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의 회상 **
하얀 눈이 내리고 가마솥 같은 여름이 지나고 단풍 고운 가을이 몇 번이나 바뀌어 가도 무덤덤 했었는데 육십이란 숫자가 나를 자각하게 하고 가족들의 환갑잔치 챙김에 부랴부랴 정신을 가다듬지만 정년이란 행사가 덜컥 발목을 붙잡는다.
가는 세월이 갑자기 아까워져서 동병상련인 주위 사람들과 모책을 세워 보아도 부질없는 짓이고 여행만이 진정제가 되어 준다.
나는 이들 모두를 나의 환갑여행이라 통쳐 버린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찬바람을 피해 테라스로 스며들어 캭테일을 기우리며 낭만을 즐겼고 뒷풀이로 밤이면 밤마다 소고기를 굽고 양고기를 질리도록 씹으며 비워지던 술병들......
귀염둥이 돌고래의 자유로운 유영에 우리들은 환호 하였고 사막의 모래썰매를 타며 낄낄 거리고 캥거루를 보면서 자식들의 독립에 안도했었다.
메케한 음식연기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술집을 찾아 헤메이고 케이블카로 올랐어도 동남아의 최고 산을 등정을 한 것마냥 환호하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가이드를 나이로 눌러서 룸을 점령하고 술 폭탄을 쏟아 부어 우리 편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무리수였던지 하롱베이 전세 배에서의 사랑고백이란 이벤트 기습공격에는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이 나이가 먹도록 쑥스러움에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 건네는 순수남이다.
술과 여행은 누구랑 함께 마시고 가느냐가 중요하다는데 술을 마시다 장거리 비행이란 두려움을 떨쳐 내고 미국&캐나다 여행에 나섰다.
첫날부터 햄버거의 비싼 가격에 놀랐지만 그저 그런 환상 속의 나라였음을 체감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함에는 심장 떨림을 경험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와 거대한 물줄기를 뚫고 나이아 가라를 목청 것 외쳤지만 나이는 켜켜이 쌓여만 가고 월가 황소의 붕알을 안 만져서 그런지 주식은 똥 값이다.
용 다섯 마리가 작당모의를 하고 이쁜 개를 꼬드겨서 회갑여행에 나선다.
지들이 진짜 용으로 착각을 하여 불을 뿜어 내려는지 첫 끼니부터 54도의 센넘이다.
평소 군기반장이던 올챙이도 포기를 해버렸고 매 끼니마다 곁들인 독주로 황산에 올라 주안상 펼쳐 놓고 신선놀음 하려는 것은 무산 되었지만 덕분에 승천도 안 했다.
산도 뱃놀이도 몽환적인 상해의 야경도 좋았지만 마냥 웃고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우리들의 노년은 외롭지가 않겠다.
혁동씨 부부와 중국 안에서 하와이 란 하이난으로 피한 여행을 떠나는데 퇴직을 한달 남겨둔 나는 이를 퇴직 여행이라 정의한다.
잘 마시고 잘 노는 우릴 보고 패키지 팀들은 부러워하고 부인들은 창피함에 몸을 피하지만 우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만 한다.
여행은 무조건 즐거워야하는 게 우리의 모토다.
인생을 축제하듯 살아야 하는데 점점 저하되고 있는 체력이 문제가 된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고 시간을 물릴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데 놀고 즐기는 시간은 너무 짧다.
음,
말 보다는 돈이 좋지.....
나의 꼬라지로 처음으로 나섰던 태국의 가족 여행에서 처절함을 맛보았던 아이들 이였는데도 회갑 여행으로 나트랑 가족여행을 떠난다.
참 기특하다.
자유여행이긴 하나 딸들에게만 의지해야 하여 나에겐 여전히 패키지나 다름없지만 뜨거운 나라 속에서 느끼는 시원하고도 상큼한 가족여행이다.
분위기에 취했나 술에 취했나.
눈물이 찔끔 난다.
늙어가면서 난 감정선이 몰캉몰캉해져 있어 건들면 터지는 봉숭아처럼 눈물이 벌컥 솟는다.
