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찬 휴일 보내기 **

-.일자 : 2025년 6월 20일

-.장소 : 백운산포수코수련관-노랭이봉-수련관둘레길-서천변장미공원-서천변-LF스케어-모임

 

늙으니 참 불편한 게 많다.
눈도 침침하고 체력도 딸리는데, 젊은이들은 풀로 가동되고 있는 강냉방 속에서도 반팔을 입고 덥다고들 한다.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만 하는 나는 방전된 체력에 상습적으로 감기 증상을 달고 다닌다.
그 후유증이 건강 챙기자고 간 수영 후에도 있어, 모처럼의 수련관 휴양소에서는 이불만 덮고 있다가 새벽잠을 깬다.


숲속 휴양소의 짙은 어둠과 흩뿌렸던 비에 아스팔트가 젖어, 기상 상태를 종잡을 수 없지만 무조건 나서고 보는 것만이 답이다.
가로등도 꺼졌고, 일출 시간이 되었음에도 안개가 사위를 감춰 놓았다.
전망대 비탈에 핀 노란 금계국만이 환하다.

 


인적 없는 길을 자박자박 걸어간다.
숲의 빈 공간을 안개가 채워서 몽환적이다.

 


소방도로가 새롭게 뚫리면서 등산로 초입이 확실하게 정리되었다.

 


새소리만이 청아한 아침이 왔는데도, 어둠은 숲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정적인 공간에서 거미줄의 미세한 엉킴도 오감에 감지되어 소름이 돋는 듯하다.


나는 고독을 벗 삼아 이 숲속을 걷는다.
살아 있는 자의 본능적인 움직임, 그리고 이 고단함 속에서 오히려 삶의 희열을 느낀다.

 


회색의 산하가 초록의 천연색으로 바뀌었고, 고된 오름짓은 온몸에 혈류를 돌게 하여 불그레한 혈색이 일출을 대신한다.

 


역시나 백운산이다. 구름과 안개가 휘젓고 다니며 산하에 덧칠을 하여, 역동적인 자연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 짧은 쾌감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감을 느낀다.

 


한바탕 쏟아진 빗물의 흔적인지, 아니면 안개와의 유희가 남긴 자국인지, 풀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피해 몸을 숨기듯 바지에 스며든다.
숲의 회복력이 등산로를 덮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를 헤치고 지나가야 해, 옷은 땀과 빗물로 젖고 닦아 내는 땀으로 자동세안이 되었다.

 


내가 산에 오르지 않았을 뿐, 여전히 사람들은 산길을 오가고 있었고 누군가의 손길로 정비되어 있어 덕분에 내림길이 한결 수월하다. 

 


거친 너덜길도, 부드러운 흙길도 모두 삶의 과정과 닮아 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폭신한 흙길의 편안함도 그 모든 길이 결국 내가 걸어온 여정이다.

 


수련관에 도착하여 나는 안식을 찾았다. 땀에 젖은 몸을 씻으며 오늘도 보람된 출발을 했다는 만족감에 젖는다. 

 

 

 


 
수련관 식당은 맛집이라 항상 과식하게 된다.
포만감에 비스듬이 누워 창문으로 스며드는 산바람의 신선함을 음미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수련관둘레길은 명품 산책길이다.

 


두리서 도란도란 걷는 길에 비가 끼어 들어 우산을 토닥이고 바람은 비옷을 들추며 기웃거린다.
비가 끼어든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져서 광양읍으로 이동한다.


 
 
같은 지역에서 유일하게 눈을 볼 수 있는 곳이 백운산이니, 비구름이 산을 넘지 못하고 비를 뿌렸던 듯 도로가 말라 있다. 
점심시간이 조금 이른 탓에, 수국의 개화 상태가 궁금해 서천변의 장미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직은 꽃망울만 머금고 있다. 벚나무 터널을 이룬 산책로에는 장미의 향이 퍼지고 냇물과 부드러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온다.
비록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수변길이다. 

 

  
이른 시간에 국밥집에 들어섰는데 만석이고 12시 전인데도 웨이팅까지 이어진다. 나에게는 그저 그런, 돼지머리 썰어 넣은 평범한 돼지국밥일 뿐인데, 왜 이 집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라가 온통 불황이라는데, 이렇게 북적이는 식당을 보면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육하는 것도 아니고, 조식을 먹자마자 점심을 먹었으니 배가 불러서 걷는 것도 거북하다.
서천변 하류에 꽃단지가 있고, 해바라기를 식재해 놓았다기 에 배를 꺼지기 위해 꽃구경에 나선다.
나라 꼴이 그래서인지 지자체도 영 신경을 안 써서 예년에 비해 방치되어 있고, 보라색 꽃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날씨는 무덥고 땀은 흐르고 있어, 이래선 아니 되겠다 싶어 LF로 장소를 옮긴다.

 


 
LF CGV의 영화 스케줄을 보며 SF나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기에 차선책으로 개봉작인 '악의 도시'를 예매해 놓았다.
우리의 취향이 남다른 건지, 아니면 시간대가 어중간해서인지, 이 큰 극장에 우리 부부만 있어 괜히 미안하지만, 그럴 만한 것이 딱 넷플릭스용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대관을 했다고 생색이나 낼 걸 그랬다......

 


맨날 백다방 커피만 마시다가 스타벅스에서 케이크까지 시켜서 분위기를 내 본다.
저 많은 사람들이 조잘조잘대며 즐거워하는데, 역시 이런 곳은 나에게는 안 맞다.

 


 
저녁 모임의 메뉴는 마늘 돼지갈비다. 겨우겨우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터라, 후식만큼은 극구 사양한다.
그러면 뭐 하냐고요?
순천에서 산 벚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중으로 집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
오늘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성황 구봉산 오르기 ***

-.일자 : 2025년 6월 20일

-.코스 : 더샆-어사길-제2쉼터-구봉산전망대-임도-성황-더샾

 

재취업이 되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사내 건강검진으로 휴가가 발생해 공짜로 하루가 생겼다.
검진을 받고, 그동안 금주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국밥에 소주 한 잔을 하는데, 국밥이 그새 천 원이 올라 있고 사전 공지조차 없는 상술에 은근히 짜증이 밀려온다.
하여간 이 집은 중마동에서 술값, 밥값 올리기에 선도적인 가게여서 앞으로는 절대 내 돈 주고는 안 오리라 다짐한다.


넷플릭스 영화 하나를 보니 더위의 기세는 여전해도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하루를 마감하려 하고 있다.
새벽잠이 없어져 새벽에 컨테이너항의 공원길을 산책하고는 왔지만, 3일의 휴일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체력을 비축하고 중마동에서의 하루 놀기의 기록 삼아 구봉산을 오르기로 한다.



아차, 물병을 안 챙겼다. 되돌아설까 말까? 그냥 가자.


아파트 옆 성황천에는 오리와 왜가리가 먹잇감을 노리고 있고, 해바라기 단지의 해바라기는 해를 외면하고 토라져 있다.
생의 연속성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얽혀 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해 나간다. 나 또한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 길에 있다.
마냥 좋아서 걷는게 아니란 예기다.



산책로를 벗어나 어사길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왜 쌩뚱맞게 어사길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변방인 이곳에 등산로가 좋아진 것은 토지개발로 아파트가 생긴 덕분이다.

 


차 소리가 숲의 방음으로 점차로 옅어져 가고, 평온한 숲길이 이어진다.

 


산길은 길고 이렇게나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어 치유의 힐링 로드다.

 


계단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수직 상승에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모처럼 땀이 솟아 운동 효과를 증명한다.

 


계단참에서 조망된 성황개발단지는 황량하기만 하다.

 


누군가 계단의 개수를 적어 놓아 고달픔을 대신하였고, 등산로가 약간씩 선회를 하면서 작은 오르내림이 되어 쉼터에 내려놓는다.
여기가 시간 관계상 일상 운동의 턴 지점인데, 요즘은 운동 효과가 적어 가야산을 선호하는 편이다.

 


널찍한 임도가 등산로를 대신하고, 가족묘들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이런 나의 일상도 결국 저렇게 죽어야만 끝이 날 것 같은데, 나를 잘못 만난 내 몸만 괜히 고생이다.

 


임도를 벗어나며 작은 오름이 시작된다.
산객 한 분이 내려오며 정상의 전망대는 공사로 막아 놓았다며, 그래도 올라갈 거냐는 눈빛인데 난 올라간다.

