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조계산 산행**
-.일자 : 2023년 2월 12일
-.코스 : 선암사주차장-선암사-장군봉-연산봉-송광굴목재-보리밥집-굴목재-편백림-선암사주차장(14.1km / 5시간 11분)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져 가면서 희끔하게 밝아오는 아침은 불면증에 뒤척이는 밤을 몰아 내고 활기를 안긴다.
환절기에 산행지도 마땅치가 않아서 혹여나 사찰에 넌지시 와 있을 봄이나 엿보고자 조계산을 찾는다.
관람료가 없는 접치재를 회피한 것은 발걸음의 중첩됨을 없애고자 함이 컸었는데 이곳은 문화재관람료 감면 지원예산이 확보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도 여전히 봉이 김선달식 통행세 3천원을 받고 있다.
어디든 산사의 진입로는 정갈함이 있어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한다.
졸졸거리는 계류는 얼어 있는 대지를 적셔 나가고 있고 흙 내음에는 새싹이 올라 올 듯 봄기운이 묻어 난다.
선암사는 요즘 불사로 화려해져 가고 있는 타사찰들 과는 달리 세월에 물기가 마르고 주름들이 져서 조라해도 보이지만 전년고찰로써의 품격에 발걸음이 조심스럽고 겸손해 진다.
공원에 피어난 매화에서 행여 산사의 꽃 향기라도 맡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역시나 마음이 앞섰다.
대각암길로 들어선다.
한때 투박하게 만 보여 폐 암자인 듯 했던 대선루의 2충 누각이 여느 구조물보다도 고풍스럽게 다가 온다.
오름길은 자가진단이 시작이고 내면의 대화와 자문자답 속에서 문뜩 문뜩 무아지경을 경험해 간다.
경쟁의 습성이 주변 산객들을 살피게 되고 쉼 없이 올라야 하는 산행스타일 때문에 나는 여전히 힘에 겹다.
옛 향로암절터의 약수터에서 목이라도 축이려 했지만 쉼을 하고 있는 산객들이 이 마저 밀어 낸다.
급경사에 눈길이 밧줄을 부여 잡게 만든다.
이 길이 이리도 힘에 겨웠고 이렇게나 길었었는지를 새삼 느껴 가면서 나의 저질 체력을 자책하며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첩첩 산중의 골짜기 마다를 흰구름이 메우어 놓아 도화지 같이 펼쳐진 산하의 산너울 속에 모후산과 무등산 등의 봉우리들이 솟아 눈길을 붙고 있다.
그 동안에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봄날만 같았던 날씨로 흐믈흐믈해져 있는 몸은 산정에 진을 치고 있는 한겨울의 냉기에 석고상처럼 딱딱해져서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그제 내린 비가 봄날을 불러 올 줄만 알았지 이렇게 한겨울처럼 새하얗게 눈을 쌓아 놓았을 줄은 몰랐다.
산에서의 머묾을 오래 가지고자 보리밥집을 향해 곧바로 내려서지 않고 연산봉으로 향한 등로는 완연한 겨울 풍경이지만 눈꽃이 없음이 조금은 아쉽다.
선답자의 발자국에 발맞춤을 하면서 어기적 거리던 걸음걸이가 급경사를 벗어나면서 몸의 자유를 얻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눈 산행에 눈이 호강을 하고 있고 심장의 박동에 따라서 휘날리는 하얀 입김은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어 준다.
점차로 산행에 익숙해져 가면서 긴장이 풀려 가고 있고 흑백처럼 선명힌 풍경들은 동화속인 것 마냥 살포시 다가 와 있다.
빼곡한 나목들이 길을 내어 주어 평소에도 걷기가 좋았던 순탄한 길인데 얼룩 젖소마냥 듬성듬성 들어나고 있는 흙 길이 색다름을 준다.
가끔씩 햇살이 나의 상태를 살피 듯 서치라이트처럼 전신을 비추다가 지나 갈 뿐인 걸거침이 없는 고느적한 산길에는 바람의 미미한 저항만이 나와의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나뭇잎새의 흔들림 마저도 없이 모든 것들이 정지된듯한 산속에서 생명체는 오로지 나 뿐인 듯하다.