아내가 위로를 해준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감동도 잠시이고 내일로 착각했던 비행기가 오늘이라서 한바탕 소동으로 정리되고 리조트엔 우리 가족이 잊지 못할 추억만을 남겨 두었다.
조석의 기온 차에 풀잎에는 이슬방울이 맺히고 산허리가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날에 가족여행이 정해졌고, 조카들의 주도하에 나의 회갑 축하연이 이루어진다.
잔치에 곁들인 한잔 술이 참 멋쩍고도 쑥스러움을 달래 주었고, 한바탕 놀이에 놀란 고양이들만이 우리를 멀뚱히 지켜보고 있는 밤입니다.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나의 편이 있고, 누구 눈치 안 보고 서로 마음을 공유하며 같이 울거나 웃을 수 있는 다정다감한 가족들이다.
세상에 낯선 남녀가 만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기적이다.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이토톡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당신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또한 나를 사랑한다. -최인호-
일과 생활의 터전을 연결하는 길호대교에 정년퇴직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4조 2교대 이후 주간 때에는 눈, 비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걸어 다녔던 곳인데, 퇴직이라는 현실에 무언가를 상실한 듯한 허전함이 밀려든다. 찬바람이 온몸을 헤집고 다녀 마음까지 허전한 상실의 계절이다.
그 동안에 세상 모르고 우후죽순처럼 웃자란 나의 일상에 퇴직이란 행사가 현실에 매듭이 된다.
아~ 이렇게 퇴직이란 행사를 통해 사회에서 걸려 내는 것이 구나......
선 순환만이 식생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지만 이것이 나란 현실성에는 작은 떨림이 있다.
나에게는 지극히 형식적인 부 퇴직행사가 끝나자 마자 퇴직자 17명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홀로 남은 쓸쓸함을 이기지 못해 기어코 낮술로써 마음을 추스른다.
요즘 아파트는 사람 한 명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모두가 일터로 나간 아파트의 정원에서 퇴직자를 자각하며 그래도 건강만은 유지했다며 나 홀로 자축을 한다.
설비를 감시해 가면서 도시락을 먹고 회식이란 명목으로 취향에 맞는 음식들을 찾는 우리들은 한 식구였고 술잔을 부딪히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면서 새로운 내일을 열어 갈수가 있었다.
그래서 가족과 같은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늘 함께였고 웃고 행복했다.
느낌만으로 눈길만으로도 통한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이다.
때론 언쟁도 몰라 주는 서운함도 있었지만 나는 나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동료들이 힘들어 할까 봐 무던히도 노력도 했었다.
입사를 하고 선발대로 라인으로 배속되었지만 미 적응에 못내 힘겨워 할 때에 내가 벌면 된다며 여리디 여렸던 새색시가 건네었던 작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지금의 퇴직까지 왔다.
새처럼 자유로움을 갈망했지만 날갯짓의 처절함을 몰랐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의 풍경에 매료 되었을 뿐 그들 삶에 대한 사투는 보질 못했다.
회사는 푹풍우을 막아 주는 잔잔한 호수가 되고 외부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 그저 그 안에서 유영하고 자유로이 노닐기만 하였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 안에서 국토종주를 마무리 지었고 해외 원정트레킹에 베이스캠프가 되어 주었다.
사회적 구성원으로 존재했음에 감사한다.
이 또한 미지의 길이지만 이미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답자들이 있고 선행학습을 하고 있기에 잘 적응해 나가리라 나 자신을 다독거려 본다.
피규어를 꺼내 놓고 나름 행복한 척 카톡질로 자랑질을 해보지만 외로운 건 외로운 거다.
참 무게감도 없이 전화 한 통에 산악 동료들과 잽싸게 합류하여 쓸쓸함을 달래지만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만을 한움쿰 쓸어 담고 들어와서는 잠을 청한다.
의무적이든 자의적인 행사든 매번 퇴직행사를 챙겨야 할 조직원들은 명절날 귀향을 하는 자손을 보는 듯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마주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정과 건네는 환한 웃음에서 가슴 울렁거림을 삼켜야만 했다.
공장 퇴직행사의 약력 소개에서 단 몇 줄로 요약된 35년의 직장생활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의 직장생활에 말문이 막히고 동료들이 내건 나의 케리컬쳐에 볼은 발그레하여 수줍음을 대신하고 있다.
