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유산 눈꽃 산행 ***
-.일자 : 2025년 1월 18일
-.코스 : 삼공리주차장-구천동계곡-백련사-향적봉-중봉-백암봉-동엽령-안성탐방지원센타
(17.4km / 5시간 43분)
요 며칠 금주를 했었고 근교로 눈 산행도 다녀 와 덕유 설경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놓았는데 날씨가 너무 포근하다.
무주 참 오랜만이다. 선입견에 출발지가 안성탐방센터로만 알았는데 곤도라팀을 위함으로 버스는 삼공리로 들어서고 있다.
가지 않으면 세월이 아니라지만 스쳐 지나간 산천은 변함이 없고 빼곡히 주차된 차량과 수많은 산객들로 여전히 북적인다.
어차피 팀 산행은 의미가 없어졌고 인파에 섞여서 평소대로 나 홀로 산행이 되었고 눈길을 조깅을 하듯이 성큼성큼 걷고 있는 두 사람이 길잡이가 된다.
도로에도 계곡에도 하얀 눈에 덮여 있고 어사길이 사람들을 분산시켜 놓았다.
무릎보호를 위해 아이젠을 하지 않았고 엉거주춤 걸어 긴 구천동 계곡의 끝자락인 백련사에 도착한다.
사찰은 봄을 맞이한 듯 따스한 햇살을 받아 처마에선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눈꽃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오르막이 줄을 세운다.
설 녹은 눈과 계단을 덮은 어설픈 적설량은 점점 두께를 더해가고 있고 사람들의 고달픈 몸짓과 거친 호흡에서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동질감도 느껴진다.
정년퇴직도 하여 다리심이 빠질 나이대가 되었지만 나름 꾸준한 운동으로 오르막에 최적화시켜 놓았는데 페이스를 잃어버려 난 더 힘들다.
틈새를 공략하여 어찌어찌 추월하면 또 다른 무리들로 정체가 되고 또 길게 이어진 줄로 추월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적설량에 비례하여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고 조망이 트이며 산그리메가 펼쳐진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를 것만 같은 날씨에도 봉우리들이 선명하지만 난 불러줄 이름들을 잃어버렸고 그저 망연히 쳐다만 볼 뿐이다.
대피소 갈림길에서부터 나뭇가지는 눈을 한 움큼씩 담고 있어 무척 위태롭고 시원한 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 준다.
사람들 엄청 많고 두 개의 정상석에다 길게 줄을 잇고 있는데 100대 명산이란 헛개비가 만들어 놓은 진풍경이기도 하다.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한다. 저 무주 스키장은 한때 겨울철 여행지로 매년 찾았었는데 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잊혀 있었다.
허리까지도 위협하는 수북한 적설량에 설 녹은 눈은 미끄럽고 아이젠의 발톱이 박히질 않아 미끄러운 길을 내려와 취사장에 들어선다.
몹시도 추울 거라 예상을 하여 김밥과 핫바 등의 행동식을 준비를 했는데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라면과 속을 뒤집어 놓는 고기 굽는 냄새는 고문이다. 후회를 않으려고 해도 마누라 보온병을 가져가란 말이 자꾸만 되씹힌다.
산정의 차가운 냉기는 눈을 보관해 놓았고 주목의 나뭇가지는 먹다 남은 케이크처럼 하얀 눈을 한 가득씩 담아 축 늘어져 있다.
어중간한 설경에 눈을 마주치기도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어중간한 덕유의 풍경이다. 그마저도 다져진 외길만을 통행해야 하여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해 주마간산이고 정상석 없는 중봉에 오른다.
날씨가 온화함에도 가시거리가 무척이나 좋아서 중첩되는 능선을 따라서 남덕유가 조망된다.
눈이 덧칠을 하고 골짜기의 음영에 골격이 그대로 드러낸 날것 그대로의 적막한 산상고원을 산군들이 개미가 기어오르듯 길게 줄을 잇고 있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 와 백색의 세상이고 반사 된 광량에 실명이 될 것 만 같다.
평원만 같았는데 다져진 눈길을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을 숨기고 있다. 눈이 나무를 삼켜 버린 눈꽃 없는 한라산과 흡사하다.
등로는 외나무 다리가 되어 어쩔 수 없이 한쪽이 양보를 해주어야 하여 걷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거리감이 없다.
도대체가 백암봉이 이렇게 까지나 멀었었나 싶어 이정표를 확인한다.
오징어게임을 하듯 사람이 오면 멈추고 안 보이면 내달려서 한잔들을 드셨는지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산님들을 산지킴이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동렵령에 내려선다.
저분들 저 눈길을 어이 헤쳐 나갈런지 내가 걱정되는 시간대이다.
산속이라 그런지 으슥해지고 있고 이젠 안성에서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눈 쌓인 적막한 산길을 나 홀로 터벅터벅 내려간다.
거친 세파에 시달리고 휩쓸려서 조금은 희로애락에서 의연한 나이가 되어 있다.
아무 생각 없는 단순한 내림길이다. 이건 눈꽃산행이 아닌 그냥 눈 산행이고 트레킹이다.
진행해 온 거리도 있고 어차피 버스는 무주리조트에서 출발도 하지 않았을 시간이라 땀을 식혀 가며 내려섰으나 안성탐방소 주차장은 승용차로 빼곡할 뿐 버스는 없다. 도로를 따라 마을까지 내려왔어도 버스가 주차할 공간은 없어 결국은 가게에 스며 들어서 자릿값으로 소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