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천왕봉 **
-.일자 : 2024년 9월 2일
-.코스: 중산리-셔틀버스-순두류-로타리대피소-개선문-천왕봉-제석봉-장터목대피소-유암폭포-칼바위-중산리(15.8km / 6시간 28분)
생활리듬이 여행에 최적화 되어 있어 산에 대한 거부 반응에 산악회 자체를 기웃거려 보질 못했다.
어떻게든 산과의 연결고리를 복원하고 생체리듬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천왕봉의 영험한 기운에 의탁해 보기로 한다.
배낭에는 온열질환에 대비해 식염포도염을 준비하고 근육 이완제와 에너지바도 함께 챙겨 넣었다.
올해 한번도 찾지 못했던 어색함은 잠을 설치게 했고 나 홀로의 발걸음은 두려움인데 주차장의 리모델링으로 갓길에 주차를 해놓고는 이게 맞는지 눈치를 본다.
성숙한 숲은 향기롭고 지리는 아늑하게 객을 품어 준다.
도로를 따라서 주차금지선이 쳐져 있고 카페는 커피 한잔으로 이탈한 차들을 끌어 들인 듯하다.
중산리탐방지원세타의 공사는 12월 말까지 이고 마침 셔틀버스 출발시간이라 탑승하여 어수선함을 떨쳐 낸다.
휘어진 도로를 10여분만에 학생수련원에 올려 놓았고 학습된 대로 들머리를 찾아 드는데 지리산을 향한 카펫이 깔려 있다.
햇살이 차단된 숲에는 가을이 스며들었고 바람은 열기를 식혀 준다.
이렇게 배타성 없이 받아 주는 걸 나 혼자서 밀당을 하고 자학 하느라 시간만 허비했다.
수족관의 물 온도와 비닐봉지 안의 온도를 서서히 맞추어서 물고기의 쇼크를 방지하기 위한 물맞대기를 하는 것처럼 지리산은 완만하게 이어 지면서 친근하게 맞아 주면서 적응의 시간을 준다.
계곡의 물소리는 어느 사이 침묵 속에서 사라졌고 아리랑고개에 올라 지구와의 정확한 좌표를 맞춘다.
칼바위를 선택했으면 지금쯤 망바위쯤은 올라 왔을 것이고 저질체력을 한탄할 싯점이나 계곡의 계절은 가을꽃을 대려 와 고운 색체에 눈 마주치면서 오름길의 고단함을 삭히다.
월요일이니 만큼 남자들은 생활전선에서 사투를 하고 있을 것이고 이미 중년의 시기를 지난 여성분들의 깔깔거림의 여유가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산사람들은 여전히 산을 찾고 있는데 나는 뒷산만 깔짝거리면서도 자기 안위를 찾았고 그에 안주해 참이슬을 꼴짝 거렸었다.
포크레인이 돌을 쪼아 대는 공사 소음과 가림막 속에 로타리대피소가 감춰졌고 휴식의 공간을 지워 놓았다.
이 곳은 산중턱의 난이도 때문인지 공사가 내년 1월까지인데 조감도로 보아 선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법계사앞의 졸졸거린 물줄기에는 수중 펌프를 박아 놓았고 식수대의 수도 꼭지는 말랐다.
큼직 큼직한 바위들이 시선을 발 아래로 고정시켜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끝이 안 보이는 오름 길인데 차라리 보지 말고 오르란 배려라 여겨보려 해도 떨어지는 땀방울도 과열 됨은 못 식혀 준다.
고도를 높이고 있으면 온도가 떨어져야 하는데도 시간과 비례하여 달구어진 열로 더위까지 느껴지고 있다.
냉해를 입은 연분홍의 산오이풀이 조급증을 건드리고 있어 쉼 없이 개선문까지 올라 선다.
화려하지도 요란 하지도 않은 하얀 구절초가 포인트가 되어서 가을의 구색을 맞춰 가고 있다.
연일 폭염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들고 재난 문자로 행동을 제약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조화롭게 어울린 계절의 순리다.
백운산은 해무에 지워져 가지만 천왕봉은 고사목까지도 선명하게 보이니 이젠 어쩔 수 없이 정상엘 올라야만 한다.
인생은 등산 과도 같다더니 하늘 한번 제대로 처다 보지 못하고 발 밑만 쳐다 보다가 천왕봉에 올라 섰다.
환희 보단 더 이상 안 올라도 된다는 안위에서 세상을 똑 바로 내려다 본다.
