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영취산 진달래 마중 **

-.일자 : 2024년 3월 19일

-.코스 : 돌고개-골명재갈림길-가마봉-영취산진래봉-봉우재-가마봉들머리-가마봉-골명재-돌고개(7.6km / 2시간 53분)
 
산비탈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었던 매화꽃은 바람에 꽃잎이 휘날리고 가로수 벚나무는 꽃망울이 곧 터질 듯이 탱탱해져 있어 바쁜 계절이 왔다.
산에 푸른빛이 감돌고 생명이 없을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 연분홍꽃잎이 불을 밝히듯 퍼지기 시작한 이때쯤엔 영취산의 진달래가 궁금해 진다.
어차피 일상운동을 하고 있는 가야산이나 이순신대교만 건너면 되는 영취산이나 별다른 게 없으니 진달래꽃의 개화 상태나 점검해 보고자 함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비옷 하나만 챙겨서 돌고개주차장에 도착하니 23일부터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주차된 차들이 제법 있다.
매년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져서 예년 보다 이른 축제를 알리고 있는데 우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할 수 밖에는 없다.

 


시멘트 임도가 꽃나들이에 몰랑해져 있던 감성을 등산의 본질로 돌려 놓는다.

 


계단 또 계단이 지속되는 오름길에서 에고 소리를 토해 낼 때야 골명재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와 합쳐지면서 외고집을 내려 놓는다.
거칠어진 숨을 토해내며 내려다 본 골명재는 벚꽃으로 하얗게 덮여 있고 광앙만의 푸른 바다와 산업군들이 역동적으로 다가 온다.
요즘은 환경규제가 엄격해져서 여천공단에서 풍기던 역한 냄새가 없으니 이 또한 볼거리가 된다.

 


역시나 마음의 성급함을 깨닫는다.
붉어 야 할 진달래군락지는 아직은 동면 중인 듯 갈색이고 간간히 꽃잎을 내밀어 놓고는 호객만을 하고 있다.

 


가마봉 능선은 푸른빛 조차 돌지 않고 있어 산행에 집중하기로 한다.
꽃 몽우리도 맺혀 있지 않는 진달래터널은 꽃이 화사하게 피어 난들 눈높이 위에 있어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는 곳이다.


가마봉까지 진달래의 군락지가 이어 진다.

 


가마봉의 둥그런 전망대는 영취산진달래의 개화를 지휘하고 있고 있는 듯 사방 막힘이 없다.
남해의 망운산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 금오산이 그리고 울 동네의 가야산으로 펼쳐진 산그리메가 바다를 호수로 만들어 놓았다.

 


가마봉 능선에 분홍빛이 새어 나오고 있으니 화장의 시간을 쬐금이라도 더 주기 위해 정상으로 간다.
바위가 조망을 만들고 거침없이 불어 오는 맞바람에 얼굴이 알싸해 진다.
바위와 진달래꽃과의 어울림이 참 멋찐 곳인데 아쉽긴 하다.

 


영취산진례봉에 올라 선다.
변덕스런 차가운 봄 날씨가 부유 하는 수증기를 가라앉혀 여수와 광양이 모조리 조망 되고 있어 이곳에서 이런 멋진 뷰를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정상에 홀로 서서 광양만을 조망한다.
율촌공단에는 왜성의 흔적이 있고 남해도에는 왜군을 전멸시켰던 노랑해전의 격전지와 관음포이충무공전물휴허지가 있는데 그 해변들은 이제 산업지가 되어 나라의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산너머 여수 앞바다에 새떼처럼 수많은 배들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말해 준다.

 


내림길의 계단이 도솔암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이어 받은 침목의 계단이 보폭을 잡아 먹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굳이 계단까지 안 만들어도 될 경사에까지도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계단 지옥이 되어 봉우재에 내려선다.

 


철쭉군락지에 햇살을 튕겨 내고 있는 도발적인 진달래가 군데군데 박혀 있지만 다가가서 봐줄 정도는 아니다.

