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르름이 짙어 가는 유월의 백운산 ***
-.일자 : 2023년 6월 12일
-.코스 : 진틀-신선대-상봉-억불봉헬기장-노랭이봉-동동마을(12.1km / 4시간 40분)
 
씨앗이 바람에 실려서 어디 메쯤에서 정착을 하듯이 일상의 안주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서 산행은 잊혀져 간다.
어쩌랴 이것도 자연의 순리인 만큼 순응을 하여야겠지마는 나도 한때는 이란 밑바닥의 자존심이 백운산으로 내몬다.
배낭에 김밥 한 줄에 과일 조금 넣고 나서는 단출한 산행 길이다.
새소리만이 들려 오는 인적 없는 동동마을 회관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진틀행 버스에 올랐는데 잔액 부족이란 경고음이 나를 황당하게 만든다.
만원은 쓸모가 없는 고액권이었음을 확인만 시킬 뿐이고 식은땀을 찔찔 흘리면서 휴대폰의 어플 만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손님이 태그를 하여 준다.
어차피 산행의 동행은 어려운 조합이지만 진틀에서 내리자 마자 쑥스러움에 앞서 간다.
천 5백원 때문에 꽤나 속 끓임을 헤었던지 아랫배가 거북하다.
어라 화장실에 왜 휴지가 없는 겨?
뿡뿡거리는 생리현상을 추진력으로 삼아 그냥 올라 간다.
푸른 숲과 물소리에 나의 조급증과 황당함이 희석되어 다소 안정을 찾아 가고 있고 묵직한 발걸음에서 점점 산행에 몰입이 되어 가고 있다..
우거진 숲은 햇볕을 가렸고 뒤쫓아 들어 온 햇살에 나뭇잎의 엽록소는 놀라 새파래져서 속살까지 다 보여주고 있다.
나는 민망함에 오래 처다 볼 수가 없어 너덜길만을 더듬으면서 구술 땀을 흘린다.
계류에 땀을 씻고 목을 축여 시들어 가고 있는 육신을 상추처럼 싱싱하게 되살려서 진틀삼거리에 올라선다.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함 속에서 경쟁으로 팽팽했었던 긴장에서 풀려 난다.
평화로운 잠깐의 멍 때림에서 물을 보충하지 않고 그냥 올라서고 있다.
갑자기 찾아 든 갈증이 갈등을 만든다.
진틀사거리까지 되돌아 내려가기에는 다리가 정신을 볼모로 붙잡아 놓고 허락하지 않는다.
몸은 재생을 핑계로 자꾸만 갈증을 부추기고 과체중까지는 부담할 수 없다는 다리는 이러다간 다 죽게 생겼다며 협상을 꾀하고 있지만 오르는 것이 숙명인 것 마냥 꾸역꾸역 올라 간다.
어느새 몰입이 되었나 사방이 고요하고 잡념이 사라져 있다.
어제 효도를 한답시고 찾았던 어머니와의 작은 불화가 내내 마음에 쓰였는데 역시나 산은 치료제가 되어 준 명약이다. 
집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쓸고 닦 듯 마음의 찌꺼기들을 말끔하게 청소를 해주고 있다.


신선봉은 오르지 않기로 한다.
바위가 돌출되어 거칠었던 등로는 실개천이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 가듯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고 구름이 스멀스멀 밀려들면서 회색의 어둠 속에는 비가 섞여 있는듯하다.
등로상에다 한 무더기씩 싸질러 놓은 짐승의 배설물들이 세력을 과시한 것 같아 볼썽 사나웠는데 콩 자루를 쏟아 버린 듯한 염소 똥은 정상을 확실하게 자기 영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저 짐승은 꼭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 놓고는 매번 고지 탈환에 전면전을 불사하고 있다. 
하얀 구름을 일으키고 있는 백운산만이 불변하다.
구름이 휘몰아 치며 푸르른 산하를 감추고 땅이 융기한 것 마냥 공룡의 등 같은 톱날 능선이 압도적인 변화무쌍한 자연의 역동성 앞에서 나 만이 절대자로 우뚝 선다.
태초에 천지창조처럼 사방 고요함 속에서 귓전에 날벌레의 날개 음이 파고 들면서 땀이 접착제가 되어 본의 아니게 살생이 자행되고 있다.
지들이 선점을 했다고 사생결단으로 드는 데는 어떻게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이만 내려 가야겠다.


숲이 우거져 계절은 이렇게나 쉽게 오가는 듯 하는데 난 산행이 버거워 한번도 계절을 따라 잡지 못했다.
가는사초가 산중 초원을 만들어 놓았다.
녹색은 신이 인간이 준 선물이라 는데 내 몸과 영원이 자연에 순응을 해가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길을 친구와 함께 걸었으면 느낌이 달라 졌을까?
행복이 배가 될까?
이런 저런 생각이 없이 단순하게 걷고 있는 지금의 멍 때림이 난 좋다.
나의 생각까지도 잊어져 가고 있는 온전한 집중이 나의 영혼을 맑게 치유해 주는 듯하다.
이렇게 백운산의 주 능선 길은 나에게 있어 치유의 길이 된다.


복원되어 그늘이 지고 있는 이 숲도 내적으로는 성장통을 겪고 있겠지......


비탈을 내려 와 수련관으로 하산하는 노랭이재에서 식수로 잠시 갈등이 생긴다.
장마가 져도 또 가뭄에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는 나무를 닮아 보고자 햇볕에 몸을 맡겨 놓고 노랭이봉에 올라 선다.
정상석은 세상 풍파에도 의연한데 육신은 재생을 요구하고 쏟아지는 땀 조차도 수습을 못하여 그늘을 찾아 곧바로 하산을 한다.
감자를 수확한다는 어머님의 전화다.
어제 못다한 집수리로 고민하던 차에 꼬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이 지점에서 전화가 온다.
오늘은 산행의 뿌듯함 에다 수확의 기쁨까지 덤으로 누리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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