삥 들러 선 산그리메 중에 내 족적을 남겨 둔 곳들이 더 많으련만 이젠 불러 볼 이름 조차도 없고 저 산 아래에서 이곳 까지가 천리길처럼 멀다.
오랜만에 올라와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육신이 뇌쇄하여 버텨낼 힘이 없었다는 걸 인정하고 정상석과 마주한다.
날파리들을 휘휘 젖어 몰아내고 인증용 사진을 가족들에게 전송하여 환갑의 나이에 천왕봉에 오른 것을 상기 시켜 놓는다.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애가 된다고 내 것은 내가 챙겨 먹어야 한다.
월요일의 천왕봉은 인적이 없것만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워 주고 제석봉을 향해 내려선다.
고산 이기도 하지만 서늘해진 날씨가 가을 스럽게 변해 간다.
산오이풀과 쑥부쟁이와 구절초 그리고 용담이 포인트가 된 가을 색체다.
느림도 쉼도 수련에 의한 내공이 있어야 됨이 증명되고 있고 제석봉의 전망대에서 폭염에 대한 갈증을 풀어 내듯 바람만 실컷 맞는다.
헐벗어 내면의 모습을 들어낸 제석봉의 돌틈 사이에 야생화들은 순천만 정원에 가꾸어 놓은 꽃밭보다 더 어여쁘다.
날로 쇠약해져 가는 식생인데 약용으로 뿌리를 채취를 한 듯 군데 군데 훼손된 흔적들은 제석평전의 아픔을 닮았다.
천상의 화원 인들 홀로 산길에서의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조적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늘이 없는 공간은 머묾도 허락 치 않는다.
뒤돌아 지리의 선경과 작별하여 장터목대피소에 내려선다.
파장이 아니라 아예 장이 서질 않아 음식 냄새로 고문을 가해야 할 취사장에도 야외 탁자에도 사람이 없다.
외계에 나 홀로 떨어진 듯한 적막감과 나를 감시하는 듯한 카메라와의 신경전이 나를 피곤케 하여 이른 도시락을 먹고 일어 선다.
식수를 취사장 앞에까지 끌어다 놓아 편리성을 향상 시켰지만 몇 걸음 아래에 식수장이 있다.
돌길의 내림길은 무릎에 통증을 안긴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과는 엇박지를 내고 있는 걸음걸이가 영 불안스러운데 자칫 명령을 수행해 내지 못할까 봐 내내 염려스럽다.
긴장됨은 땀방울로 시각화 되어 뚝뚝 떨어져서 계곡에 물을 더하였고 계류가 존재를 들어 낸다.
구름이 몰려와 능선을 지우고 있고 내려 설수록 더운 공기가 피부를 촉촉하게 만든다.
햇살은 나뭇잎에 투영 되면서 더욱 짙푸르러서 성하의 계절을 붙잡고 있고 바람의 조력이 없어 더위가 머물러 있다.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의 냉각수가 쏟아 지는 듯한 유암폭포도 더위를 식혀내지 못한다.
계류의 웅장한 물소리는 공포용 일뿐이다.
발걸음은 자꾸만 돌부리에 걸리고 있다. 사색 마 저도 철저하게 차단시켜 놓고 .조련을 하듯 한눈을 못 팔게 하면서도 도무지 나를 받아줄 기미가 없는 지루한 내림 길이다.
폭포 길을 찾고 샛길을 탐하던 때는 진짜 옛이야기다.
낙석위험으로 계단을 놓아 우회 시켜 놓았는데 안전의 댓가가 과한 느낌이 든다.
딴딴해져 있는 종아리가 퇴업을 따지지만 이젠 조강지처의 말이 옳음을 잘 알고 있다.
괜스레 샛길을 탐하는 과욕은 사고를 불러 오고 되돌아 오기에는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만 함이다.
발걸음의 정직함은 칼바위삼거리의 쉼터에 내려 놓는다.
산행을 잘 끝내고 있다는 것은 기분 탓이다.
지친 몸의 억지 걸음은 칼바위를 지나도 이어지고 있는 등로에서 탈출구인 아치 만을 찾고 있다.
텅 빈 야영장의 시멘트도로 옆으로 데크가 설치되어 쬐금은 수월하게 도로에 내려선다.
길섶으로 휩쓸린 낙엽이 가을의 매개체를 자처했으나 뒹굴고 있는 낙엽일 뿐이다.
공사현장의 난잡함에 문이 닫힌 가계 그리고 도로에 갓길 금지의 설치물들은 도무지 이곳이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공원지역인지를 의심케 할 뿐이다.
삼고초려를 하듯 지리산과 친해질 때까지 계속 찾아 오고 싶어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