 

 

임도를 따라 산허리를 잘라 간다.
삼나무의 푸름 속에서 노란 개나리꽃 그리고 간간이 피어 있는 벚꽃으로 이미 봄이 왔것만 바람의 시샘이 만만찮다.
벚꽃은 꽃을 피워내자 마자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 마음이 안타깝고 관목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진달래꽃이 애처롭다.

 


봄 풀들로 파릇한 임도가 무척이나 생동감이 있다.

 


임도에서 진달래군락지인 가마봉으로 올라 간다.
작년만해도 진달래군락지에 관목들이 제거되어 보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미미한 개화상태 마냥 주변이 어수선하다.
양지바른 곳이라서 따스함에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만 같은데 또 어떨지는 다음에 확인해 봐야겠다.

 


진달래 터널은 그늘의 용도다.

 


가마봉에 다시금 올라 올라 왔던 돌고개로 내려간다. 
꽃 향기도 퍼지기 전에 찾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의 유명세를 말해 주고 있다.
땀에 젖어 고달픔이 느껴지는 이들과 계단을 회피하기 위해 돌고개 방향을 이탈하여 골명재로 내려선다.

 


그래도 임도는 지겹지만 벚꽃 피어나 봄이 참 이쁘다.
돌고개에는 평일인데도 산악회버스까지 있어 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계절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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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면 중인 북한산 ***
-.일자 : 2024년 3월 8일
-.코스 : 북한산우이역-만남의광장-하루재-백운암-백운대-북한산우이역(8.6km / 3시간 31분)

어제 관악산 산행을 했다고 오랫동안 기름칠을 안한 로봇의 관절과 같은 삐걱 거림으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니 정신마저 개운치가 못하다.
그래도 상경을 했으면 조상을 뵙듯이 북한산 산행은 다녀와야 만이 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계획한 일정들을 순리 있게 해나갈 것 같다.
새벽부터 출근을 해야 할 아이들을 깨울 수도 없고 하여 부인을 대동하고 국수로 요기를 하고 지하철에 오른다.
어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봉산행에 잘못 올랐다가 북한산우이역을 찾아 가는 여정이 참 한심스럽다.

 


그래도 일찍 나선 터라서 여유가 있는데 전철 안에서 몇몇 보였던 산행 차림의 사람들 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어째 나 홀로 도로를 타박타박 걸어 썰렁한 우이동만남의 광장을 지나고 우이동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상으로 1km의 거리다.

 


도로와 나란히 하는 도선사길의 등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 간다.
온화한 날씨 속에 뽀송하게 말린 등로가 마을길처럼 정감 있게 이어진다.
바람 한 점이 없는 적막하기만 한 산길에서 나목 사이로 쏟아져 들어 온 햇살은 따스하여 병아리처럼 스르르 눈이 감겨 들고 있다.
걷는 것 외엔 할게 없는 잠잠한 길에 육모정능선이 잠시 잠깐 길동무가 되어 줄뿐이다.


평일에는 천만시민 모두가 국가경제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지 이곳은 다람쥐조차가 없는데 도선사가 조망 되고 산 아래에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까지 차로 올라 와 버렸으면 이제 남는 거리는 별거 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백운대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 온 길과 합류 되면서 사람들이 많아졌고 돌길의 지루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위가 그나마 등산로를 유지시켜 주지만 이 돌길을 지겹게만 올라 인수봉이 보이는 하루재의 쉼터에서 인수봉을 올려다 본다.
뭐야 이거, 등로에 하얀 눈이 그대로 얼어 있다.
같은 서울이라도 어제의 관악산과는 아주 딴판인 풍경에서 어찌해야 될지 판단이 안 선다.
지금 막 고향의 벗들과는 울 동네의 매화꽃축제장 사진을 공유했기에 이런 생경스런 풍경은 상상 하지도 못했다.

