역(11.3km/ 5시간)


중부지방의 장마에 대비해 우중 산행을 준비했지만, 폭염이 도심을 덮쳤다. 폭염주의보와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내 휴대폰을 울리는 유일한 알림이다.
이런 폭염속에서 연일 산행을 강행하다 보니 안전문자가 공포탄이 아니라 ‘이러다간 온열질환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걸 절감한다.
그렇다고 숨만 쉬며 사는 것도 삶이 아니어서, 최대한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치려고 새벽에 집을 나선다.
아침으로 먹은 열무국수는 속이 얼얼할 만큼 시원하다.
오늘은 서울에 왔으니 조상을 뵙듯 북한산만큼은 찾아야 한다.

 


수도에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고 서울 시민과 우리 국민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신설동과 북한산우이역을 잇는 우이신설선에는 주민들 외에 산객 차림의 승객은 보이지 않는다.
역을 나오자 훅 덮치는 열기와 함께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게에서 김밥과 물을 구입한 뒤 도선사로 이어지는 도로를 오른다.

 


삼각봉 조망이 좋다는 만남의 광장에 이르렀지만, 구름이 덧칠을 하여 인수봉은 보이지 않는다. 계곡에는 명경(明鏡)처럼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나는 땀이 줄줄 흘러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서기도 전에 손수건을 쥐어짠다.


택시가 수시로 올라오기에 손을 들어볼까, 카카오택시를 호출해볼까 망설이다 이내 포기한다.


이곳 선운산장에서 김밥을 구입했다면 시원한 가게에서 잠시 쉬었을 텐데, 그런 정보가 없었다.아쉽다.

 


갈림길에서 능선길을 과감히 버리고 도로와 인접한 등로를 선택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계곡 가까이 걷는 편이 그나마 나을 것 같다.

 


주차장이 있는 백운대탐방지원센터까지 유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올랐다. 에너지 등급은 최하위이고 체력은 고갈되어 더 이상 진행하기에는 무리일 듯싶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는 배추 포기를 헤아릴 때나 쓰는 말이다.

 

 

 


아치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외국인이 나를 다시 일깨운다.
올라갈수록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일상적인 복장을 한 외국인들인데, 대부분 연인이나 친구들끼리다. 그들의 모습은 또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아니 우리는 원정 산행을 할 때 가이드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의 자유로운 산행은 대한민국의 위상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 자신의 능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럽다.
이들의 모습이 자극제가 되어 꾸역꾸역 하루재에 올라선다.
구름에 가려 인수봉은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이 사절단처럼 찾아왔으니 백운대에서 정상 회동은 해야겠다.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내 몸에도 땀이 흐르지만, 열사병에 대한 우려나 갈증에 대한 강박은 없다.
젊은이들이 영화 《투캅스》에나 나올 법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긴 계단을 올라 마주한 백운산장은 이름 그대로 구름이 머물고 있다. 물분무로 도심의 열기를 식히듯 안개가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냉방기를 가동한 듯 시원한 기운을 뿜어낸다.
탁자에 앉자 젖은 옷이 인주가 되어 저절로 엉덩이 도장이 찍힌다. 자동 인증은 됐지만, 강한 냉기에 몸이 으슬거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 발로 기어오르던 바위지대에 계단이 놓이니 두 팔이 자유로워지고, 의외로 수월하게 백운봉암문에 올라선다. 안개는 주변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물들이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 놓았다.

 


백운대 암반 오름길은 익스트림한 요소까지 더해진 등반의 종합 관문이다.
구름에 가려 아래가 보이지 않으니 공포감은 덜하지만, 그만큼 스릴도 반감된다. 구름 속에서는 날파리 대신 헬기 소리만이 들려온다.

 


바람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소리가 더없이 가슴 벅찬 백운대 정상이다.
한국인의 기상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하고, 나의 성취욕은 이곳 백운대에서 완성된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가 모두 일터에 투입된 시간, 일상에서 밀려난 나만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정상을 사수한다. 
한참을 머물렀지만 구름이 걷힐 기미가 없어 발길을 돌린다.

 


백운봉암문은 여전히 사극의 한 장면이 나올 법한 분위기다. 대동문으로 향하는 길은 물이 고이고 젖은 바위가 긴장감을 더한다. 산사태복구 작업의 헬기 소리가 사색을 방해해도, 나 홀로 걷는 산길이 좋다.

 


흐린 날씨에 햇살마저 완전히 차단된 푸른 숲길은 마음을 평온하게 이끈다. 노적봉이 어디인지 모른들 어떠하랴. 산길은 더위가 있었는지조차 잊게 하는 피서지가 되어 안락하게 이어진다.
이것이 힘겹게 산을 오른 보상이고, 이야말로 산행의 진수다.
하염없이 머물러도 싫증 나지 않을 산정이다.

 

 


도선사로 내려가는 용암문을 지나 성벽을 따라 대동문에 이른다.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되듯, 아무리 좋은 길도 계속 이어지면 단조롭고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별세상 같은 이 산을 내려가기는 싫다.
다리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조금만 더 진행해 보자. 보국문에서 정수폭포를 거쳐 정릉유원지로 하산하면 산행을 좀 더 즐길 수 있고, 시원한 계곡에 발도 담글 수 있는데 어떻겠니?”
하지만 다리는 처음 맺은 산행 조약을 지켜야 한다며, 더 이상 진행하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책임질 수 없다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김밥 한 줄로 다리를 달래 소귀천계곡으로 내려선다.

 


진달래능선에 진달래는 보이지 않는다.
능선의 등로는 산사태로 막혀 있어 소귀천계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임도와 같던 등산로가 돌계단으로 바뀌더니 마른 계곡으로 이어져 걷는 것이 점점 부자연스러워진다. 비가 올 때는 피해야 할 코스인데,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어디서 왔는지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자유로이 노닐고 있다.

 


정말 수도권에 이런 계곡이 있다는 것은 서울 사람들이 복받은 일이다. 땀만 씻어 내고 계곡에 발 한 번 담그려 했지만 철조망에 막히고, 약수 한 잔을 마신 뒤 날머리인 선운각으로 내려와 버린다.
젖은 옷도 갈아입고 땀도 식혀야 지하철에서 민폐를 덜 끼칠 텐데 아쉽다.

 


이제 서울둘레길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우이령공원지킴터를 지나 음식점들을 기웃거리다가 혼술의 어색함을 떨쳐 내지 못하고 상봉으로 돌아와서야 국밥에 소주로 뒤풀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