조직 속에서 일정한 보호를 받고 최소한의 사회로부터의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산에 나무처럼 나 홀로의 고독감도 끝도 없을 것 같은 아득함도 공존하였다.
정년이란 무엇일까?
제2의 인생에서도 꽃길만 펼쳐지길 기원하고 새로운 여정을 축하하며 항상 행복과 건강이 가득하길 기원한다는 통념적인 말에도 감정이입이 되는 게 정년이다..
인생의 전환기라고 하지만 난 아직도 미숙아 여서 여전히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전국의 산하를 누볐던 독수리 오형제가 깃털이 빠지고 부리와 발톱이 뭉개져서 뿔뿔이 흩어지고 참수리 모임으로 재편되어서 소소한 정년축하 자리가 마련되었다.
서울의 거리는 평온하고 화려한데 정치는 개판이다.
전국의 산과 해안길을 완주하고 코리아 둘레길을 이어 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걷고 술 마시고 또 걷고 마시는 테마도 이젠 신체적인 저항에 부닫쳐서 원정 횟수는 자꾸만 줄어 간다.
시나브로 속절없이 그냥 그냥 살아온 날들이었는데 퇴직이란 행사가 장마철에 쓰레기가 밀려들 듯 뭉텅이로 밀려 들어 와 일상을 헤집어 놓더니 정기적으로 행해지던 조가 재편성 되면서 헤어짐의 시간이 되었다.
헤어짐은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내가 조직융화에 좀 더 적극적일 걸......이런 잡념까지도 잠 못 이루게 하는 게 정년인갑다.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
석별의 아쉬움만이 가득했는데 단톡방에서 논의 된 봐도 없었던 퇴직기념패와 꽃다발을 받고 보니 가슴이 찡하다.
왜 이런 서프라이즈로 눈물 찔끔거리게 만드는 겨?
나 이제 진짜루 만년 과장이 아닌 김씨 아저씨가 되는 겨?
함께 나눈 시간과 추억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석별의 회식이다.
꽃잎이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 이더라..
올해 환갑을 맞이 한 푸른 용띠의 친구들이 뭉쳐서 내 청춘을 돌려 달라고 악악대어도 봤지만 목만 아프고 어차피 떠나는 년은 떠 날 테이고 새로운 해가 올 것이다.
우리는 추억이란 산해진미의 안주가 있어 술이 술술 넘어가고 언제나 모임의 자리에서의 이야깃 거리는 풍성하다.
서로 안부를 전하고 애경사를 챙기고 카톡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은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고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 할수 있어서 환갑이 서운치 않는 푸르른 청춘의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숨가쁘게 쉬지 않고 달려온 갑진년이었지만 이젠 좀 느긋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다 보자.
노란 사복을 입고 교육을 받았던 동기들이 제철소에 밀알처럼 뿌려져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을 하여 모두들 단란한 가정들을 이루 었는데 이젠 퇴직으로 세상에 흩어져 간다.
동기회가 매개체가 되어 여행도 다니고 정기적인 모임도 가졌지만 항상 짧은 만남은 아쉬움을 남겼었는데 이젠 나의 퇴직으로 그 마저도 지속 가능 할지는 미지수다.
세월에 머리도 빠지고 지병에 술 대신 약을 복용하는 나이가 되어서 2차는 찻집으로 스며 들여 수다를 떠는 나이가 되고야 말았다.
함께 입사를 하였지만 연령대가 다르다 보니 다가 올 미래를 담담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듯 하지만 나 역시도 그랬었다.
그러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은 D-1일로 나를 옥죄이고 있다.
새해에는 희망을 논하여야 하는데......
정년은 맞이 했으되 기초 연금을 받지 않은 아직은 짱짱한 장년기로 사회에서 아직 쓸모가 있는지 재채용이 결정되어도 학교에 가기 싫은 학생같이 거부감도 있다.
신분증도 작업복도 그대로인데 이년과 저년은 왜 이리도 낯설고 거리감이 있는지......
요즘 나라가 하수상한데 일상이 편안하고 이렇게 무탈하게 퇴직 하는 것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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