24년 3월 9일 광양매화마을

 


이곳만 벗어나면 되겠지 하는 아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인수암을 지나고 오름길로 들어서자 이젠 두발로 지탱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얼마 전 동료가 눈 산행에 나섰다가 넘어져서는 허리를 반쯤 접고 다니고 있는 터라서 더욱 경직된다.
하산 하신 분이 아이젠 없이는 불가하다며 구조대에서 안전장구를 대여 해준다고 알려 준다.
한번 다치면 오래 가는 나이가 되어 버렸는데 구세주다.
곁다리로 길쭉길쭉한 신체로 땡칠이처럼 거침이 없어 보이던 외국인들까지도 혜택을 본다.
세계 어느 수도권에서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산이 있어 누구든 자유 산행이 가능하고 또 이런 대여 서비스를 하여 주고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이젠 아이젠을 반납하여야 하기에 어쩔수가 없이 극도로 회피하는 회귀 코스로 바꾸어야 했지만 오후대의 시간은 확보 되었다.

 


얼음으로 덮인 깔딱고개를 두발로 성큼성큼 걸어 박물관이 된 옛 백운대피소에 올라 선다.
옷에서는 밥솥에서 취사가 완료된 것 마냥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오지만 이곳 까지의 산행에 숙성된 듯한 과정들이 참 기분을 좋게 한다.
이곳도 계절의 변화만은 어쩔수가 없어 처마에서는 빗물처럼 물이 떨어지고 있고 쉼터에서 쉼을 하고 있는 산객들은 어느 산막에서의 분위기다.
점심 먹기 딱 좋은 분위기지만 일단은 정상에 오르는 게 우선이다. 

 


백운대는 성벽에 앞서 눈과 얼음과 들어난 바위로 스스로를 방어 하고 있는데 견고한 성벽의 용암문은 소통의 통로다.
장터 마냥 산객들이 합류되고 이미 올라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핑계거리 만을 찾았던 소심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소식적 스릴을 즐겼던 백운대의 암반도 이젠 점프를 위해 막타호에 올랐던 것처럼 도전이 된다.
폼은 엉거주춤 하고 바위와 스킨십을 해가며 기어서 오르더라도 허세에 인생 걸 필요는 없다.
어제 다이소에서 코팅 장갑을 구매한 게 와이어를 움켜 쥔 손은 시럽지만은 미끌리지가 않아 요긴하다.

 


백운대에 차가운 바람이 사람들을 낙엽을 쓸 듯 밀어 내어 기다림 없이 정상 인증을 한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하는 지리산과는 달리 외국인들과 공유하는 위 아 더 월드의 산정이다.
인수봉과 망경대가 수호하고 있는 널찍한 암반에는 개와 고양이까지 노니는 산상의 공원화가 되어 있고 한 켠에서 시가지를 관망하며 김밥을 먹는다.
개의 애처로운 눈망울에 고양이의 애교에 김밥을 나눠 먹는 인류애를 실현하고서 하산을 한다.

 

 


회색의 도심을 감싸고 있는 수락산과 불암산은 낼 가야 할 곳인데 또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하다.

 


먼 시야에 대동문으로 이어진 등로가 하얀 눈에 덮여 있어 무섭기도 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 아이젠을 반납한다.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 왔습니다.

 


하루재를 넘어서자 몹시도 불던 바람도 따스한 기온에 자취를 감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푹신한 흙길과 포근해진 봄 날씨가 몸을 흐늘거리게 만든다.
짧았던 시간 이였지만 계절의 강력하고 다이내믹함 속에서 환절기산행의 준비성을 느끼게 만든 산행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어린이대공원 나들이에 나선다.

남들 일할 때 노는 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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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산에서 관악산 잇기 ***
 
-. 일자 : 2024년 3월 7일
-. 코스 : 석수역-호암산-장군봉-삼성산-무너미고개-관악산 연주대-사당역(14.6km / 4시간 55분)


서울 상경에는 항상 산행 계획이 앞선다.
관악산을 등반하기 위해 첫차로 출발을 하여 정확하게 10시 30분에 센트럴시티에 도착이다.
집사람은 7호선으로 이이들 집으로 난 들머리인 석수역을 가기 위해 환승하여 1호선인 인천행에 올랐는데 어째 역을 비켜나 직진만 하고 있다.
되돌아 오고 왔던 길을 또 가고 하다 보니 1시간을 헤매어 버렸고 12시가 다 되어 점심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 동안에는 시간에 쫓기어서 매번 동선이 짧은 관음사구간만을 택하였기에 이번에 만은 단순함을 회피하고 숙제와 같았던 삼성산을 경유하고자 석수역을 택하였는데 너무 방심을 했다.

