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산 산행 **

-.일자 : 2023년 9월 24일

-.코스 : 불갑사상사화축제장-관음봉-덧고개-장군봉-연실봉-구수재-불갑사-주차장(9.6km / 6시간 27분)


휴일마다 내리고 있는 비에 감금을 자처한 내 몸에서는 술에 촉촉하게 젖어 누룩 곰팡이가 슬게 생겼고 계절의 순리까지 싸그리 무시하면서 지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더위에도 짜증이다.
모처럼 신청을 해 놓았던 불갑산 산행을 대체 근무로 취소를 해야만 했었는데 종일토록 쏟아낸 폭우는 도로에 알록달록한 낙엽을 흩뿌려 놓아 계절을 더 쓸쓸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동 송림의 상사화를 찾아 간다.
유아들이 밑 그림 위에 덧칠을 한 듯 울창한 송림 아래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색감에서는 황홀함이 느껴지고 섬진강 강바람이 꽃을 붙잡아 놓고 있어 불갑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산행후기들로 보아선 불갑사는 상사화 개화절정기를 이미 넘어 섰어도 계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듯 이 계절에 정취로 봐줘야 할 곳 중에 하나다.
뒤늦은 산행 신청 명단 속에는 친구들이 있어 첫 산행에 대한 어색함은 던 듯 하고 도시락과 성인 음료를 챙겨서 가을 소풍을 나서듯이 버스에 오른다.  
진입로에 사열을 하듯 꽃무릇이 피어 있고 벼들이 익어가고 있는 논둑의 경계가 꽃들로 붉게 물들어 있다. 
요즘 다이어트에는 탄수화물이 적이 되어 있어 벼 수매 가격이 똥값이 되어 버린 세상이니 논은 주자장이 되고 행사장으로 변해서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다.
수많은 산악회의 버스들이 이미 주차를 하였고 참으로 배부른 세상이니 성인병예방에는 산행 만한 처방책이 없어 보인다.
작년에 없던 입장료는 고스란히 상품권으로 되돌려 주는데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참신한 발상이다.


어째 친구들이 미적 꺼리면서 오질 않고 있다.
정말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나다.
이때 상황파악을 했어야 했지만 입장권을 끊어 놓은 터라 때를 놓쳐 버렸고 얼떨결에 혼잡한 진입로를 빠져 나와 관음봉을 향해 함께 오른다.
상사화의 꽃술은 퇴색되고 허리는 꺾이어서 볼품이 없어도 숲이 안겨주는 아늑하고 넉넉함이 휴먼 상태인 세포에게 응급처치를 하여 정신이 맑아진다.


아침에 선선하게 불어 오던 바람도 언제나 싶게 쌩 까버렸고 고작해야 200m 남짓인 오름 짓에서 땀이 베어 나고 숨이 가쁘다.
가을이 실종된 날씨에 산하는 푸르디 푸르기만 하다.
불갑사는 불갑산의 아늑한 품에 안겨 있고 산행 루트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는 산금이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지금 우리들 상황으로 보아선 완등을 한다는 것은 요원할 것 같다.
산에 들면 맹금류와 같이 저돌적이던 참수리는 이미 날개를 접었고 놀자놀자는 닉 대로 얼려 온 맥주가 관심사라서 이젠 어쩔 수 없이 놀며 즐기는 피크닉산행에 적응을 해야만 한다.


덧고개에 내려서면서 정체가 시작되고 몰려 든 사람구경이다.
온갖 인간 군상들이 다 모여든 탓에 호랭이굴까지 보조를 맞추다가 노적봉까지 그냥 오른다.
정상 같지 않은 봉우리지만은 그래도 인증을 남길 공간쯤은 남겨 두는 게 예의일진데 단체가 벌떼처럼 산정을 장악하고 있어 볼썽 사납다.
이 사람들 또 왜 그런 겨?
항상 느낀 것이지만 여자들은 공주병에 걸리고 남자들은 머슴을 자청하는데 다들 산에만 들면 왜 이런 증상들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숲은 성장기의 푸르름을 그대로 담고 있어 녹음 속에 사람들이 무척이나 편안해 보인다.


불갑산은 부처님의 자비로 자그마한 봉우리도 법성봉과 투구봉의 이름을 얻었고 우회 길도 만들어져 있지만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다.
놀자놀자가 군산산악회원을 추월하며 멋들어지게 군산항 노래를 불러 재끼고 여성분이 흥을 맞추는데 이런 가사를 알고 있다는 게 난 더 신기하다.
한바탕 와짝시끌한 산악회의 일행들과 헤어지고 우리들만이 다시 합체되어 장군봉을 향한 긴 계단을 오른다.
장군의 위용보단 평평한 쉼터와 흙 길로 포용이 있어 이른 시긴 이긴 하지만 점심 자릴 잡는다.
여길 내려가면 영산기맥이 접속되는 노루목이고 정상은 그늘이 없기도 하지만 북적거림을 피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펼쳐진 브런치가 잔치뷔페다.
요즘은 편의점의 행동식이 대세인데 우리들의 소풍분위기에 심취하여 지나가고 있는 등산객들은 행인이고 그림자일 뿐이라서 우리들만의 심취에 목청이 커져가고 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점점 장터처럼 변해가고 있어 자리를 양보하고 노루목으로 내려 와 무디어진 칼바위에 오른다.


연한 황금빛으로 무르익어가고 있는 들녘이 계절의 변화를 시각화 할 뿐이다.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실봉에 올라 선다.
상사화축제기간을 맞이한 불갑산이 오픈런을 하였으니 긴 줄이야 당연스런 현상이고 이 모든 사람들이 억지 산행이라면 투덜거림이 있을 것인데 감수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선택해서 일 것이다.
어떠한 보상을 바라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들을 지루한 업무로 만들어 버리는 법이다.
그래서 일까? 아이스크림을 외치는 소리가 공허하다.


어영부영 걸은 것 같아도 정상을 밟았고 이젠 하산만 남아있다.
쉼터에 잘릴 잡아 산행에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키며 허허실실 한 농담 속에 우정을 다지는데 싸늘해진 공기만큼이나 주변이 조용하여 파장 분위기다.
그 많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증발해 버린 듯한 공허감이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구수재에 내려서고 동백골로 직행이다.
바위 사이에 듬성듬성 피어 있는 꽃무릇이 화병에 꽃아 놓은 꽃 마냥 자꾸만 눈길을 끌어 들인다.
우리들의 시답지도 않는 꼴부견을 보다 못한 시간은 나 몰라라 내빼 버렸고 참수리는 꽃에 눈맞추느라 시간 개념도 없으니 상품권을 써야만 하는 우리만이 바쁘다.


불갑저수지에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에 평정을 찾고 불갑사담장을 따라 붉게 피어난 상사화를 보면서 상춘객 모드로 전환 시킨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붉게 물들어 있는 상사화군락지를 주마간산으로 빠져 나와 축제장으로 들어간다.


우연하게 친구를 만났고 초청 가수의 노래에 맞춰 어깨를 몇 번 들썩이다 보니 후딱 시간이 흘렀지만 지정한 시간은 딱 맞췄다.
그래도 우린 산꾼들이니깐……
아~ 이 가을이란 매력 덩어리가 또 얼마나 사나이 가슴을 후벼 팔까 미리 걱정된다.
부지런이 산에 다녀 가을앓이에 대한 예방 처방이라도 해 놓아야겠다.


창평의 국밥거리로 이동하여 큼큼한 냄새를 풍기는 곱창 전골로 석식을 겸한 하산주를 하는데 우리들의 술심은 주인장의 자부심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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