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월출산 산행***
-.일자 : 2025년 5월 26일
-.코스 : 산성대입구-산성대-천황봉-바람재-구정봉-영암사지-대동재-기찬묏길-산성대입구(14.3km / 6시간 50분)
차에 이상 증상이 느껴져 정비소를 찾았지만 진단이 되지 않아 운행을 계속하다가 결국 도로에서 멈춰 버렸다. 수리는 했지만 신뢰성이 없어 순천에 거주하는 몰빵이 집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의 원인이다.
나 홀로 어느 산에 갈까 고민했었는데, 둘레길만 걷던 몰빵이 이렇게 산행을 제안해 온 건 나의 복이고, 어쨌든 둘은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산행을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하산주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된다. 몰빵의 RV 차가 부앙부앙 달리다 보니 쉽게 영광읍에 도착했는데, 산성대 입구의 기찬묏길 주차장이 공사로 폐쇄되어 있다. 차를 한켠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다행히도 등산로는 개방되어 있어 주민들이 오가고 있다. 몰빵이 무릎 보호를 위해 모처럼 스틱을 펼쳤고, 정체 모를 캔 음료를 치켜들었지만 어차피 나의 선택권은 없어 보인다.

기분 좋게 산성대 아치를 통과한다. 며칠 전 백운산 산행에서는 지구를 흔들어대는 바람 때문에 추위를 느꼈는데, 그새가 언제였는지 고요한 적막 속에서 스틱 찍는 소리가 발자국에 장단을 맞추고, 지저귀는 새소리만이 정겹다.

숲을 벗어나며 조망이 트이고, 쉬어가라는 조망터가 나온다. 흘러내리고 있는 땀에 눈이 따끔거려서라도 쉬었다 가야 하는데, 땅끝기맥상의 활성산에 풍력발전기가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산자분수령이 만들어낸 영산강 줄기가 영암뜰을 적셔 햇살에 반짝인다.
이곳에 오르면 봄에는 온통 노란 유채꽃으로 황홀한 풍경이, 가을이면 황금 들녘이 우리의 마음까지도 풍요롭게 만드는 곳이나, 나의 삶이 녹록지 않아 친구를 따라 모처럼 찾아들었다.


‘천하제일관문’이라는 안내문만 없으면 여기선 극히 평범해 보이는 바위는 천하제일의 풍경을 숲속에다 숨겨 놓았는데, 숲의 신선함이 지쳐가는 몸에 기운을 북돋아 준다.

기암괴석 전시장을 숨겨 놓은 숲의 완충지대를 지나 신성대에 올라선다. 천황봉에서 사방으로 뻗은 뾰족뾰족한 바위 군락지가 참으로 경이롭기만 한데, 이 시간에 하산하고 있는 여성 산악회원들이 있다. 결국 우리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겠지만, 입산을 하여 내려갈 것만을 계산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시간과 경비를 투자해 산에 왔으면 즐겨 줘야만 한다.


이제부터가 월출산과 제대로 교감하며 풍광을 즐기는 기점이다. 병풍처럼 좌우로 펼쳐진 암반의 산줄기들은 자꾸만 모습을 달리하고, 숨겨 놓은 암릉들이 유혹하며 빠져드니 힘겨움이 덜하다.



몰빵이 이렇게나 순진무구했는지,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데 장단 맞추기가 쉽지 않고, 가족방에 자랑을 하며 며느리와의 산행을 약속하고 있어 세상 부럽기만 하다.
햇볕은 쨍쨍하고 그늘 하나 없는데, 헤헤 실실거리는 것이 설마 더위를 먹은 것은 아니겠지.


국토종주길에서는 여유를 담보로 맡겨 놓고 시간을 단축 시키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해야만해 즐기지를 못했지만, 천하의 풍경을 한아름에 담을 수 있는 이곳 산에서는 삶의 여백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안겨 준다.




고인돌 바위를 지나고, 진달래꽃이 암반에다가 수를 놓아 동양화가 되었다. 광암터 쉼터에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정상을 향하기 위한 재정비를 한다.



월출산의 기를 영양분 삼아 기가 찬 풍경 속으로 스며들며 급조되었지만 산행지 결정에 대한 자화자찬을 한다. 소나무 한 그루까지도 이곳에서는 명품이 되어 멋진 풍경이 되어 준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 작용에 의해 독특하게 생기고 아찔하게 쌓인 바위들이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람폭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고, 좌측으로는 천황사지 지구가 조망되면서 출렁다리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다.

여지껏 기암괴석의 전시장을 관람하면서 올라왔고, 지금부터는 천황봉을 뵙기 위한 고된 오름길이라 보이는 것 없어 계단에만 집중한다.
다행인 건 끝이 안 보여 눈의 게으름을 방지하고, 숲이라 그늘이 있다는 점인데, 날벌레들이 정신을 사납게 한다.
경포대와 사자봉의 갈림길을 지나, 통천문을 통과하여 정상에 선다.

