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 백운산 산행 **
-.일자 : 2023년 2월 1일
-.코스 : 논실-한재-신선봉-상봉-억불봉헬기장-노랭이봉-동동마을(13.7km / 5시간 10분)
결단력의 부족으로 입암산의 안내산행을 곁눈질 하다가는 결국에 나 홀로 산행 길이다.
요즘에는 나와의 타협에서 익숙해져 가면서 자기합리화에는 마음의 안정까지 찾고 있다.
동동 마을에서 백운산행 시내버스와의 시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출발시간을 늦추었는데 옥룡면에 접어들자 앞에 빨간 버스가 가고 있어서 겨우 추월을 하여 올라 탄다.
버스에 오르자 엉덩이에 불붙은 것 마냥 내달리는 낌새를 눈치 챘던지 기사님이 산행을 하느냐고 아는 채를 한다.
손님이 없으니 종점인 논실까지 논스톱이다.
정적인 마을은 그림 속의 풍경화가 되어 있고 눈이라도 내릴 듯이 잔뜩 흐린 흑백 화면 속에서 내가 살포시 끼어들면서 활동사진의 주역을 자처한다.
시멘트 임도가 나뭇잎 하나 매달려 있지 않는 나무숲을 가르며 신작로처럼 길게 뻗어 있을 뿐 움직이고 있는 나와 졸졸거리는 물소리만이 현실감이다.
다람쥐가 내달리는 소리 마저도 감지 될 만큼의 적막한 공간 속에서 무거워진 몸 덩어리로 중력을 거슬러 올라 가면서 오직 나에게만 집중을 해 나간다.
숲이 바스락거린다.
몸은 순간적인 위험 감지에 긴장 모드로 전환 되고 사주경계를 하는데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근래 최강한파에 얼어 버린 호스 흔들어 대면서 재정비를 하고 있다.
아~ 쪽 팔리고 다리에 힘만 풀린다.
한재는 바람길이 되어서 넘어 오는 찬바람이 화끈거림을 식혀주고 상봉으로 향한 된비알은 다시금 산행에 집중도를 높여 놓는다.
그 동안 산행 자체가 없었다 보니 이 길이 이렇게나 길었었나 싶게 지루한 오름 길이다.
이토록 이나 산길을 모조리 지워 버린 몸의 적응력이 실로 놀랍다.
세차게 불고 있는 바람이 등로를 마당 쓸 듯 쓸어 놓고 산길을 내어 놓았다.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의 날카로운 소리에도 칼날 같은 냉기가 실려 있지 않음은 그나마도 다행스러우나 그 위력에는 육중한 몸이 휘청거린다.
바람은 확연하게 체감온도를 떨어 뜰이고 있어 환절기와 같은 2월 첫날이다.
제트기가 이륙하는 듯한 굉음이 길동무가 되어 주었고 그 흔적들이 떡가루처럼 하얗게 엉겨 있는 신선봉에 올라 선다.
이곳까지 쉴 자리도 없어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마냥 왔지만 지리산은 구름이 지워 놓았고 도솔봉조차도 보여주질 않는다.
잔설이 걸음의 제어권을 빼앗아 버려서 울퉁불퉁한 바위 길의 사면을 어설프게 지나 상봉에 올라 선다.
태백산의 바람은 샛바람에 지나지 않을 만큼 거세기 물아 치고 있는 태풍급의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상석은 진공상태 속에 있는 것만 같다.
정상에 올라 거풍을 하듯 두 팔을 벌리고 온 몸으로 바람과 맞짱을 뜨면서 나약함을 털어내고 건재함을 과시하려 해보지만 자연에게는 미약한 존재만을 확인 한다.
에구 추워라.
바람이 미치지 못한 비탈은 온실 속인 듯 온화하다.
주변의 상황들을 살피며 복장을 재정비하여 산행을 이어간다.
기계음 방향으로 계단 보수공사 현장이 목격되면서 이들로 인해 순삭으로 베짱이가 되어 버렸고 또 자재를 운반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한량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저 이렇게 걷기만 하고 있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지고 있는 산길이다.
낙엽을 털어낸 나뭇가지는 거센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이 바람만을 걸려 내고 있고 상처 입은 바람의 절규에 몸은 절로 반응하여 움츠려 들고 있다.
차가운 겨울의 정갈함이 느껴지는 등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발걸음만 떼면 되는 단순한 산길이다.
쉼 없이 무심히 걷는 산길에서도 벼린 칼날이 무디어 가듯 산행 자체를 망각한 채 점점 힘에 겨워 가고 있다.
등로가 마실길처럼 아늑하게 이어지고 있어도 쉴 곳이 마땅치 않아 전망대역할을 하고 있는 바위를 바람막이 삼아서 점심 자릴 잡는다.
뭇 생명체들도 이처럼 둥지를 틀고서 이 한 겨울을 보낼 터이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듯 산하를 굽어 보면서 한껏 여유를 부린다.
주 능선상에 마땅한 쉼터가 없기에 산림과에서 올해 내로는 쉼터를 마련해주기로 했는데 실행이 될련지는 기다려 봐야겠다.
고도를 점차로 낮추어 가면서 수분이 얼어서 땅이 부풀어 오르는 배부름 현상에 눈을 밟은 듯 푹푹 빠져 들어 수렁에 빠진듯한 기분이다.
봄날이 다가 오듯 해빙기의 날씨는 옷을 어쩌지 못하게 하여 땀이 베어 나고 식곤증 마냥 몰려 오는 노곤함에 기가 다 빠져 나간 듯 힘이 없다.
이 작은 몸짓에서 떨어진 땀방울들이 초목에 성장눈을 깨워 봄의 희망을 보았으면 하지만 그럴 기미는 애초에 없다.
억불봉헬기장에 한때는 함께 활동을 했었던 산우분이 올라 온다.
이곳을 오르는 것에도 영 힘이 딸려 애를 먹었다는 것으로 세월의 무상함 만을 공감하고 질퍽거리는 길을 내러 선다.
노랭이봉에는 상봉에서의 바람의 잔병들이 방어선을 치고 있지만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 따스한 커피를 마시면서 지니 온 산행 길을 더듬어 본다.
아직은 언제든 산행에 나설 수 있는 체력이 있어 감사하다.
바람이 사면의 낙엽들을 모조리 휩쓸고 와 등로를 솜처럼 푹신하게 만들어 놓았다.
블랙아이스가 된 듯 복병이 되어 발길로 더듬어 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 새로운 길을 내어 가지만 나뭇가지의 저항 또한 만만치가 않는 하산길이다.
어머님으로부터 전화다.
광양 장날이라 사온 굴이 하도 싱싱하여 다녀 가라는 전갈이니 오늘은 굴 안주에 술이 술술 잘도 넘어 가게 생겼다.
동동 마을의 고로쇠 공동작업장에는 남자들이 모여 있어 이것도 이 시기만의 볼거리가 된다.
기압 차로 멍멍 해진 귀가 뚫려 가며 광양읍에 도착하여 어머님의 정성을 한아름 안고 귀가하여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 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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