 


개활지에 컨부두의 조망이 펼쳐지던 곳이 숲이 우거져 조망을 가렸고, 긴 계단길이 팔각정까지 이어진다.
정자의 전망대 역할은 사라졌고, 날파리들의 아지트가 되어 쉼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계단에 쳐진 출입금지 금줄을 넘어 전망대에 오른다.
구봉산에 체험형 조형물 건설 작업으로 온통 파헤쳐져 있다. 무시하고 정상에 올라 상황을 보려고 해도 감시카메라에 스스로 감시됨을 자처하여 머뭄 조차가 조심스럽다.

 


쓱 훑어 중마동과 광양만의 산업군들을 스케치하고, 능선상에 내림길을 그려 넣는다.

 


정자가 등산로를 숨겼고, 수풀이 은폐시켜 놓았다.

 


통행의 흔적이 없어 보이는 등로는 그나마 옛길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수풀에 감춰진 등로는 가시까지 숨기고 있어 지금의 계절에는 회피 하는게 좋겠는데,
예전에 비해 지금은 등산 인구도 확 줄었고 산행도 인증용으로 변해가고 있어 이 길도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조심조심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가시에 찔리지 않게 한 발 두 발 걸어서 임도에 내려서는데, 땀에 엉켜 붙은 거미줄과 벌레들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쉰 냄새까지 풍기니 곧 돌아가실 거라고 판단한 날파리 떼들이 윙윙거리며 정신을 빼놓고 있어, 진짜로 성질 때문에도 죽겠다.

 

 


골약주민자치센터까지 5.7km를 가리키고 있다.

 

 


남파랑길로 이정표와 표지기들이 잘 되어 있는 임도는 가끔씩 숲 사이로 컨부두가 조망될 뿐인, 그야말로 힐링의 숲길이다.

 


임도는 적막하고 해는 기울어서 그늘이지만 시원함은 없다.
한때는 호기심에 이끌려 모든 산길을 탐험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 길목들을 그냥 흘려보내며 임도만을 따라 시간 단축에만 급급하다.

 


도로에 내려선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오후, 물을 챙기지 않았다는 강박이 갈증을 부추겨서 햇살이 농축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도로공사의 절개지는 푸른 생명체로 덮였고, 논에는 모가 활착되어 푸르름으로 바뀌었다.

 


집으로 무사 복귀하여 하루를 되짚어 본다.
괜시리 낮술 마신게 오후를 무의미하게 하였고 구봉산 산행은 좀 무모했다.

 


나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데, 세월은 어느새 나를 앞질러 훌쩍훌쩍 지나가 버려 잡을 제주는 없고 나름 알찬 하루를 보냈으니 오늘은 외식이다.

** 감자 수확 하던 날 **

-.일자 : 2025년 6월 16일

 

어릴 적 우리 가족의 삶은 온통 농사에 매달려 있었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졌고, 비닐하우스의 경작지는 해마다 옮겨야 했다. 짚으로 포트를 만들어 모종을 심고, 매일 거적을 덮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온도 변화에 힘들어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친 보리타작과 해마다 반복되던 태풍에 의한 벼 쓰러짐, 실익이 없었던 양파 재배는 어린 마음에 농사에 대한 거부감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은퇴 후 전원생활이나 농촌에 대한 낭만은 나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농사일을 놓지 못하고 밭일을 하시며, 수확한 농산물을 핑계 삼아 자식들을 부르시곤 한다. 도와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자책이 쌓여 괜히 큰소리로 마음을 숨기려 할 때가 많고,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앙금이 쌓여 가고 있다.

 


어머니께서 그나마 복이 있으신 것은, 매주 어머니의 근황을 묻고 맛집 투어를 함께하는 여동생과, 먼 거리에서도 늘 찾아와 건강을 챙겨드리고 명소를 함께 다니며 적적함을 달래드리는 동생 부부가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이중적인 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밭에서 일하실 수 있는 어머니의 건강이 큰 위안이 된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그리고 그 삶을 이어가고 계시기에, 나는 오늘도 마음 한켠이 든든하다.
오늘만 해도 나는 나만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수영을 마치고 로커룸에서 휴대폰을 꺼내니 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중이라며 밭에 와서 가져가라고만 하신다.
자식에게 혹여 부담이 될까 봐 이 한여름 같은 퇘약볕에서도 혼자 수확을 다 해놓고 가져만 가라는 것도 괜히 귀찮고도 미안하다, 왜 이런 무더운 날씨에 말없이 홀로 밭일을 하셨는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천륜인 만큼 성질이나 내지 말자며 밭으로 달려간다. 정작 어머니의 몫은 비닐봉지 하나이고, 나는 몇 박스에다가 상추, 당근, 파 등이 트렁크에 한가득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한대인데, 내 자식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마땅한 도리를 요구하고 있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조금 거들었다고 생색을 내고 있는 나, 밭에서 어머니집에까지 오는 것도 자식 덕분에 차를 타고 왔다며 고마워하는 어머니. 우리는 천륜으로 맺어진 공생관계이지만, 어머니는 무한 희생이다. 

 


자식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어머니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지 않고 알을 돌보다가 죽게 되는 문어와도 같은 숭고한 삶을 살고 계신다.
효도라는 건 지금 당장 해야 하는데, 매번 가슴만 아리는 이 무거운 헤어짐이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모르겠다.

 

 

환갑이 넘었어도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의존증은 더해만 간다.

**조계산 산행**

-.일자 : 225년 6월 11일

-.코스:선암사주차장-향로암터-장군봉-장박골갈림길-연산봉사거리-장박골-보리밥집-큰굴목재-작은굴목재-선암사-선암사주차장
(14.6km / 5시간 50분)


한 번씩 다녀오는 여행은 기다림 속에서의 설렘이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자극제가 되었지만, 요즘은 해가 뜨면 일터에 나가고 해가 지면 보금자리로 복귀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평온함이 더 좋다.
생활 반경이 좁아지면서 여행이 주는 특별함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안정감과 잔잔한 행복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데, 생체시계는 게으름을 피워도 될 휴일 아침마저도 여지없이 나를 깨운다.

출근길 일출
되근길 중마동 일몰

 


어제 집사람에게 가볍게 툭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분위기가 냉랭하다. 옆에 있으면 보기 싫은 게 남편이라는데, 물병 하나 챙겨 다녀올 수 있는 조계산을 피난처로 삼는다.
나의 순간적인 기지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일상 운동인 가야산을 다녀오는 듯 현관을 나서니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현충일 연휴의 뒤끝이라 그런지, 드넓은 주차장에 내리꽂는 레이저 같은 햇살이 하도 좋아서 보리라도 말렸으면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녹음이 드리워진 넓은 진입로에 기분이 상쾌하다. 요즘은 우리의 일상이 회복된 것 같아 마냥 기분 좋은 날들인데, 졸졸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반주가 되어 허밍이 절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출발이다.

 

 

이른 시간이라 선암사에는 인적이 없고, 겹벚꽃의 화려함도 한 시절로 사라진 산사는 고요함만이 깊게 깔려 공양관마저도 인적이 없다.

 


나만이 유일하게 적막한 정적을 깨고 대각암을 향해 오른다.
목조건물이 세월의 흐름에 빛이 바래 처음엔 폐가쯤으로만 여겼던 대각암이였는데 지금은 아늑한 암자로 느껴지고, 수행 중인 스님의 독경이 흘러나온다.

 


나 홀로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번뇌를 내려놓는 수행의 길에 들어선다.
울창한 숲은 햇살을 완벽하게 차단하여 모자를 쓸 필요가 없다. 빈틈을 노린 날파리들로부터 무한 공격을 받는데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귀에 윙윙거리고 눈에 아른거려 귀찮다. 
눈앞에 비문증처럼 돌아다니는 날파리들은 눈 한 번 깜빡임으로 퇴치해 버린다.

 


오늘은 이 산속에서 오랫동안 머물고자 천천히 오르는데도 몸의 저항에 피부가 끈적거리고 땀이 옷을 적시고 있다.
선풍기 날개 같은 바람이 연신 불고 있어도 나의 자체 발열량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어, 향로암터의 샘물로 냉각수를 주입하고 심장 엔진을 아이들링 시켜 과열을 방지한다.