 


잃어 버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조리가 빠른 짬뽕을 흡입하여 더부룩해진 배를 껴안고 호암산 들머리로 향한다.

 


서울둘레길인 호암사숲길공원이다.
둘레길을 완주하였기에 분명 여길 경유 했었겠지만 막상 모든 게 낯설기만 한데 그때에도 안양천을 따라 걷다가 둘레길 스탬프를 놓쳐서 전철을 다시금 타고서 왔었던 때가 생각난다.

 


서울둘레길과 함께한 호암산 오름길이 가파르다.
작은 골짜기에는 요즘 잦았던 비로 인하여 물이 흐르고 있고 낙차로 자그마한 폭포들도 생겨났다.

 


결벽증 때문에 불면의 밤을 지새운 것처럼 서울둘레길을 되짚어 보기 위한 집착에서 벗어 나질 못하고 있어 정갈하기만 한 숲길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놓고 있다.

 

 

평일의 오후이다 보니 간혹 교차한 사람들은 노인들 뿐이고 걸거침이 없는 등로는 시간 단축에 제격이다.

 

삼성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허물어진 호암산성을 지나고 호암산성의 우물지 문화재발굴조사 중으로 난잡해 보이는 복원터를 벗어나자 석구상이 있다.
이게 호랑이여 개여?
풍수적으로 호암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으로 한양에 호환이 많기에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된 것이 호압사이고 기운을 누르고자 만들어진 게 석구상이란다.

 

 


넓은 터를 지나 태극기가 있는 호암산 정상에 선다.
호랑이 기운까지 야 과장된 듯 하지만 바위들로 제법 우람하나 정상석은 없고 막힘 없는 조망에 가야 할 관악산과 삼성산이 눈앞에 있다.
전망대에서 대충의 서울 조감도를 맞춰 보고 서둘러서 숲길로 스며든다.

 


등로가 참 좋다.
창공에는 비행기가 허연 배를 보이면서 날아 다니는데 5분에 하나씩은 비행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봉우리를 우회 하듯 하다가 올라 선 곳이 아무런 표식도 없는 장군봉이다.
이곳도 그 넘의 풍수지리에 이름을 빼앗겨 버린 듯 한데 올라 있던 산님들이 이곳이 장군봉이 맞냐고 물어 온다.
나 또한 램블러가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곳이다.

 


오늘 비 예보가 뻥이 아님을 보여 주려는지 잔뜩 흐려지며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등로에 이정표는 삼성산을 대신한 삼막사가 하고 있고 갈림길 또한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 헷갈림이 있지만 능선고집이다.
소나무숲길의 아늑함과 암릉에다 억척스럽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은 산수화가 되었으니 이 자연이 나의 장원과 다름 없다. 
인적도 없는 길을 처음인 내가 거닐고 있어 어색함도 있지만 색다름이 안겨주는 긴장감과 함께 또 하나의 미지를 탐익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

 


커다란 바위가 있어 올라 본다.
뭐 특별 난 것은 없는 삼성산 깃대봉이다.
삼성산이 코 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이정표상 에는 여전히 삼성산의 이름이 없다.

 


갑자기 임도가 나타난다.
송신탑을 향해 이어진 듯 구불구불 올라가는 임도를 탈피하여 샛길을 잡아 올라 간다.

 


송신탑에 가로 막히고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는데 어째 보여야 할 정상석이 없다.
탑돌이를 하듯이 휘어 돌아 임도가 올라 오는 정문에서 전망대 역할을 하는 듯한 건물의 옥상계단을 올랐으나 역시나 잠겨 있다.
어쨌든 삼성산에 올랐고 이렇게 송신탑이 정상을 잠식을 하여 그토록 이름을 지웠었지 싶다.

