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 백운산 산행 **
-.일자 : 2024년 9월 10일
-.코스: 진틀-상봉-신선대-진틀
 
새롭게 구축한 둥지가 벙커처럼 사방이 막혀 있어 에어컨에 볼모가 되었는데 입추가 지나고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 마저 지나 갔건만 찜통 더위는 아직도 기세 등등한 점령군이 되어서 행동을 제약 시키고 있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어제 회식에서 장어로 원기 보충해 해놓았으니 이참에 기습 탈출을 강행해 본다.
닭구이의 연기로 사람들을 홀리던 옥룡계곡에는 인적이 없고 펜션에서 쏟아낸 오염물질로 인하여 수생식물이 계곡을 메워 간다.
미풍도 없이 고요한 주차장의 적막을 깨기가 뭣 하여 다시금 차에 올라 진틀의 임도를 올라 버린다.
계곡과 맞닿아 있는 저곳이 공유수면이 아니라 사유지 였는가?
새가 둥지를 짓듯 자재들을 하나씩 조립해 나가더니 작은 가계 하나가 만들어 졌고 주차공간이 없어 병암산장 아래에다 주차를 한다.

 

등로를 잠식해 가는 수풀이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있고 젖가락만 같았던 고로쇠나무는 성장이 빨라서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날파리가 평생 먹잇감을 선점했다는 듯 달라 붙더니 빨랑 돌아 가시라고 귓전을 맴돌며 정신적 고문을 가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미물 하고의 신경전은 수건 한 장으로 제압 한다.
어젯밤의 술에 안심하고 퍼질러 있던 세포들에게는 비상이 걸렸고 강제 동원된 근육들이 풀로 가동 되고는 있지만 제어권을 장악하지 못한 몸은 비틀거린다.
어제 맥주만 안 마셨어도 일상의 리듬은 유지했을 것인데 항상 후회스럽다.
계류로 세안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쭉쭉 치솟아 오른 나무가 생명의 기운을 돋게 하고 초록 초록한 나뭇잎은 정신을 맑게 해준다.
숲 속에 스며든 빛 내림과 계곡에서 피어 오른 자욱한 수증기로 태초의 원시림이 되었고 큼직한 바위들은 외부인의 발길을 막고 있다.
다행이도 훈련된 발걸음은 머리의 지령을 잘 수행해 내고 있어 부비트랩에 걸림 없이 진틀삼거리에 올랐다.
숲 한가운데에서의 고립감이 아니라 동물들이 생존하기 위한 영역권을 확보하는 것처럼 만족감에서 오는 여유와 자유로움이다.

 

오름길은 나를 원초적으로 만든다.
오직 한 기지의 집념이 무거운 발걸음을 떼게 하고 있고 먼저 가서 깃발을 꽂은 놈이 땅의 임자였던 미국 서부개척시대가 아닌데도 정상을 향한 이 오름짓을 멈추질 않는다.
오직 한 방향뿐인 이런 단순함이 산행이기에 이 발길이 행복해야만 되는데 지금의 나는 내적 갈등에 몹시도 힘겹다.
나는 왜 매일 매일을 이렇게 걷고 올라야만 할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 치곤 몸이 너무 혹사를 당하고 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상념인가?
놀고 있네.
이렇게 두 다리로 어디든 걸아 갈수 있는 지금이 행복한 줄 알아라.

 

쉼터에서 오이 하나를 베어 문다.
전신에 향긋한 향이 퍼지면서 상념들을 싸그리 몰아내고 능선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가을꽃을 데려다 놓았다.
백운산상봉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듬직한 백운산은 외도만을 하다가 왔는데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 준다
모처럼의 대면에 오랜 산꾼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려 했는데 홀딱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세월 탓을 할까? 이곳을 올라 오는데 제대로 올라 온 것인지 조차가 의문시 된다. 
버티고 있는 폭염을 피해서 피서 나서는 듯 출발은 했지만 순례를 하는 듯한 고역의 길이였다.
옷은 몸에 착 달라 붙어서 흉측한 몰골이 그대로 들어나 있고 땀은 불어 오는 바람에 기화가 되면서 급격하게 온도를 낮추어 버려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니 피서도 체력과 내공이 겸비되어야만 즐길 수가 있다.

 

산행은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숲 속에서 머물면서 자연의 변화에 주목 할거라며 도시락도 싸왔는데 내겐 호사고 내려가서 국밥에 소주로 타협하고 만다.
가을꽃 피어난 아름다운 산길이다.
잔디처럼 푸르른 가는잎그늘사초는 곧 갈빛으로 물들면서 정염으로 불타다 사그라 들것이고 계곡의 나무들도 화려한 색조화장으로 가을의 축제를 이끌면서 낙하하여 소멸 될 것이다.
그전에 또 찾을 날이 있을까?
 
계곡에서 뿜어 낸 음이온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있고 작은 폭포들은 땀을 식혀주는 안개 분수가 되어 하산 길을 이끌어 준다.
자~~
일 끝냈으니 일잔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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