 


정상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고도를 높여 공기층이 달라졌어도 바람에 나뭇잎만 흔들릴 뿐 시원함이 없어 땀에 젖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정상을 밟는다.
정상은 고요하고, 우주의 공간인 듯 세상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듯하다.

 


나무는 시나브로 자라 승주호를 가렸고, 북사면으로 펼쳐진 파노라마 속에는 어머니의 젖꼭지와 같은 관측대의 모후산과 풍력발전기 너머로 무등산이 펼쳐져 있다. 

 


나는 푸르른 물결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유영한다. 모든 생명체를 품은 숲의 포용성에서 어머니와 같은 편안함을 찾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숲속에서 안식을 찾는다. 혼자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지만, 침묵 속에 내 몸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이 참 좋아 나는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접치재의 등로가 합쳐진 산길이 산죽 사이를 지나고, 계단을 따라서 동네 마실길처럼 이어진다. 이렇게나 정성 들여 등로를 가꾸어 놓았는데, 나라도 찾아와서 몸 튼실하게 만들고 열심히 일해 세금을 내줘야 한다. 

 

 

눈 오는 날 장박골 내림길로 무심히 내려섰다가 무릎까지 빠져 들어 혼쭐이 났었는데, 숲에 등로가 가려졌다.

 


아늑한 녹음의 숲과 푹신한 등로가 동네 마실길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함께할 산 친구가 없기에 홀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지만, 녹음으로 가득 찬 산길에 산새 소리만 들려오는 고요함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으니, 나도 이제는 산신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푸르름은 안정감이다.
송광사 갈림길의 쉼터이고, 장박골의 내림길이다.

 


정상선호로 연산봉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흐름을 패스하여 장박골을 향해 내려선다.

 


미답지였던지 낯설지만, 마른 계곡은 장박골에서 합류되어 만물에게 생명수를 제공하면서 주암호로 흘러 들어간다.

 


요즘 새끼발가락의 퇴업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는데, 긴 계곡길에서는 파업이 될까 봐 몸이 보내는 신호에 절로 반응하게 되어 이래저래 어렵다.

 


계곡을 따라 보리밥집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 독상을 받는다.
집 나와서 이런 호사도 없다. 그릇을 모두 비우고 다방 커피의 향기에 방전되었던 감성을 충전시킨다.

 


포만감에 작은굴목제의 돌계단은 지옥훈련장이 되지만 매번 반복될 뿐이다.

 


선암사로 곧바로 내려가는 내림길이 돌길로 고달파 오늘은 무릎의 통증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작은굴목제로 이동하여 선암사로 내려간다.
정상이나 보리밥집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 몰라도, 선암사에서 이곳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아 몇 번 오르지 않았던 곳이다.

 


기억을 재생시켜서 지형지물과 퍼즐을 맞추어 가지만 역시나 기억은 휘발되고 변질되어서 걷는 것만이 현실이고, 몸은 점차 적응하며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진다.

 


숲은 원시림처럼 나무의 듬치는 한아름이 넘고, 그 끝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편백나무 군락지에 와상의 쉼터가 있어 몸을 뉘어 본다.
높이 치솟은 나뭇잎새의 틈새로는 하늘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고 푸르기만 하여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기들이 일으켜 세운다.
어쩔 수가 없다. 더 이상 머물 데도 없고, 이젠 하산을 해야지...
오늘도 일상의 운동과 삶의 여유를 찾아 나섰지만, 나의 삶에 정격 속도는 정하지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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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 운동 **

-.일자 : 2025년 6월 8일

-.코스 : 더샆-현충탑둘레길-마동제-가야산-와우제-버스터미널(14.7km / 4시간 5분)

 

나의 일상을 얼마나 한심하게 지켜 보았으면 아내의 친구가 나와 놀 친구를 매칭 시켜 주겠다는 말에 적이 놀래서 나를 뒤돌아 보게 만들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은 절실하게 느낀다.
이제는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나만의 가치관과 주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때도 되었는데도 아직도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휘둘리고 있고, 아내에 대한 의존증은 트러블을 겪으면서야 자각하게 된다.
그래도 놀친구가 없다고 주저 앉아 있을수만은 없고 나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더 이상 자존감을 잃지 않고 찌질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는 생활 패턴을 재점검해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가 인생이다, 건강 관리를 통해 삶의 여유와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집 밖에 나가 운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지것 꾸준한 운동을 하고 있고 그나마 할 수 있는게 산행과 크레킹이라라서 그동안에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우선 반나절 운동 코스의 동선을 그려 놓고 실증에 나선다.

 

 


물짐 하나를 짊어졌을 뿐인데, 마치 군인이 완전무장을 한 것처럼 두려울 것이 없다.
역시 편안한 공간은 권태를 가져오고, 집 밖의 길에서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습도가 높아 피부가 끈적거리지만, 피부 보호용 안면가리개는 하지 않는다.
구름 위에 햇살이 있음을 망각해서다.
수영장 앞을 지난다. 근래에 시작한 수영이나 교대근무로 강습을 할수가 없고, 일주일에 한 번 다니다 보니 허우적거리다가 매번 괜한 힘만 쓰고 물을 먹어 배가 볼록해져서 나온다.

 


주차장 하나는 큼직해서 좋은데, 캠핑족들이 선점하고 장기 주차를 하고 있다.

 


아카시아꽃으로 향기롭던 산책로를 따라 중마동 확장 도로에 접속하는데, 이렇게 장기적으로 하고 있는 국도의 차로가 어떻게 바뀔지 사뭇 궁금하다.

 


충혼탑 둘레길을 잇기 위해 육교를 넘어선다.
보잘것없는 간판에 ‘쇠주한잔’이란 촌스러운 상호지만, 숨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웨이팅이 있고, 지금은 이곳으로 이전을 하여 큼직한 간판을 단 부흥식당은 이 마케팅의 원조격이다.

 


점심만 장사를 하고 있는 진수성찬은 근래에 들어서 맛집으로 검색된 곳이라, 지속적으로 영업을 해줬으면 싶다.

 


숲이 생명을 품고 살린다.
야산에 지나지 않았던 곳이 손길이 더해지자, 새들의 보금자리처럼 사람들이 찾아들어 근린공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반 바퀴를 돌아서 와우호수공원으로 들어간다.

 


동산은 요즘 유행인 맨발 걷기로 완벽하게 꾸며졌고, 마동저수지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니 물가의 풍경과 함께 마음이 한결 평온 하다.

 


가야산에서 가습기처럼 뿜어대는 피톤치드가 기본 장착되어 있고, 음악분수가 있는 호수와 바다를 잇는 이순신대교를 조망권으로 두고 있는 영무아파트 앞을 지나 가야산 입구인 육교에 이른다.
여기서 부터가 일상운동의 시작점인데 습관화된 거리와 시간을 다 써버려서 벌써 지친다.
그래도 매일 운동하고 있는 산인 만큼, 쉼 없이 가야산에 오르고, 경유지 기록상 시티뷰를 갈무리하는데 보이는 게 없다.

 


가야지맥길을 따라 내려서고 현불사를 지나 진입로를 따라서 와우생태호수공원에 내려선다.

 

 


숲을 벗어나자 햇살이 엄청 따갑고, 한여름의 무더위다.
물고기들이 뻐끔거리던 호수에는 연꽃이 피어나 있어,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바퀴를 돌아 와우도시개발지역의 산책로를 따라 와우포구와 삼화섬을 지나 콤팩트시티아파트에서 먹거리타운으로 진입한다.
이 동네는 아파트가 남아도는데도 계속 짓고 있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다. 먹고살 만한지 가게들은 브레이크타임을 불문율처럼 지키고, 일요일에는 대부분 휴무다.

 


별수 없이 국밥을 최초로 만 원으로 올려서 나에게는 기피 대상이었던 남자탕에서 뼈다귀해장국을 먹으면서도 소주는 시키지 않아, 힘겹게 운동한 효과를 그대로 보존한다.