 

 


정상석 찾기를 포기하고 임도를 따라 내려 서면서 잠시 헤매다가 망월암이정표에서 등로에 올라 탄다.

 


등산로가 잔돌과 바위로 많이도 거칠어서 이곳이 삼성산을 잇는 정상 등로가 맞는지 조차의 의문은 계단이 나타나면서 증명이 되었고 앞에 버티고 있는 관악산에 치솟아 있는 암릉들이 성벽처럼 견고하게만 느껴진다.

 


고도를 한참이나 낮춰 좌측에 서울대학교의 건물들과 눈높이가 일치할 정도인데 내림길의 정점인 무너미고개다.
목적하였던 호암산에서 삼성산까지의 루트를 확인 했기에 서울대학교로 탈출할 수 있지만 관악산에 와서 연주대를 안 찍고는 미션 크리어가 안 된다.

 

 


듬성듬성 하얀 눈이 박힌 암릉들이 위협적이지만 길은 열려 있어 두발을 지탱할 수 있는 체력이 요구한다.
학바위 능선을 까마귀들이 선점을 하여 침입자를 경계하듯이 깍깍거리며 날아 다니고 있고 사위가 검어 지면서 한두 방울 내비치던 비가 싸라기 눈이 되어 휘날린다.
일기예보를 우습게 여겼는데 그래도 기상청의 존재성은 있다.

 


꾸역꾸역 올라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학바위국기봉에 오른다.
쉼 없이 왔다.
내가 늙은 것인지 이쯤의 난이도에서는 체력 고갈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몸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아 쉬면서 오이를 먹는다.
상큼한 향만으로도 치유가 된 듯하지만 향미는 금방 휘발 되고 남은 오름길 또한 만만치가 않다.

 


송신탑으로 이어진 길에서 꺾어 관악사지를 향해 내려 가는데 음지의 눈이 위협적이다.
데크와 계단 등으로 사찰만큼이나 깔끔해진 등로다.

 


뛰어 가는 젊은이도 부럽지만 거북이와 같은 뚜벅이도 뒤를 이어 전망대에서 연주암을 조망하고 정상에 올랐다.
잿빛 하늘을 비행기는 여전히 날아 가고 있고 흐린 달빛과 같은 해거름에서 하산 시간은 충분하게 보증이 되고 있다.

 


하늘아래 도심지에는 한창 쏘나기를 쏟아 내고 있는 듯 새카맣게 덮여 있고 스산한 바람에 으슬거리는 몸은 절로 반응하여 하산을 이끈다.

 


그새 몸이 굳어져서 관절이 통제가 안되니 내림길이 무섭다.

 


통천문을 통과하자 관음사능선이 펼쳐진다.
참 웅장 하게만 느껴지고 이 삭막 하기만 한 도심지에서 서울의 기상을 품은 진산이다.
한동안 온화 해졌져가던 날씨의 틈새로 꽃샘 추위가 강풍을 대동하고 난입을 하여 나무의 뿌리를 뽑고 가지를 꺾어 놓아 등로가 어지러운 곳이 더러 있다.

 


내림길에다가 희끔한 눈이 점박이처럼 박혀 있을 뿐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이 말끔한 등로라 속도가 난다.  

 


바위와는 상관 없어 보이던 등로에도 호두알 같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바위의 틈새에 걸쳐진 계단이 안전을 확보해 준다.

 


쉼터에서 내려설 방향을 가늠하여 관음사국기봉을 향해 내려선다.
서울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뷰이고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가 국뽕을 자극한다.

 

 


할배들이 근육 자랑을 하고 있는 약수터에서 관음사를 버리고 사당역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등로에 징검다리처럼 돌로 만들어 놓은 계단이 지속되어 무릎에 통증이 가증되고 있다.

