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산 뜻 밖의 설경 **

-.일자 : 2024년 2월 7일

-.코스 :선암사주차장-선암사-장군봉-연상봉-굴목재-보리밥집-작은굴목재-선암사주차장(13.8km / 4시간 53분)

 
풍만함이 사라져 버린 앙상한 이 계절에 뭇 짐승들은 먹잇감을 찾아 동토를 헤집고 다니지만 풍부한 자원의 혜택 속에서 안락함에 순응해 버린 나의 몸만은 날로 비대해지고 있다. 

 


매순간에 결심했던 산행은 쉴 때마다 내린 비가 핑계가 되어 주었고 다치면 오래간다며 함께 놀자는 마눌님의 꼬임이 자의가 아니란 위로를 주었지만 언제까지나 구실만을 찾아 구걸할 수는 없어 조계산을 찾기로 한다.
선암사 주차장의 주차 라인을 재정비하였고 화장실이 호텔 급으로 바뀌었다.
주차장에서 올라다 본 스카이라인이 구름인 듯 눈 인 듯 하얗게 덮여 있어 가슴이 쿵쾅거린다.
장맛비처럼 연일 내렸던 비와 함께 입춘을 넘긴 터라서 전혀 기대치 않았던 풍경인 지라 그새 녹아 버릴 새라 마음이 바빠진다.
마눌님이 출타로 빨리 들어 오지 말란 명령이 있었고 모처럼의 입산에 천천히 즐기고자 했는데 사람 맘 참 간사함이다.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듯 절차를 밟아야만 했던 관리소는 하이패스를 통과하듯이 걸 거침이 없으니 또 기분이 좋아 진다.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뻗어 있는 나목들에 비해 바닥은 싱크홀이 생기듯 패인 곳들이 있지만 사찰의 진입로는 연제나 정갈함을 준다.
싱그러운 바람에 육체를 샤워 시키고 청아한 물소리에서 정신에 쌓여 있던 고민들을 씻어 낸다.
항상 그렇지만 나서기만 하면 이렇게나 좋을 걸 왜 매번 편안함과 타협하고 있는지 모룰 일이다.

 


천년고찰 선암사가 동안거에 들어 간 듯 인적이 없고 내딛는 나의 발자국 소리에 내가 절로 겸손해 진다.
올려 다 본 산릉에는 눈이거나 상고대가 확실하게 목격 된다. 

 


천년 세월의 덧깨가 씌워진 대각암은 폐가를 연상케 하지만 여전히 건제하면서도 세속과는 무관한 듯이 비켜나 있고 담벽을 끼고 산행길이 열려 있다.
조용한 숲에 나무를 찍어 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울리고 나는 조급증에 새가슴이 되어 촉삭거리고 있다.
나의 이런 습성을 잘 알기에 산행 의지를 다지기 위해 이미 산악회에다가 산행신청을 해 놓은 터라 체력 테스트를 하기로 한다.
유연성이 없고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함이 스스로 느껴지고 있으나 뚜벅이 기질은 그대로 있어 쉼 없이 향로암터에 올라 가쁜 숨을 고른다.
음, 그 동안에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기본 운동은 틈틈이 해 놓아서 인지 아직은 쓸만 하다.
샘터는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해골물은 아니더라도 몸에는 좋을 것 같은 데도 도구가 없어 그냥 오른다.

 


급경사는 산의 골격을 붙잡고 있는 잔돌들로 정돈되지 못하였고 그만큼 오름길은 길다는 뜻이라서 등로에만 집중을 한다.
등산의 고달픔은 정신의 느슨함과 집중력을 높여 놓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치유제가 되어 준다.
햇살에 투영된 나목에 하얀 눈가루가 덧씌워지게 시작하고 눈이 얼어붙어 있는 난간의 밧줄은 몸의 의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세상에나 이게 웬 횡재야~
전혀 기대치 않았고 올라 버린 기온으로 전혀 기대를 않았던 풍경으로 기쁨은 탄성으로 흘러 나온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는 온화한 날씨 속에서 피어난 눈꽃으로 산정은 화려해졌다.
하얀 설원에 둥그런 묘지 같이 봉우리들은 두둥실 떠 있는 섬처럼 펼쳐진다.
이런 날씨에도 눈꽃이 핀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신부가 버진로드를 거닐 듯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공존하면서 마음은 까닥 없는 조바심으로 요동친다.
오직 나만을 위한 듯 온통 눈꽃의 산정 속에서 거닐기도 좋게 등로만이 눈 하나 없이 말끔하니 오히려 이것이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가만 보면 봄날 마른 나뭇가지 마다에 함박지게 꽃송이를 피워낸 봄날의 벚꽃 나무만 같다.

 


우주를 관장하고 있는 전지진능한 신의 작품처럼 느껴지고 나의 모습도 어디선가 지켜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진공상태인 듯 적막감만이 있던 산길이 참새들의 날갯짓처럼 숲이 바스락거리고 있다.

 


하루의 정점에 이르면서 자기들의 역할은 여기까지 인 듯 눈이 낙화하기 시작하여 검은빛이 들어 나면서 동양화가 되고 연산봉에 올라서자 순천의 젖줄인 상사호가 펼쳐지면서 세속과 일체화가 되어 간다.
연공서열이 있어 정년까지 잘 지내 왔지만 엄연히 조직의 평가가 있고 서열이 존재한 직장이기에 지금은 묵언수행으로 버텨 내고 있어 이 평화와 자유로움이 한없이 좋다. 
기온이 한껏 올라 부유한 미세먼지로 뿌옇지만 마음만은 맑음이다.

 


질퍽함을 예상했던 내림길은 얼어 있고 사면에 쌓인 젖은 낙엽이 여지 것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산보 길이다.

 


굴목재에서 내림길 조차도 질퍽거림이 없고 물소리가 들려 오는 계곡의 배도사대피소를 지나 빗자루로 쓸어 놓은듯한 길을 따라 보리밥집으로 들어 간다.
연기만 피어 오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만치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가만 문을 열고 들어 가 손님인 내가 쭈삣대며 점심이 되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보리밥집은 나만을 위한 세프가 되었고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 커피 한잔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 피크닉 기분도 내보지만 혼자 이니 금방 시들하다.

 


밖에 나와도 봄날 마냥 따스 하여 눈 속을 걸었던 게 꿈결인 듯하다.
식후의 오름길은 대비하고 있어도 항상 고달픔이고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힘듦만큼 몸은 건강해져 가고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도 헥헥 거리는 현실성에 금방 다리에 힘이 풀린다.

 


작은굴목재에서 시작된 급경사가 스키장의 최상급처럼 급하게 내려 가고 있고 유연함이 빠져 나간 몸에서는 다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내어 걸음이 절로 잘게 디뎌진다.

 


해빙기의 계곡은 이미 봄이고 빗물까지 더해져서 레프팅을 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편백숲을 지나며 숲을 벗어 난다.
쏟아진 햇살이 부담스럽고 마술을 부렸던 듯 싹 모습을 달리한 조계산이 낯설기도 하다.
선암사의 진입로에는 그나마 몇몇 사람들이 있어 덜 쑥스러운 길이다.

 

 
이미 봄이다.
홍매화가 피어나고 양지바른 곳에 연분홍의 꽃잔디가 피어나며 생동감이 느껴진다.
다음에 올 때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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