나야 산은 원껏 다녀봤고, 남에게 자랑할 일도 없으니 이렇게 일상적인 운동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썩 괜찮을 것 같아 이참에 동네 운동 코스를 시리즈로 엮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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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반야봉 산행 ***
-.일자 : 2025년 6월 4일
-.코스 : 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반야봉-성삼재(18.5km / 6시간 42분)

요즘 몰빵이 달라졌다, 생일 축하 모임 틈새를 이용해 지리산의 철쭉 산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쉬는 날에는 어떻게든 집을 나서야 하는 나로서는, 꽃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데, 선거의 선택과 조바심이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 술을 찾게 했고, 역사는 진보와 보수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지만, 개표 방송에서는 주체성도 없이 머슴처럼 스스로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워 과음을 했는데 몰빵도 나와 다르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산행 취소를 제의한다.
산행 후 친구들과 기분 좋게 축배를 들자는 심리에, 집사람에게는 산행을 나설 거라며 선빵을 날렸더니, 약속을 잡아놓고 밀어내기를 하고 있어 차선책으로 조계산을 찾고자 했는데, 몰빵이 집에서 출발한다고 하여 괜히 신경전만 벌였다.

차를 고쳤어도 신뢰성을 잃어 차선책으로 구례까지만 내 차로 이동하고 버스를 타고 성삼재까지 가자는 계획은 말을 꺼내자마자 묵살되고, 오늘도 순천에서 광양까지 이동해 온 몰빵에게 미안하다.
 

성삼재 초입의 가로수가 단풍이 든 듯 알록달록하고, 녹음이 드리워진 구불구불한 도로를 거슬러 올라 성삼재 주차장에 주차하는데 바람이 거세다.

 

등산 길목에서 고결함이 꽃말인 하얀 산목련 꽃이 반긴다.

 

노고단 대피소와 중계탑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잘 다듬어져 있고, 딱딱한 돌과 시멘트 대신 푹신한 보행로를 설치해 놓아 산문으로서의 배려도 있다.

연초록의 숲이 바다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다. 산 아래는 초록의 동색이 되었는데, 여긴 계절의 시간이 더디 가고 있어 새싹이 막 키워낸 연초록이다.

 

무넘이 고개를 지나고 돌계단을 올라 리조트만 같은 노고단 대피소에 들어선다.
화장실 옆에 또 다른 화장실을 신축하고 있고, 취사장에는 식수가 보이지 않지만 루프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여인의 여유로움이 산장을 럭셔리하게 격상시켜 놓는다.
저런 건 풋풋한 나잇대에나 가능한 것이고, 만추에 접어든 우리는 부지런히 걸어서 건강과 추억을 쟁여 놓는 게 상책이다.

 

연분홍의 병꽃이 도열하여 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숲을 벗어나며 천국의 문이 열리듯 올라선 노고단 고개에는 첩첩의 산릉이 펼쳐져 있고, 키오스크로 출입금지 구역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노고단을 향해 가파르지도 않은 나무 데크가 융탄자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탁 트인 시야에는 우리의 목적지인 반야봉이 걸려 있는데, 저렇게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르기가 결코 쉽지 않다.

 

 

풍경이 다큐에나 나오는 이국처럼 아름답다. 자연 보호를 위해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보호되고 있는 철쭉과 산상고원의 야생화들은 참 예쁘다.
떨어지지 않으면 꽃이 아니고,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닌데, 산철쭉은 연분홍 꽃잎을 떨구고 있고 바람은 쉼 없이 불어와 가늠할 수 없는 바다처럼 새파래진 풀숲을 헤집어 춤추게 한다.

향긋한 바람이 불어 오는, 이래저래 오늘은 축제의 날이다.

 

 

 

바람에 날라가지 않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산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전망대 데크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진 산줄기와 섬진강이 흘러 들어가는 남해를 조망한다.
지리는 광활하고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노고단 고개로 내려와 돼지령으로 향한다.
우리의 입산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계절을 붙잡고 있는 연초록의 숲길에 살랑이고 있는 바람이 무척이나 좋다.

 

돼지령으로 이어진 등로는 관목들이 자라 숲이 되었고, 키가 훌쩍 자란 철쭉 터널이 길을 인도하고 있다.

 

여전히 신록이 우거진 숲길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맑은 공기가 좋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전설과 이야기를 전해 준 곰이 지리산의 주인이 되고, 사람들의 출입을 경계하여 예전의 생태계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 전국토의 산을 탐험했던 우리들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갔었던 그때의 자신감 회복을 원하지만 노쇠하여 그 시절만을 추억 할 뿐이다. 

 

돼지령에 근접하면서 멧돼지 떼가 자주 나타났다는 설화에 몰빵의 전설 따라 삼천리가 시작된다.
유년 시절, 동네 어른에 의해 개로 착각한 여우로부터 목숨을 구한 일, 살쾡이를 약초 괭이로 잡아 지게에 지고 왔다는 이야기들이 침묵 속에 묻혀 간다.
우리들만의 산길이다.

 

고즈넉한 산속의 침묵을,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가 현실로 이끈다. 침묵이 금일까? 안전자산인 국제 금값이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금광에서 채광을 하듯 지금을 축적하고 있어 하산할 때는 갑부가 될 것만 같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고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축인다. 샘이 있는 푸른 정원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끈적임을 없애 주어 기분이 상쾌하고, 약수 한모금을 마시니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여지껏 정원을 걸어왔다면 지금부터 등산이 시작된다. 요즘은 일상의 것들에서도 점점 기억이 없어져 가는데, 이 오름길은 참 낯설게만 느껴져 거리를 종잡을 수가 없다. 임걸령 쉼터가 있어 중간쯤 올랐다는 걸 어림짐작하고, 묵묵히 걸어 노루목에 올라선다.

 
 
몰빵이 토끼굴을 찾듯 계속 주변의 바위 틈새를 살핀다. 예전 산에서 술이 자연스러웠던 때에 후답자들을 위해서 미션을 하듯 숨겨 놓았던 술병을 지금에서야 기억해 낸 것은 기적이지만, 설마 찾는다 해도 약이 아닌 독이 될 것 같다. 바위에 걸터앉아 토마토 하나씩 베어 물며 산하를 내려다본다. 너울진 첩첩산중이 삶의 터전을 메우고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삼도봉과 반야봉의 길목이 되는 노루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꼬마는 무언가 꺼림칙한 듯 반야봉 오르막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모와 대치하고 있어, 산행을 하며 아이들을 닦달하였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산을 오르다 보면 누구나 체력적으로 힘들고 마음이 지치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모처럼 몸에 저항이 온다. 꼬마가 부모와 실랑이를 벌였던 이유다.

 

쉴 새 없이 불어오던 바람은 멀찍이 물러나 있고, 몰빵은 스틱으로 늘어난 몸무게를 버티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쉼터의 산객은 집에서 새벽 3시에 출발했고, 우리는 7시 50분에 출발해 여기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잊고 지내다 친구 덕에 찾게 된다.
고사목으로 기후 변화가 현실화되었고, 병꽃이 계절을 이끌고 있어 이미 철쭉 군락지에는 마지막 꽃잎조차 남아 있지 않아 철쭉 산행의 의미는 없어졌다.

 

홀로 100대 명산 인증을 남기고 있는 틈새에서 우리도 정상 인증을 한다.
지리산의 주능선과 바래봉으로 펼쳐진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라면과 김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바람이 시원하단 몰빵과 달리 난 추워서 머물 수가 없다.

 

 

내림길은 역순이다. 오를 때보다는 풍경이 있어 지루하지가 않고, 반야봉 삼거리에서 노루목까지의 체감 거리는 이정표와 달리 너무 멀게 느껴지고 있다.

 

올랐던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서 주능선인 노루목에 접속하고 임걸령을 향해 내려가는데, 그새 길이 낯설고 발밑에만 집중했던 오름길과는 달리 내림길의 트인 시야에 눈이 게으름을 피운다.
임걸령 쉼터에서 달달한 커피로 당을 보충하고 달콤한 바람에 몸을 말린다.

 

임걸령을 지나고 산상정원의 산책로를 따라서 돼지령으로 들어서고 노고단을 조망하며 좌표를 확인한다. 노고단 사면길이라 이젠 얼마 남겨 놓지 않았는데, 아가씨가 바위를 기어가고 있는 게 포착된다.
산행은 오로지 내 발로 걷는 것이기에 근육이완제와 포도당을 건넬 뿐 딱히 해줄 방법이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산행의 본질이니만큼 이런 고통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지선상에 돌탑이 보여 금방일 거라 여겼던 노고단 고개가 이정표에 0.5km나 남아 있어 몰빵은 여성을 함께 데리고 오지 못함을 자책 하는데 곧 회복될 거라며 말리고 있는 내가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인다.