 


수도권이라 사이 사이에 이런 길도 있다는 걸 체험하지만 거미줄 같은 등산로에서 목적을 잃지 않는 주관성의 중요함을 느끼는 길이다.
등로는 아파트에서 삶의 도로에 흡수되고 생활 도로를 따라 사당역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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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나들이 **
-.일자 : 2024년 2월 28일
-.코스 : 매화마을-쫓비산-매화마을(7.1km / 2시간 15분)
          화엄사-카페-LF 영화관
 
눈치 없이 일찍 꽃잎을 내밀었던 매화꽃은 향기가 퍼지기도 전에 장마 같았던 잦은 비에 꽃잎이 낙화 되어서 동백꽃 마냥 땅에다가 하얗게 꽃을 피워 내고 있어 마음의 조급하다.
순서도 없이 마구 피어 나는 봄 꽃들을 보기 위해선 서둘러야 히여 휴일의 평온한 휴식을 반납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꼭 올해부터 지역상품권으로 대체된 입장료 때문이 아니라 스케줄상 축제기간과 일정이 맞지 않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소설네트워크의 그림들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는 섬진강변 둔치는 주차장 재정비가 한창이고 막상 매화마을의 주차장은 어수선함이 남아 이거 주차를 해도 되는지 조차가 망설여 진다.
차에서 내리자 하얀 입김이 휘날린다.
이런 날씨에 꽃 구경이라니...
춘설에 꽃을 피운 매화가 아닐라까 봐 올려다 본 매화마을은 초설인 듯 엉성한 꽃들이 산비탈에 반짝이고 있고 홍매화가 포인트를 찍어 그래도 봄의 구색은 갖췄다.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 상인들에게서 분주함이 느껴지고는 도로를 건너 골목을 따라서 매화마을을 향해 올라 간다.

 


대체 이곳 어디쯤에서 어떻게 입장료를 받게 될지는 감도 못 잡은 채 올라 버린 매화마을은 꽃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당산나무처럼 커다란 나무에는 비 현실적이라 할만치 하얀 꽃에 덮여 있고 꽃나무 아래에서 장사를 펼치고 있는 촌로는 생생한 화보다.

 


막상 올라 설수록 매화의 개화 상태는 미미하나 소소한 볼거리가 참 많은 매화마을이라서 여행 기분 제대로 난다.

 


정자에 올라 초가집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목가적인 풍경을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또 명견 마냥 빛을 토해 내고 있는 섬진강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루는 충만해 졌다.
가슴에서 감정의 물결이 일렁이며 파도를 일으키고 있지만 동반자는 관광 모드로 난 산행으로 잠시 헤어짐을 가진다.

 


정비 중인 간이 가계와 민가를 비켜나 언덕에서 매화마을을 조망한다.
참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이른 아침의 냉랭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하지만 오름길이 버겁다.
강가에서부터 시작된 산행인지라 고도를 고스란히 올라야 함이니 기꺼이 감내해야 함이다.

 


축제기간에 손님 맞이로 등로를 정비하고 송풍기로 마당을 쓸듯이 낙엽들을 깨끗하게 쓸어 내고 있어 등로가 반들 반들 하다.
나는 이맘때쯤 에는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듯이 꼭 이곳을 찾는데 우리 산악회가 세워 놓은 정상석을 배알하기 위함이다.

 

아직은 초록빛 하나가 없는 등로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로 뭇 생명들을 깨워 나간다.
매번 운동 삼아 가야산을 찾을 때와는 또 다른 산행의 맛이다.

 


토끼재를 잇는 호남정맥상의 능선상에 올라서고는 메마른 가지마다 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연분홍의 진달래를 찾는다.
아직은 골을 휩쓸고 올라 오는 바람이 차가워 눈치만 보고들 있어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는 히어리 조차도 자취를 감췄다.

 


쫓비산에 올라 선다.
듬직한 정상석과 마당 같은 넓은 전망대가 반긴다.
이렇게 한번씩만 찾아 와도 고향 같은 넉넉함과 포근함이 있다.

 


산아래로 첩첩 산중을 섬진강이 가르고 있다.
마주한 이웃 동네 지만 섬진강줄기가 행정구역을 가르고 사람들의 성품 마저 달리하는데 지리산은 하얀 눈에 덮여 아직 겨울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막걸리 한잔 있다면 시 한수쯤은 그냥 읊을 분위기지만 올랐으면 내려서는 게 이치다.