방향을 휘돌아 가면서 눈은 설 녹아 엠보싱화되고 얼음이 되어서 발걸음을 삐걱거리게 만들고 바짓가랑이에는 흙이 튕겨 오른다.
자율주행모드가 해제 되면서 주변 상황의 정보 취합에 머리가 과열되어 땀이 흐른다.
점점 얼룩 문이가 갈색의 부드러움으로 바뀌어 가고 날씨도 봄날처럼 포근해 졌다.
앞이 훤해지면서 커다란 피자 위에 토핑처럼 새하얀 눈이 뿌려진 연산봉에 올라 선다.
뿌옇게 흐려 있는 날씨 속에서도 장군봉 뒤로는 백운산자락이 하늘금을 긋고 있고 보리밥집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를 것만 같다.
이젠 산길도 카펫의 부드러운 양모 같이 갈색으로 변모했고 산행의 미션을 끝내 버린 것 마냥 오르막도 없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옛 선연들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갔듯이 등산객 하나 넘나들고 있지 않은 송광굴목재에서 보리밥집을 향해 내리막을 내려 간다.
흙이 붙어 있는 길은 질척이고 빗물에 휩쓸려 나간 돌길은 발길을 더듬게 만들지만 두발로 지탱을 하니 팔은 자유로움을 얻었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이 공간도 썩 아늑하게 느껴진다.
배도사대피소에 졸졸거리는 물이 댐으로 흘러 가뭄을 해소 시키고 나는 이 고단한 움직임에 혈류가 온몸에 힘차게 흘러 자가 치유제가 되어 주었으면 싶다.
산행에 무병장수의 희망을 심어 보리밥집에 스며 든다.
보리밥집이 장터와 같이 북적이고 화끈한 열기가 있다.
산에 든 모든 이의 쉼터가 되어 주고 약속의 장소이자 산행의 목적이 되어 주기도 하기에 아는 이 하나 쯤 있을 법도 한데도 히잡을 쓴 것마냥 모습들을 감추고들 있으니 나 홀로 보리밥을 먹고 난로가로 옮겨 앉아 커피로 노곤함을 달랜다.
아랫집에는 오프로드 차들이 제법 주차되어 있어 우리들 또한 사전 정보도 없어 무모하게 차 바닥을 글어가면서 올라 왔을 때가 중첩된다.
괜히 사면 길을 택해서 눈길보다 미끄러운 길을 나무를 부여 잡고서야 겨우 탈출을 하여 신발에 모래주머니처럼 잔뜩 엉겨 있는 흙을 털어 낸다.
먹어야 살지만 또 먹었던 게 이렇게나 부담이 되어 선암굴목재의 오름이 고되다.
채움과 버림을 그리고 오름과 내림의 연속인게 등산이지만 또 매번 반복하고 있는 게 인생사다.
돌길의 급경사가 기력을 내려 놓자 계곡에는 폭포수가 흐른다.
계곡에 물이 이렇게도 많이 흐르고 있는데도 대체 어디로 증발되어 버리고 댐 안에 섬들이 들어나고 있다.
신발을 씻고 있는데 의자에서 쉬고 있는 사람의 눈초리가 레이더 광선처럼 박혀 들고 있어 눈을 마주하니 회사 동료의 부부다.
나도 한때는 집사람과 전국의 산을 찾아 다녔고 테마들을 했었는데 세월은 집사람을 집안에 가두었고 이젠 나 마저도 산행을 찔끔찔끔 이어 가고 있다.
곧게 솟은 편백림아래의 쉼터들과 야외학습장의 오두막들이 공원처럼 안락함을 준다.
두 손을 맞잡고 거니는 연인들은 꽃피고 향기 나는 화창한 봄날이다.
가족인 듯 여인과 친구들인 듯 마냥 즐거워만 보이는 사람들이 진입로를 꽉 메우고 있어 차 체험관에 올라 본다.
한옥 건물의 툇마루에서 차 시음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옛 선연들의 재현처럼 멋스러워 보여도 홀로 인 나에겐 머묾을 허락하지 않는다.
출발 시에 차의 방전과 산행에 뜻하지 않았던 눈이 복병이 되었지만 어쨌든 나섬이 여행은 되었고 집착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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