 

노고단 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놀며 즐기자는 것이 18km를 넘기고 있고, 연이은 산행에 몸은 마음의 갑작스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보니 피곤했던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 졌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 있다고 퇴직 후의 제2의 출발점에서 힘겨워했는데, 이렇게 틈틈이 놀아도 되니 다닐수 있는 직장이 있어 다행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 내내 날씨가 너무너무 좋고, 연신 달콤한 바람으로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없지만 주차비가 11,900원이나 되어 두 사람의 버스비 값이 넘지만, 로스 시간 없는 것으로 퉁친다.

 

바람은 들녘에도 불고 있고 산의 나뭇잎들을 뒤집어 놓고 있다. 내일이 망종으로 계절은 순서대로 진행되어 , 들녘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었고 모가 심어져 있다.

브레이크타임 해제에 맞춰 광주에 있는 주군을 불러 들이고 오늘의 무용담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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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상 결혼 34년 주년 여행 ***

-.일자 : 2025년 5월 30일~31일

-.장소 : 여수

 

퇴직 후 자연스럽게 재취업으로 이어져서 일상이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도 마음에는 여유가 없어 하루하루가 더욱 빨리 흘러가는 듯하고, 벌써 나의 결혼생활 34년째인 오월의 끝자락에 와 있다.
여태껏 그저 일상의 하루였던 결혼기념일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직장의 단절이 주는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벤트로 여수에 호텔을 예약해 두었고, 사전투표를 하여 나의 미래를 맡긴 후 광양읍으로 이동해 결혼의 가교 역할을 했던 어머님을 모시고 여수로 간다.
가족 모임으로 올해만 세 번째 여수행이라 별다른 기대감은 없고, 호텔에 대한 기대치도 내려놓았는데, 역시나 리뷰는 호객용에 지나지 않지만 즐기는 건 우리의 몫이다.

 


체크인을 하고 룸 컨디션만 확인한 후 여동생에게 합류를 권했으나, 요즘 엉망진창인 나라 때문에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많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엑스포공원 내 아르떼뮤지엄을 찾아간다.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은 디지털 미디어 아트 전문 기업인 디스트릭트(d’strict)가 기획•운영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대형 프로젝션, 사운드, 향기 등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이 예술 작품 속에 직접 들어간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쿠아플라넷 외에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휴관 상태라 썰렁하고, 안내판도 없어 찾아가는 길이 미로 같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어머님이 여간 신경 쓰인 게 아니다.

 


시간상 내일로 미룰까 하다가 마지막 티켓을 끊어 입장하는데, 영화관처럼 어두운 공간에 처음 접한 미디어아트 시설에 무서움을 느끼던 어머님이 점차 적응해 가시면서 매우 만족해하시고, 집사람도 좋아해서 나의 기분이 공중부양하는 듯하다.
이런 건 가족방에 자랑해서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행복감을 배가시킨다.

 

 

 

 


한낮의 더위가 바닷바람에 물러가고, 썰렁함이 느껴지며, 여행객들의 분주함에 자연스럽게 편승해 즐기기 모드로 전환한다.
종포해변의 여수 밤바다와 포장마차 거리는 패스하고, 호텔의 야식당에서 석식을 겸해 분위기주가 세팅된다. 나의 절대적인 지지자인 어머니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집사람이 나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니 오버됨이 느껴진다.
술기운에 오로지 나만의 만찬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룸에서는 공간의 이동이 주는 여행의 감성에 어머니도 집사람도 장단을 맞춰주고, 건물에 반짝거리는 조명과 여수 밤바다의 유람선에서 쏘는 불꽃이 밤하늘에 꽃을 피우고, 빅오쇼 분수는 무지갯빛 물줄기를 뿜어 올린다.
젊은이들의 성지인 이곳 여수에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팔순이 넘은 어머니와의 달콤한 여행에 취해가는 밤이다.
시간이 이렇게나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으니 우리는 매 순간 하루하루가 즐거워야 한다.

 

 

 


서로 의지하고 지켜주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어 다들 깊은 숙면으로 아침이 개운하다.
밭을 갈아야만 하는 숙명의 내가 먹거리 조달에 나섰지만, 믿었던 김밥집은 9시에 오픈이고, 쑥빵과 편의점표 김밥, 그리고 컵라면을 사 들고 들어왔어도 어떤 요리보다도 잘 먹어 주어서 감사하다.

 


매일 바다를 건너 출퇴근을 하고, 집 앞이 컨테이너 부두이면서도 호텔에서 바라보는 바다뷰 요트가 정박해 있고, 오동도의 방파제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휴양지로 테라스에서의 커피 한 잔도 멋진 라운지가 된다.
오늘은 무슨 구경에 나설까 설레는 고민도 잠깐이고, 어젯밤에 레이저 빛을 쏘는 전망대에서 커피를 하는 것으로 일정이 정리가 되었었다. 멈추고 쉬는 것도 휴양이기에 퇴실 시까지 휴식을 보장하고, 나는 하루 운동량을 맞추기 위해 나선다.
꾸준한 운동은 내가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습관인데, 신체의 건강을 담보로 술을 너무 과신하는 게 문제다. 그럼에도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운동을 지속하게 한다.

 


여수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답게 방파제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어 자연스럽게 섞여서, 햇볕이 들지 않는 빼곡한 동백나무 군락지의 해안 산책로를 따라 돌고, 등대 전망대는 9시에 오픈이라 패스하여 섬 끝자락에 있는 오동도 등대로 향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과, 제주 여객선 대신 생뚱맞게 입항하고 있는 크루즈선으로 여수는 활기차다.

 

 


퇴실을 하고 전망타워를 찾는다.
주차비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는데, 카페를 운영하는 옥상 전망대에 입장료를 받는다는 건 좀 그렇다.
휴양과 귀향의 완충지대가 되어 사진을 되돌려 보며 하룻밤의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이 되어 주고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할 수 있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 든다.

 

 


광양으로 향하는 국도변에는 번식력이 너무나 강해 온 나라가 노랗게 변해 버릴 것만 같은 금계국 꽃길이 이어진다.
애용하던 식당이 새롭게 단장하여 업종을 변경했는데, 가격대가 있어도 어머님을 모시기에는 격에 맞는다.
배가 너무 불러서 후식 커피는 마시지도 못하고, 어머니 집에 들러 밭을 정리한 상추며 냉장고를 털어서 바리바리 싸 들고 빠른 귀가를 하는데, 오늘만큼은 어머니가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지 않아서 좋다.

 

 


오늘의 이벤트로 야당 영화를 본다.
빵빵한 냉방에 떨어가며 점차 몰입해 가는데, 참 요즘 세태를 잘 묘사해 놓아 공감이 가는 영화다.

 


누구는 결혼기념일 이벤트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찾고 손편지나 선물들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이런 건 체질상 낯뜨거워서도 못해, 우리는 어머님과 1박 2일 여행으로 대체하였어도 좀 아쉬움이 있다.
어제 과음을 했지만, 날이 날인 만큼 외식은 해야겠는데, 만만한 게 집 앞에 오리고기집이고 이것도 최애 음식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주는 아내다.
술김에 딸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나를 뒤돌아보게 할 뿐, 관심 1도 없어 옆에 있어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일상을 함께 보내고 있는 동반자가 최고지만, 아이들 또한 건강하게 자라서 홀씨가 되어 서울에 잘 정착을 하여 스스로들 성장하였고, 기념일마다 잊지 않고 챙겨주니, 이것이 효도라 여긴다. 또 우애의 딸들은 아빠를 위해 사위까지 합세시켜서 주류업계가 파산하지 않도록 마셔대고 있으니 이 또한 돈독한 가족애다.


이젠 어지간히 세월에 닳고 달아서 서로가 닮아가고 있고, 애초에 사랑이란 건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길을 걷는 것이라 했다.
어쨌든 건강 잘 챙겨서 넘 눈치 보지 않고 나 대로 사는게 잘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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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 산행***
-.일자 : 2025년 5월 26일
-.코스 : 산성대입구-산성대-천황봉-바람재-구정봉-영암사지-대동재-기찬묏길-산성대입구(14.3km / 6시간 50분)
 
차에 이상 증상이 느껴져 정비소를 찾았지만 진단이 되지 않아 운행을 계속하다가 결국 도로에서 멈춰 버렸다. 수리는 했지만 신뢰성이 없어 순천에 거주하는 몰빵이 집까지 와서 나를 태우고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의 원인이다.
나 홀로 어느 산에 갈까 고민했었는데, 둘레길만 걷던 몰빵이 이렇게 산행을 제안해 온 건 나의 복이고, 어쨌든 둘은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산행을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하산주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된다. 몰빵의 RV 차가 부앙부앙 달리다 보니 쉽게 영광읍에 도착했는데, 산성대 입구의 기찬묏길 주차장이 공사로 폐쇄되어 있다. 차를 한켠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다행히도 등산로는 개방되어 있어 주민들이 오가고 있다. 몰빵이 무릎 보호를 위해 모처럼 스틱을 펼쳤고, 정체 모를 캔 음료를 치켜들었지만 어차피 나의 선택권은 없어 보인다. 