 


온갖 악천후와 찾아주는 이 없는 외로움 속에서도 굳건하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정상석을 뒤로 하고 올라 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간다.
인생이 그러하듯 올라 올 때 와는 사뭇 다른 경사와 숲 속 분위기에 걸음이 어설프다.
이른 시간인지라 완전한 자유 산행의 여유로움 속에서도 정성스럽게 등산로 정비를 해 놓은 수고로움에 감사한다.

 


이미 매화마을은 봄이고 상춘객들이 나비와 벌처럼 모여 들었다.
꽃 보고 인상 쓰는 사람 있을까?
활짝 피워 낸 복사꽃 같은 웃음으로 마냥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봄을 앞당기고 있다.
햇살에 냉기는 어디론가 내 빼 버렸고 한층 더 풍성해진 매화꽃은 또 다른 설산을 만들고 있는 오후다.
밥 묵으러 가자.

 

 

 


 
일찍 나온 덕에 오전에 꽃놀이를 마치고 화엄사길목에서 점심을 먹는데 어째 소문난 로컬음식점 보단 관광지 분위기다.

 

 


화엄사의 매화는 꽃망울만 맺혀 아직은 사람의 관심을 못 받고 있고 경내를 삥 돌아서 병풍처럼 우람한 지리산과 사찰을 조망하고 내려 온다.


 
어찌 알고 이렇게 들 찾아 들까?
촌로의 마을 어귀쯤일 듯한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다.
커다란 정원을 둔 카페는 쉼을 위한 공간으로 참 좋은데 그 만큼의 이용 가격대가 있다.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서 오늘이 문화의 달이란 정보에 파묘 란 영화를 검색한다.
차라리 안 볼껄....
저녁에는 어머님을 뵈야 하기에 이른 오후대의 시간을 선택하다 보니 커피를 맹물 마시듯 마시고 서둘러서 LF의 영화관을 찾는다.

 

 


어라...
문화의 날 할인은 오후5시부터라네......
할 수 없이 제돈 내고 티켓팅을 했는데 나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가 않아 돈 아까운 영화가 되었다.
 
어쨌든 뭐 오늘 하루를 잘 놀았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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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룡산 산행 **

 

-일자 : 2024년 2월 12일
-.코스 : 와룡공원-천왕봉-도암재-상사바위-새섬봉-민재봉-병풍바위-용두공원(11.8km / 5시간 50분)


명절날 조상님 못지 않게 주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우리 가족들이기에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명절 후유증을 줄여보고자 대체 공휴일에 산행을 신청해 놓았다.
가자 와룡산에 용 잡으러...
이웃 동네이기에 8시30분에 버스에 올라 1시간만에 와룡공원에 도착을 한다.
회장님의 사전 브리핑이 있긴 했으나 멧돼지를 향해 질주 하는 사냥개처럼 등로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워워...
모처럼 만난 산 친구와 동행을 하기로 작심 한다.

 


궁도장에서부터 시작된 등로의 경사가 급하다.
더구나 이곳은 섬 산행과 유사한 해수면에서부터 시작 되고 있기에 낮은 고도에 비해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길가로 비켜 나고 있고 느릿한 걸음에 보조를 맞추자니 이것도 영 못할 짓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앞서다 보니 홀로 산행이 되어 행동은 자유로워 졌지만 종아리는 터질 듯 탱탱해졌고 땀으로 흔근하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사천은 미세먼지가 덧칠을 하여 회색 도시가 되었고 육지와 남해바다의 경계 마저도 평탄화를 시켜 놓았다.
산 만이 태산이 되어 올라도 올라도 제자리 걸음이듯 한데 이 넘의 산 이야 태초 생성기부터 변함이 없었을 것이지만 이 내 몸이 늙어서 이니 다 세월 탓이다.
그래도 퇴색된 기억 속에서도 끄집어 낼 수 있는 추억만은 있어 거친 등로를 더듬고 철쭉군락지를 헤쳐 나간다.

 


전망이야 능선에만 올라 서면은 일망무제인 임을 알고 있는지라 고도 잘라 먹기에만 집중을 하며 암반에 걸린 밧줄 구간을 기어 올라 천왕봉에 올라 선다.

