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면 중인 북한산 ***
-.일자 : 2024년 3월 8일
-.코스 : 북한산우이역-만남의광장-하루재-백운암-백운대-북한산우이역(8.6km / 3시간 31분)

어제 관악산 산행을 했다고 오랫동안 기름칠을 안한 로봇의 관절과 같은 삐걱 거림으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니 정신마저 개운치가 못하다.
그래도 상경을 했으면 조상을 뵙듯이 북한산 산행은 다녀와야 만이 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계획한 일정들을 순리 있게 해나갈 것 같다.
새벽부터 출근을 해야 할 아이들을 깨울 수도 없고 하여 부인을 대동하고 국수로 요기를 하고 지하철에 오른다.
어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봉산행에 잘못 올랐다가 북한산우이역을 찾아 가는 여정이 참 한심스럽다.

 


그래도 일찍 나선 터라서 여유가 있는데 전철 안에서 몇몇 보였던 산행 차림의 사람들 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어째 나 홀로 도로를 타박타박 걸어 썰렁한 우이동만남의 광장을 지나고 우이동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상으로 1km의 거리다.

 


도로와 나란히 하는 도선사길의 등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 간다.
온화한 날씨 속에 뽀송하게 말린 등로가 마을길처럼 정감 있게 이어진다.
바람 한 점이 없는 적막하기만 한 산길에서 나목 사이로 쏟아져 들어 온 햇살은 따스하여 병아리처럼 스르르 눈이 감겨 들고 있다.
걷는 것 외엔 할게 없는 잠잠한 길에 육모정능선이 잠시 잠깐 길동무가 되어 줄뿐이다.


평일에는 천만시민 모두가 국가경제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지 이곳은 다람쥐조차가 없는데 도선사가 조망 되고 산 아래에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까지 차로 올라 와 버렸으면 이제 남는 거리는 별거 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백운대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 온 길과 합류 되면서 사람들이 많아졌고 돌길의 지루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위가 그나마 등산로를 유지시켜 주지만 이 돌길을 지겹게만 올라 인수봉이 보이는 하루재의 쉼터에서 인수봉을 올려다 본다.
뭐야 이거, 등로에 하얀 눈이 그대로 얼어 있다.
같은 서울이라도 어제의 관악산과는 아주 딴판인 풍경에서 어찌해야 될지 판단이 안 선다.
지금 막 고향의 벗들과는 울 동네의 매화꽃축제장 사진을 공유했기에 이런 생경스런 풍경은 상상 하지도 못했다.

24년 3월 9일 광양매화마을

 


이곳만 벗어나면 되겠지 하는 아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인수암을 지나고 오름길로 들어서자 이젠 두발로 지탱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얼마 전 동료가 눈 산행에 나섰다가 넘어져서는 허리를 반쯤 접고 다니고 있는 터라서 더욱 경직된다.
하산 하신 분이 아이젠 없이는 불가하다며 구조대에서 안전장구를 대여 해준다고 알려 준다.
한번 다치면 오래 가는 나이가 되어 버렸는데 구세주다.
곁다리로 길쭉길쭉한 신체로 땡칠이처럼 거침이 없어 보이던 외국인들까지도 혜택을 본다.
세계 어느 수도권에서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산이 있어 누구든 자유 산행이 가능하고 또 이런 대여 서비스를 하여 주고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이젠 아이젠을 반납하여야 하기에 어쩔수가 없이 극도로 회피하는 회귀 코스로 바꾸어야 했지만 오후대의 시간은 확보 되었다.

 


얼음으로 덮인 깔딱고개를 두발로 성큼성큼 걸어 박물관이 된 옛 백운대피소에 올라 선다.
옷에서는 밥솥에서 취사가 완료된 것 마냥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오지만 이곳 까지의 산행에 숙성된 듯한 과정들이 참 기분을 좋게 한다.
이곳도 계절의 변화만은 어쩔수가 없어 처마에서는 빗물처럼 물이 떨어지고 있고 쉼터에서 쉼을 하고 있는 산객들은 어느 산막에서의 분위기다.
점심 먹기 딱 좋은 분위기지만 일단은 정상에 오르는 게 우선이다. 

 


백운대는 성벽에 앞서 눈과 얼음과 들어난 바위로 스스로를 방어 하고 있는데 견고한 성벽의 용암문은 소통의 통로다.
장터 마냥 산객들이 합류되고 이미 올라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핑계거리 만을 찾았던 소심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소식적 스릴을 즐겼던 백운대의 암반도 이젠 점프를 위해 막타호에 올랐던 것처럼 도전이 된다.
폼은 엉거주춤 하고 바위와 스킨십을 해가며 기어서 오르더라도 허세에 인생 걸 필요는 없다.
어제 다이소에서 코팅 장갑을 구매한 게 와이어를 움켜 쥔 손은 시럽지만은 미끌리지가 않아 요긴하다.

 


백운대에 차가운 바람이 사람들을 낙엽을 쓸 듯 밀어 내어 기다림 없이 정상 인증을 한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하는 지리산과는 달리 외국인들과 공유하는 위 아 더 월드의 산정이다.
인수봉과 망경대가 수호하고 있는 널찍한 암반에는 개와 고양이까지 노니는 산상의 공원화가 되어 있고 한 켠에서 시가지를 관망하며 김밥을 먹는다.
개의 애처로운 눈망울에 고양이의 애교에 김밥을 나눠 먹는 인류애를 실현하고서 하산을 한다.

 

 


회색의 도심을 감싸고 있는 수락산과 불암산은 낼 가야 할 곳인데 또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하다.

 


먼 시야에 대동문으로 이어진 등로가 하얀 눈에 덮여 있어 무섭기도 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 아이젠을 반납한다.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 왔습니다.

 


하루재를 넘어서자 몹시도 불던 바람도 따스한 기온에 자취를 감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푹신한 흙길과 포근해진 봄 날씨가 몸을 흐늘거리게 만든다.
짧았던 시간 이였지만 계절의 강력하고 다이내믹함 속에서 환절기산행의 준비성을 느끼게 만든 산행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어린이대공원 나들이에 나선다.

남들 일할 때 노는 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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