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찬 휴일 보내기 **
-.일자 : 2025년 6월 20일
-.장소 : 백운산포수코수련관-노랭이봉-수련관둘레길-서천변장미공원-서천변-LF스케어-모임
늙으니 참 불편한 게 많다.
눈도 침침하고 체력도 딸리는데, 젊은이들은 풀로 가동되고 있는 강냉방 속에서도 반팔을 입고 덥다고들 한다.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만 하는 나는 방전된 체력에 상습적으로 감기 증상을 달고 다닌다.
그 후유증이 건강 챙기자고 간 수영 후에도 있어, 모처럼의 수련관 휴양소에서는 이불만 덮고 있다가 새벽잠을 깬다.
숲속 휴양소의 짙은 어둠과 흩뿌렸던 비에 아스팔트가 젖어, 기상 상태를 종잡을 수 없지만 무조건 나서고 보는 것만이 답이다.
가로등도 꺼졌고, 일출 시간이 되었음에도 안개가 사위를 감춰 놓았다.
전망대 비탈에 핀 노란 금계국만이 환하다.
인적 없는 길을 자박자박 걸어간다.
숲의 빈 공간을 안개가 채워서 몽환적이다.
소방도로가 새롭게 뚫리면서 등산로 초입이 확실하게 정리되었다.
새소리만이 청아한 아침이 왔는데도, 어둠은 숲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정적인 공간에서 거미줄의 미세한 엉킴도 오감에 감지되어 소름이 돋는 듯하다.
나는 고독을 벗 삼아 이 숲속을 걷는다.
살아 있는 자의 본능적인 움직임, 그리고 이 고단함 속에서 오히려 삶의 희열을 느낀다.
회색의 산하가 초록의 천연색으로 바뀌었고, 고된 오름짓은 온몸에 혈류를 돌게 하여 불그레한 혈색이 일출을 대신한다.
역시나 백운산이다. 구름과 안개가 휘젓고 다니며 산하에 덧칠을 하여, 역동적인 자연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 짧은 쾌감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감을 느낀다.
한바탕 쏟아진 빗물의 흔적인지, 아니면 안개와의 유희가 남긴 자국인지, 풀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피해 몸을 숨기듯 바지에 스며든다.
숲의 회복력이 등산로를 덮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를 헤치고 지나가야 해, 옷은 땀과 빗물로 젖고 닦아 내는 땀으로 자동세안이 되었다.
내가 산에 오르지 않았을 뿐, 여전히 사람들은 산길을 오가고 있었고 누군가의 손길로 정비되어 있어 덕분에 내림길이 한결 수월하다.
거친 너덜길도, 부드러운 흙길도 모두 삶의 과정과 닮아 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폭신한 흙길의 편안함도 그 모든 길이 결국 내가 걸어온 여정이다.
수련관에 도착하여 나는 안식을 찾았다. 땀에 젖은 몸을 씻으며 오늘도 보람된 출발을 했다는 만족감에 젖는다.
수련관 식당은 맛집이라 항상 과식하게 된다.
포만감에 비스듬이 누워 창문으로 스며드는 산바람의 신선함을 음미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수련관둘레길은 명품 산책길이다.
두리서 도란도란 걷는 길에 비가 끼어 들어 우산을 토닥이고 바람은 비옷을 들추며 기웃거린다.
비가 끼어든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져서 광양읍으로 이동한다.
같은 지역에서 유일하게 눈을 볼 수 있는 곳이 백운산이니, 비구름이 산을 넘지 못하고 비를 뿌렸던 듯 도로가 말라 있다.
점심시간이 조금 이른 탓에, 수국의 개화 상태가 궁금해 서천변의 장미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직은 꽃망울만 머금고 있다. 벚나무 터널을 이룬 산책로에는 장미의 향이 퍼지고 냇물과 부드러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온다.
비록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수변길이다.
이른 시간에 국밥집에 들어섰는데 만석이고 12시 전인데도 웨이팅까지 이어진다. 나에게는 그저 그런, 돼지머리 썰어 넣은 평범한 돼지국밥일 뿐인데, 왜 이 집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라가 온통 불황이라는데, 이렇게 북적이는 식당을 보면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육하는 것도 아니고, 조식을 먹자마자 점심을 먹었으니 배가 불러서 걷는 것도 거북하다.
서천변 하류에 꽃단지가 있고, 해바라기를 식재해 놓았다기 에 배를 꺼지기 위해 꽃구경에 나선다.
나라 꼴이 그래서인지 지자체도 영 신경을 안 써서 예년에 비해 방치되어 있고, 보라색 꽃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날씨는 무덥고 땀은 흐르고 있어, 이래선 아니 되겠다 싶어 LF로 장소를 옮긴다.
LF CGV의 영화 스케줄을 보며 SF나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기에 차선책으로 개봉작인 '악의 도시'를 예매해 놓았다.
우리의 취향이 남다른 건지, 아니면 시간대가 어중간해서인지, 이 큰 극장에 우리 부부만 있어 괜히 미안하지만, 그럴 만한 것이 딱 넷플릭스용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대관을 했다고 생색이나 낼 걸 그랬다......
맨날 백다방 커피만 마시다가 스타벅스에서 케이크까지 시켜서 분위기를 내 본다.
저 많은 사람들이 조잘조잘대며 즐거워하는데, 역시 이런 곳은 나에게는 안 맞다.
저녁 모임의 메뉴는 마늘 돼지갈비다. 겨우겨우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터라, 후식만큼은 극구 사양한다.
그러면 뭐 하냐고요?
순천에서 산 벚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중으로 집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
오늘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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