항상 그렇듯 쉬운 산은 하나도 없다. 그러하기에 성취욕이 있지만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조망하는데, 과연 천하제일경이다.
설악산의 축소판이고,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중국의 황산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다.


쉬엄쉬엄 올랐더니 벌써 점심시간이라서 영암뜰을 내려다보며 김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는데, 우리가 유일하게 추월했던 산님이 뒤이어 올라오며 ‘참 보기가 좋다’는 덕담 한마디에 산 친구가 되었고, 몰빵은 장군바위의 전설을 설파하는 풍수지리인과는 카톡 친구까지 맺는 친밀감을 보인다.

오후의 정점은 계절이 여름으로 순간 이동해버린 듯한 더위와 정적 속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걷는 게 벅차도, 뒤돌아보면 정상은 저만치나 멀어져 있다.


TV의 자막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잠식해버린 돼지바위를 지나 남근바위와 마주하는데, 꼿꼿한 자태에 화룡점정이 되어 주었던 나무가 죽어있어 왠지 위풍당당함은 없어 보인다.



바람재의 내림길에서 뒤돌아본 풍경이 바위들로 아주 장관이라서, 쇼핑몰에서 온갖 미사어구로 홀리고 치장한 여느 여행사 상품속의 그림 보다도 절경이다.
그새가 언제였는지 모든 게 낯설어 나의 사라져 버린 블로그를 다시 쓰듯 오늘도 새롭게 월출산을 알아간다.

바람재에서 미풍을 인질로 붙잡고 오르며, 나무 그늘에서야 바람의 무리를 포획하여 시원함을 느낀다.

상상의 영역이지만 민망할 정도로 참 오묘하게 생긴 배틀굴이다. 굴 안에 고인물은 식수 가능 여부조차 가늠하기가 거시기하여 구정봉 바위에 올라 선다.


구멍마다 물이 차 있지만, 꾸정물이라 반영을 담지는 못하고,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보기에도 위태로운 월출산의 전경을 눈으로 갈무리 한다. 기묘한 바위들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암절경이다.





영암사지의 내림길이 시작되고, 수석전시장을 벗어나 숲길이 되어 영암사지 석조여래좌상으로 이어진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는데도 방치된 듯 어떠한 보존시설도 없고, 감시카메라도 없지만 불상의 형태는 뚜렷하여 나로서는 세월을 추정하기 조차 불가능하다.
불상과 석탑, 석등과 절터의 유물들이 있는 용암사지터는 머위 나물밭이 되어 있는데, 이런 기막힌 산에 역사적인 유물이 있음에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보존 방식인지 모르겠다.



조릿대숲을 두고 산길이 뚫려 있고, 지금부터가 미개방지였던 곳인데, 거친 듯 다듬어 놓은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고요한 숲속에서는 청아한 새소리만이 들린다.머시마들은 부부처럼 별말이 없고, 스틱에 찍히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초록의 숲속을 내려간다.

마른 계곡을 뚫고 흐르는 물은 오아시스가 되고 약수가 되어 포도당을 주입하듯 금세 흡수되어 온몸의 미세혈관을 돌며 시들어 가는 세포들을 회복시켜 놓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탈수하지 않으려면 이젠 포도당과 근육이완제도 챙겨 놓을 때가 되었다.


허물어진 돌축과 커다란 느티나무가 옛 거주지였음을 말해 주고, 주거지역을 상징하듯 길은 완만해지고 좋아진다. 마른 계곡이 계속되며, 물은 땅속에서 자연 정화를 하고 있고, 계류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서 영암상수원으로 흘러들어 영암군민들에게는 약수가 된다. 이런 상수원보호구역을 개방했다는 건 지리적인 조건과 관리가 있음이다.





상수원저수지 아래에는 생활용수용 대동제가 있고, 주차장 아래에서 기찬묏길에 접해 차량 회수에 들어간다. 영암교동지구 도시개발에도 기찬묏길은 살아남았는데, 몰빵은 기어코 공사장으로 진입하여 불안하게 만들더니 산딸기 군락지에서 달콤함을 맛보여 주고, 버찌까지 입에 넣어 쓴맛을 보고야 만다.



몰빵의 차 운전실력이 나를 쫄보로 만들어 졸음도 쫒아 냈고 순천의 퇴근 러시아워대의 차량들은 카레이스를 하듯 역동적이다,
참수리가 퇴근하여 삼겹살을 준비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고, 광양에서 택시로 순간이동해 온 주군의 친구가 있어 하산주 자리는 길어지고 추억의 밧데리는 완충되어 또 다른 일탈을 모의한다.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 조계산 산행 (0) | 2025.06.11 |
---|---|
지리산 반야봉 산행 (4) | 2025.06.05 |
광양 백운산 산행 (6) | 2025.05.25 |
남해 망운산 철쭉산행 (1) | 2025.05.10 |
사자산 & 일림산 철쭉 산행 (1) | 2025.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