 

기분 좋게 산성대 아치를 통과한다. 며칠 전 백운산 산행에서는 지구를 흔들어대는 바람 때문에 추위를 느꼈는데, 그새가 언제였는지 고요한 적막 속에서 스틱 찍는 소리가 발자국에 장단을 맞추고, 지저귀는 새소리만이 정겹다.

 
 
숲을 벗어나며 조망이 트이고, 쉬어가라는 조망터가 나온다. 흘러내리고 있는 땀에 눈이 따끔거려서라도 쉬었다 가야 하는데, 땅끝기맥상의 활성산에 풍력발전기가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산자분수령이 만들어낸 영산강 줄기가 영암뜰을 적셔 햇살에 반짝인다. 
이곳에 오르면 봄에는 온통 노란 유채꽃으로 황홀한 풍경이, 가을이면 황금 들녘이 우리의 마음까지도 풍요롭게 만드는 곳이나, 나의 삶이 녹록지 않아 친구를 따라 모처럼 찾아들었다.

 
‘천하제일관문’이라는 안내문만 없으면 여기선 극히 평범해 보이는 바위는 천하제일의 풍경을 숲속에다 숨겨 놓았는데, 숲의 신선함이 지쳐가는 몸에 기운을 북돋아 준다. 

 
기암괴석 전시장을 숨겨 놓은 숲의 완충지대를 지나 신성대에 올라선다. 천황봉에서 사방으로 뻗은 뾰족뾰족한 바위 군락지가 참으로 경이롭기만 한데, 이 시간에 하산하고 있는 여성 산악회원들이 있다. 결국 우리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겠지만, 입산을 하여 내려갈 것만을 계산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시간과 경비를 투자해 산에 왔으면 즐겨 줘야만 한다.

 

 
 
 이제부터가 월출산과 제대로 교감하며 풍광을 즐기는 기점이다. 병풍처럼 좌우로 펼쳐진 암반의 산줄기들은 자꾸만 모습을 달리하고, 숨겨 놓은 암릉들이 유혹하며 빠져드니 힘겨움이 덜하다. 

 

몰빵이 이렇게나 순진무구했는지,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데 장단 맞추기가 쉽지 않고, 가족방에 자랑을 하며 며느리와의 산행을 약속하고 있어 세상 부럽기만 하다. 
햇볕은 쨍쨍하고 그늘 하나 없는데, 헤헤 실실거리는 것이 설마 더위를 먹은 것은 아니겠지. 

 

 

국토종주길에서는 여유를 담보로 맡겨 놓고 시간을 단축 시키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해야만해 즐기지를 못했지만, 천하의 풍경을 한아름에 담을 수 있는 이곳 산에서는 삶의 여백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안겨 준다. 

 

 
 
고인돌 바위를 지나고, 진달래꽃이 암반에다가 수를 놓아 동양화가 되었다. 광암터 쉼터에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정상을 향하기 위한 재정비를 한다.

 

 
 
월출산의 기를 영양분 삼아 기가 찬 풍경 속으로 스며들며 급조되었지만 산행지 결정에 대한 자화자찬을 한다. 소나무 한 그루까지도 이곳에서는 명품이 되어 멋진 풍경이 되어 준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 작용에 의해 독특하게 생기고 아찔하게 쌓인 바위들이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람폭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되고, 좌측으로는 천황사지 지구가 조망되면서 출렁다리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다.

 

여지껏 기암괴석의 전시장을 관람하면서 올라왔고, 지금부터는 천황봉을 뵙기 위한 고된 오름길이라 보이는 것 없어 계단에만 집중한다.
다행인 건 끝이 안 보여 눈의 게으름을 방지하고, 숲이라 그늘이 있다는 점인데, 날벌레들이 정신을 사납게 한다.
경포대와 사자봉의 갈림길을 지나, 통천문을 통과하여 정상에 선다.

 

항상 그렇듯 쉬운 산은 하나도 없다. 그러하기에 성취욕이 있지만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조망하는데, 과연 천하제일경이다.
설악산의 축소판이고,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중국의 황산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다.

 
 
쉬엄쉬엄 올랐더니 벌써 점심시간이라서 영암뜰을 내려다보며 김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는데, 우리가 유일하게 추월했던 산님이 뒤이어 올라오며 ‘참 보기가 좋다’는 덕담 한마디에 산 친구가 되었고, 몰빵은 장군바위의 전설을 설파하는 풍수지리인과는 카톡 친구까지 맺는 친밀감을 보인다.

 

오후의 정점은 계절이 여름으로 순간 이동해버린 듯한 더위와 정적 속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걷는 게 벅차도, 뒤돌아보면 정상은 저만치나 멀어져 있다.

 
 
TV의 자막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잠식해버린 돼지바위를 지나 남근바위와 마주하는데, 꼿꼿한 자태에 화룡점정이 되어 주었던 나무가 죽어있어 왠지 위풍당당함은 없어 보인다.

 

 
 
바람재의 내림길에서 뒤돌아본 풍경이 바위들로 아주 장관이라서, 쇼핑몰에서 온갖 미사어구로 홀리고 치장한 여느 여행사 상품속의 그림 보다도 절경이다.
그새가 언제였는지 모든 게 낯설어 나의 사라져 버린 블로그를 다시 쓰듯 오늘도 새롭게 월출산을 알아간다.

 

바람재에서 미풍을 인질로 붙잡고 오르며, 나무 그늘에서야 바람의 무리를 포획하여 시원함을 느낀다.

 
  
상상의 영역이지만 민망할 정도로 참 오묘하게 생긴 배틀굴이다. 굴 안에 고인물은 식수 가능 여부조차 가늠하기가 거시기하여 구정봉 바위에 올라 선다.

 
 
구멍마다 물이 차 있지만, 꾸정물이라 반영을 담지는 못하고,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보기에도 위태로운 월출산의 전경을 눈으로 갈무리 한다. 기묘한 바위들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암절경이다. 

 

 

 

영암사지의 내림길이 시작되고, 수석전시장을 벗어나 숲길이 되어 영암사지 석조여래좌상으로 이어진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는데도 방치된 듯 어떠한 보존시설도 없고, 감시카메라도 없지만 불상의 형태는 뚜렷하여 나로서는 세월을 추정하기 조차 불가능하다. 
불상과 석탑, 석등과 절터의 유물들이 있는 용암사지터는 머위 나물밭이 되어 있는데, 이런 기막힌 산에 역사적인 유물이 있음에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보존 방식인지 모르겠다. 

 

 

 

조릿대숲을 두고 산길이 뚫려 있고, 지금부터가 미개방지였던 곳인데, 거친 듯 다듬어 놓은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고요한 숲속에서는 청아한 새소리만이 들린다.머시마들은 부부처럼 별말이 없고, 스틱에 찍히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초록의 숲속을 내려간다.

 

마른 계곡을 뚫고 흐르는 물은 오아시스가 되고 약수가 되어 포도당을 주입하듯 금세 흡수되어 온몸의 미세혈관을 돌며 시들어 가는 세포들을 회복시켜 놓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탈수하지 않으려면 이젠 포도당과 근육이완제도 챙겨 놓을 때가 되었다. 

 

허물어진 돌축과 커다란 느티나무가 옛 거주지였음을 말해 주고, 주거지역을 상징하듯 길은 완만해지고 좋아진다. 마른 계곡이 계속되며, 물은 땅속에서 자연 정화를 하고 있고, 계류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서 영암상수원으로 흘러들어 영암군민들에게는 약수가 된다. 이런 상수원보호구역을 개방했다는 건 지리적인 조건과 관리가 있음이다. 

 
 
상수원저수지 아래에는 생활용수용 대동제가 있고, 주차장 아래에서 기찬묏길에 접해 차량 회수에 들어간다. 영암교동지구 도시개발에도 기찬묏길은 살아남았는데, 몰빵은 기어코 공사장으로 진입하여 불안하게 만들더니 산딸기 군락지에서 달콤함을 맛보여 주고, 버찌까지 입에 넣어 쓴맛을 보고야 만다. 

 

 

 

몰빵의 차 운전실력이 나를 쫄보로 만들어 졸음도 쫒아 냈고 순천의 퇴근 러시아워대의 차량들은 카레이스를 하듯 역동적이다,  
참수리가 퇴근하여 삼겹살을 준비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고, 광양에서 택시로 순간이동해 온 주군의 친구가 있어 하산주 자리는 길어지고 추억의 밧데리는 완충되어 또 다른 일탈을 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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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백운산 산행 **

-.일자 : 2025년 5월 23일

-.코스 : 한재-신선봉-상봉-억불봉 삼거리-노랭이봉-동동마을(11.2km / 4시간 16분)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비가 오지 않는 오늘, 지금 당장 백운산 산행을 나서며 친구들 톡방에 알림을 한다. 마침 백운산 지킴이인 참수리가 도솔봉 정비를 한다고 하여 한재까지 차로 올라가 버렸다.

 


같이 산행을 하면 좋겠지만, 돈을 받고 하면 일이 되고, 나처럼 즐거움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취미이기에 참수리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으로 나뉜다.
요즘은 장거리 산행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고, 임도는 기피하는 터라서 여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지천에 놀거리가 깔려 있는 요즘 세상에는 개고생을 해야 하는 산행인은 확 줄었고, 자연스럽게 회복된 자연 속에서의 야생동물들은 경계심도 없어졌는지, 날지도 못하는 꿩 새끼들이 생존 본능에 퍼덕거리는데, 보호색으로 가만히만 있었으면 더 안전했을 것 같다.

 


인공 구조물인 계단이 기억을 되돌려 놓았고, 능선에 접어들며 꽃길이 펼쳐진다.

 


역설적이지만 등산을 하고자 찾아와서는 친구 덕분에 일상 운동하듯이 쉽게 능선에 올라 버렸다. 이제부터는 산보길인데, 산행이 너무 무덤덤할까 봐 바람이 거세게 불어 푸르른 숲을 마구 흔들어대며 환영한다.
문어가 알을 품을 때 알다발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다리로 부채질하듯, 대지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있어 상쾌하긴 하지만, 땀에 젖어 있는 나는 추워 동태가 될 것 같다.
날씨는 여차하면 비를 쏟아낼 듯, 눈이라도 뿌릴 듯이 잔뜩 흐려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백운산은 남도의 수장답게 듬직하여 잔망스러운 오르내림 없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나름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산철쭉의 분홍과 연보라색 꽃이 가냘퍼 보인다.
바람이 봄을 붙잡고서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산철쭉을 집단 괴롭힘이라도 하듯 마구 흔들어대고 있어, 보는 내가 힘들다.
요즘은 정맥꾼들도 드물어서 의지의 상징이기도 한 표지기조차 보기 힘들고, 시에서 매달아 놓은 등산로 리본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데, 국토종주의 안내 리본만 같아 정감이 간다.

 


계절의 연속성에 봄꽃들은 피었다 지고 또 피어난다.
푸른 산하에는 버짐처럼 알록달록하게 꽃들이 피어나 있을 뿐, 초록은 동색이라서 내 마음도 새파랗게 물들어 가는 길이다.
참 좋다.
고요와 적막이다. 이 산속에는 새와 나밖에 없는 듯하다.

 


이렇게나 좋은데도 왜 여태껏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살아왔는지, 산과의 몰아일체가 되어 가면서 자책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신선대에 올라선다.
바람, 바람, 바람...
차라리 구름에라도 덮여 있었더라면 이름값이라도 할 텐데, 매몰차게 불어대고 있는 바람에 모자 단속이 급선무다. 바위 틈새에 철쭉꽃이 피어 있고, 상봉으로 흐르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은 마치 도원경만 같아 신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톱니로 오를 수 없는 바위 군락지의 우회로가 바람막이가 되었고, 갑작스러운 적막감에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느껴지고 땀이 솟는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봉이다.
얼마 전 친구가 전망 데크에 부식 방지용 페인트를 도포했다고 했는데, 신발의 접지력이 느껴질 만큼 끈적거림이 남아 있다.
흔들림 없는 상봉에 올랐으나 바람의 밀착 경호에 인증만 남기고는 바람의 눈치를 보며 주변을 조망한다.
초원처럼 무척이나 평온해 보이는 남사면과는 달리, 북사면에는 꽃들로 알록달록해졌고 정상부의 산철쭉은 바람을 타며 계절을 즐기고 있다.

 

 


정상을 내려와 조망터에서 섬진강을 바라본다.
진안군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212km를 유유히 흘러온 강줄기, 하얀 모래톱을 따라 남해로 합수되는 풍경은 분수령을 가르는 정맥꾼들에게는 남도의 향수다.
푸른 물결이 출렁인다.

 


이 산속에서 망경평야의 보리밭을 거닐었던 서해랑길이 겹쳐진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잎이 매달려 녹음이 짙어졌고, 자연의 순환 속에서 꽃들이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 생명의 연속성이 경이롭고 역동적이기만 한데 나는 노쇠하여 다리가 아파 온다.
몸을 그렇게나 단련시켰으면 공중부양도 하련만, 자꾸만 지하로 파고들고 있으니 매번 바닥을 기고 있는 발가락이 아우성이다.

 


바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 발 아래 세상 모든 것이 존재하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산은 백운암으로 인해 풍경화가 되었고, 총천연색의 자연의 밥상을 펼쳐 놓고서 편의점 김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다.
그러고 보면 노동주를 겸한 반주용 막걸리조차 생각하지 못한 것은 몸이 받쳐주지 않아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 같아 씁쓸하다.

 


능선은 단순하다.
물에서 헤엄치듯 푸르른 숲속을 그저 걷는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다.
시에다 쉼터 하나 만들어 달라고 민원을 넣었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이건 아마도 마땅한 장소가 없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마냥 걷고 있다.
가끔씩 잡스러운 생각들을 끌어모아 근본 원인을 추적해 보지만, 느닷없는 잡생각일 뿐이고, 무상무념의 걷기에 점차 고도가 낮아지면서 길에 떨어진 꽃잎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헬기장인 억불봉 삼거리다.
이른 시간이고, 이왕 산에 들었으니 억불봉을 다녀와도 되련만, 몸은 발가락을 인질로 삼아 하산을 요구한다.
매일 만 보 이상씩 걷고 수시로 산을 오르내리고 있어도, 조금 거리를 오버했다고 몸이 즉각 반응한다.

 


수련관 삼거리의 길목에 억불봉의 액자는 나무가 자라면서 그림이 미완성될 것 같고, 쉼터가 있는 삼거리는 야영장의 텐트 자리만 같다.

 


철쭉나무가 자라 터널이 되어가고 있고, 자그마한 오름도 힘에 겨워 겨우 노랭이봉에 올라선다.
무슨 바람이 종일 따라다니며 나를 쫓아내고 있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커피를 마시고 파노라마 속의 지나왔던 능선을 더듬는다. 어쩌다 보니 철쭉 구경도 못 해본 국사봉 능선상에는 광양만이 걸린다.

 


이제 동동마을까지의 내리막만 남아 있다.
이미 나무의 새싹들은 푸른 잎들로 성장하고 있는데, 갈색의 낙엽이 깔려 있는 내리막길이 위협적이다.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듯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야 하는데, 뻣뻣하게 굳어 유연성을 잃어버린 몸으로 버티자니 종아리까지 아파온다.

 


에라이...
아무리 안 가려고 버텨 봐야 어차피 내려가야 끝이 나니, 제발 좀 가자...
행위가 진짜 힘이고 능력이다.

 


동동마을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는데, 어째서 이곳에 마을회관만 자꾸 늘어나고 있다.
마을회관에 깃발이 나부끼고, 나무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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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 계절 오월 ***

-.일자 : 2025년 5월 19일

-.장소 : 중마동 장미공원-광양읍 서천변 - 광양읍 장미공원

 

나무와 풀들이 본격적으로 자라 초록빛이 짙어지고 꽃들이 만개하는 바쁜 계절입니다. 기념일이 많은 시기에 처가 가족 모임을 잡았습니다. 재 재용으로 휴가가 없는 나를 배려해 주었지만, 환갑이 넘었어도 막내인 내가 모든 스케줄을 잡았고, 서울에서 또 평택과 충주에서 이동해야 할 처가 식구들의 고달픔이 그대로 전이되어 미안스럽습니다.


리조트의 체크인은 키오스크로 대체되어 정확히 3시부터 열리는데, 정말 인정머리가 없고 기계까지 버벅거립니다. 뭐 할 일이 있나요. 먹고 마시고 놀다 보니 그토록 기대하였던 하루가 후딱 지나가버렸고, 너무 분위기에 오버되어 아침 운동도 나서지 못한 채 체크아웃을 하고 장도를 찾습니다

 

 

처가 쪽은 사진 찍기를 극도로 기피하여 여행은 스텔스화가 되었고, 순천의 명지원으로 이동하여 숯불갈비로 점심을 하는데 1인분에 19,000원이나 하여도 웨이팅이 있습니다.

 

 


이 좋은 봄날의 한복판에 동반자의 생일이 있고 생일날이 야근 때라서 미리 축하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간단하지만 자기가 손수 준비를 하였고 나는 술만 마시면 되는데도 좋아라 하니 나도 더불어 좋습니다. 다만 5월에 기념일이 집중되어 일일이 챙겨야 할 아이들의 부담이 걱정이 되지만 이 또한 자식된 도리이니 노후 보험 차원에서라도 꼭 받아 둬야만 합니다.

 


요즘 기후변화를 실감할 만큼 비가 잦은데 출근길에는 모처럼 동녘이 붉어지고 있는 해오름에, 달은 게으름을 피웠던지 하얗게 질려서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어제 회식으로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 백운산행은 자연스레 취소되었고 주변 산으로 대체합니다. 운동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웃풋보다 인풋이 많았으니 체중 증가로 몸이 둔해져 있어 강도를 높입니다. 길섶에 핀 야생화 하나도 어여쁜데 무덤가에 피어난 보랏빛 엉겅퀴가 이렇게나 예쁘게 군락을 이뤘습니다.

 



애초에 나의 건전한 생각과 실천력이 좋았습니다. 점심의 뼈다귀해장탕에는 기어코 소주를 배석시켰고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서 오늘 하루를 잘 즐기는 것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5월은 붉은 계절입니다. 민주화운동에서 흘린 피와 뜨거운 열망의 5월에는 넋을 위로하듯 붉은 장미가 본격적으로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이사 전에는 집 앞이 장미공원이었는데 지금은 여행지가 되어 있습니다. 폐속 깊이 들어오는 장미의 향에 마취되어서 몸이 붕 떠오르고 온갖 빛깔의 장미꽃밭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개량종이 화려한 모양과 빛깔로 치장했지만 농익어 꽃잎을 떨구고 있고, 울타리에 걸쳐진 토종의 장미넝쿨꽃의 자태가 더 곱습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서천변을 찾았지만 양귀비꽃은 없고 장미공원의 개화는 이릅니다.

 


요즘 술만 마시면 "도심의 터"에서 모이자는 친구로 인해 구옥을 찾는데 프라이빗한 공간에 열려 있는 방문으로 물소리가 들려 오는 정원이 격을 높여 줍니다. 홍어회는 딱 소주 한 병에 막걸리 한 병이면 족할 양이고 배불러서도 못 먹겠습니다.

 

 

 

친구가 점점 없어지고 활동 범위가 좁아지고 있는데 이렇게 부부가 하루를 오븟하게 보내는것도 복이고 소소한것에도 감동해주는 마눌있어 난 참 행복합니다.

** 망운산 늦은 철쭉 산행 **

-.일자 : 2025년 5월 7일

-.코스 : 화방사-화방고개-망운산철쭉동산-망운산주봉-망운산상봉(방송탑)-망운고개-망운사-화방사(8km/3시간20분)

 

서해랑길이 철쭉의 개화기와 겹쳐서 급하게 날짜를 잡았는데 유독 봄비가 잦습니다. 작년만 해도 우중에서도 황매산을 찾았었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서 수분 매개체를 자처하며 꽃밭을 누볐었는데, 어제는 일기예보만을 검색하다가 포기해 버렸기에 실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가까운 망운산을 찾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사위를 감추고 있어 매우 우중충한데,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던 여인 하나가 뒤를 따라 올라와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닙니다. 초파일이 지난 화방사에는 연등만이 매달려 있고, 유골을 안치한 봉안당이 산자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대나무숲을 벗어나면서부터 능선의 거친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계곡의 등로를 돌려 놓은 것인데, 능선상에 돌출된 잔돌이 이렇게나 많고 거친 곳은 몇 군데 보질 못했습니다.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밑만 집중해야 하여 몰입도는 있지만 푸르름이 짙어가는 5월과의 친밀도는 없습니다.

 


망운고개에 올라서자 시야가 밝아졌고, 부드러운 흙길이 되면서 신체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연은 초록으로 물들었고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대지는 점점 따스해지고 있어 한결 산행의 여유가 생깁니다. 싱그러운 초록에서 여유로움이 생기고 생명의 기운을 느껴가는 산행이 나를 재생시켜 주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차량이 올라오는 공터의 철쭉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헉헉거리는 숨과 흐르는 땀방울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고, 이러한 꾸준한 운동이 나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진분홍의 철쭉이 능선을 물들여 놓았는데, 막상 마주한 꽃잎은 시들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철쭉꽃이야 우리 아파트의 조경에 활짝 피어나 있고 사촌 격인 연산홍은 거리에 지천이기에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이 좋기만 합니다. 

 

 

신록의 산하와 대비되어 펼쳐진 화원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어제 황매산을 약조했던 친구는 지금 아들과 황매산에 있고 나 홀로인 게 조금 아쉽긴 하나 실행력에 만족합니다.

 


위로 올라설수록 어째 꽃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방치되다시피 했던 군락지에 잡목이 정리되어 있고 빈 곳은 식재까지 해 놓아서 내년에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소리가 철쭉 터널에서의 망중함을 깹니다. 뱀이나 동물들을 쫓는 게 아니라 내가 여인에게 뒤를 쫓겨서 괜시리 바빠지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간격을 벌려 보려 해도 꽃을 바라보는 것은 같은 마음인지라 불편함 속의 철쭉 산행은 망운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운해는 연기처럼 퍼져서 남해읍을 감추고 광양만을 지워 놓아 볼거리가 없는데, 방송탑으로 이어진 능선을 물들여 놓은 철쭉이 멋집니다.

 


관음봉의 바위에 여인이 올라섰고 새는 감시 드론처럼 치솟아 올랐다 사라질 뿐 적막하기만 합니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능선은 수목 한계점마냥 나무들이 없이 초록의 풀과 관목들뿐이라 이색적이고 산비탈에 연분홍의 철쭉이 색칠을 해 놓았습니다.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도 시야가 탁 트여서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이 철쭉 군락지에는 억새와 관목의 저지선이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아 관광용으로만 지나쳐서 산불 감시 초소에 올라섭니다. 

 

 

여수의 사라진 해안선 사이를 배가 하얀 물줄기로 가르고 있고 제철소와 이순신대교는 상상으로 그려 넣습니다.

 

 

임도로 되돌아 나오며 바라본 철쭉군락지는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온통 진분홍입니다.

 

 

파란 하늘에 구름 떠 있고 분홍색만 있으면 그려지는 단순한 풍경이지만 그림대회에 나가면 유치원생이나 일반인들 누구나도 입상할 것만 같습니다.

 

 

 망운고개에서 망운암으로 내려가는 초록초록했던 길이 너덜길로 바뀌어 조심스럽습니다.

 


망운산 아래 망운암에는 스피커에서 불경만 흘러나올 뿐 인적이 없고 나 홀로 길은 하산 시까지 계속됩니다. 

망운암

 

 

이 산에 와서는 항상 그렇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산에서 즐겨 보고자 왔는데도 딱히 쉬지도 못하고 챙겨온 점심을 그대로 가져 내려갑니다.
숲은 초록빛으로 환해졌고, 거친 돌길은 여전히 식은땀을 솟게 만듭니다. 오늘 기대하지 않았던 철쭉도 잘 봤고 운동도 적당히 했으니 어제 못 만났던 친구들과 시장에서 막걸리도 한잔해야겠습니다.

화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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