 


조망, 보이는 게 한정이 되어 있지만 그래도 참 좋다.
쉬면서 새섬봉을 조망하니 다리에 힘이 풀린다.
또 저 높은 곳을 어이 오를 꼬...
예전에는 의욕이 치솟았는데 지금은 걱정이 앞선다.

 


운해의 너울 속에서 눈에 덮인 지리산 천왕봉이 진짜라고 우뚝하게 존재를 나타내고 있고 하동 금오산이 수호 무사를 자처했다.

 


내림길이 잔돌들로 거칠지만 등로 정비가 되어 있어 직립보행은 가능하다.

 


고도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듯 한 급경사는 성을 공략하기 위한 병사들을 집결 시켜 놓을만한 넓은 공터인 도암재에서야 끝나는데 다시금 산행의 싯점만 같다.
이제 부터 1km를 다시금 올라야만 한다는 결론이다.
참나..이 앞 전 산행만 해도 축지법을 하듯 그냥 저항 없이 올랐던 곳인데 앞서간 걱정이 구실 부터 찾고 있다.
이게 다 나이 탓이다.
그러니만큼 오를길이 낯설고 고되기만 하다;

 


어느 산님이 계단에 새겨 둔 힘내세요란 글자가 정말로 힘이 되어 주었고 정승 스럽게 쌓아 놓은 돌탑이 위안이 되는 오름길이다.

 


상사바위에 계단이 설치되어 스릴을 앗아갔지만 성취감 대신 속도감으로 능선에 올라 오름의 미션을 크리어 시킨다.

 


새섬봉으로 이어진 암릉이 멋찌고 건너편으로 진행 해야 할 능선 너머로 사량도와 욕지도의 섬이 공중 부양을 한 것 마냥 미세먼지 속에서 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경치 맛은 최고 인데 함께 음미 할 벗이 없으니 금방 시들해진다.

 


사면과 계단이 바위의 날등이 살아 있었을 때를 잊게 만든다.
몸에 스치는 봄기운의 훈풍이 드라이어가 되어 몸을 뽀송하게 만들고 봄 향기가 방향제가 되어 온 산하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와룡산이 봉우리가 아흔 아홉개라 하여 구구연화봉이라더니 자그마한 산세가 참으로 옹골차다..
와룡산의 수장 새섬봉은 이어진 능선상으로 민재봉을 관할하고 와룡골 건너의 기차바위를 방패막이로 삼았는데 경치가 압권이다.
여전히 지리산의 천왕봉을 병풍처럼 길게 늘어서 있고 정기가 좋다는 산답게 백천사의 커다란 불상이 내려다 보인다.

 


살랑이는 봄바람과 한참을 정상에 머물면서 친구를 기다렸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오찬을 한다.
산해진미는 아닐지라도 정성이 가득히 담겨 있는 반찬들을 안주 삼아 반주를 한두 잔씩 나누다 보니 일행들이 전부 지나가 버렸고 우리가 꼴찌가 되어 제대로 된 기차놀이다.

 


우리들의 소풍은 햇살에 얼굴이 익어 서야 정리가 되는데 비틀거리는 우리들을 철쭉군락지 붙들면서 인도하고 있다.
지열까지 더해진 등로가 곧 철쭉꽃을 피워 낼 듯이 무덥지만 우리들의 성급한 마음이었을 뿐 이파리 하나 매달지 않는 나목들 뿐이다.

 


남해바다의 조망이 참 좋았던 민재봉에 올라섰지만 휑한 공간을 의자만이 지키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여유로움도 데려 가버려 증명만 남긴 채 의자에서 쉼 한번이 없이 내려 선다.

 


기차 바위에 올라 서면서 속도가 빨라 지고 논스톱이다.
등로가 큰 굴곡도 없이 수평을 이뤘으니 우리들만큼이나 앞서고 있는 사람들도 연착도 안하고 속도가 빠른지라 오로지 둘 뿐인 산길이다.
소나무숲길이 편안하고 우리들의 담소도 정겨워 노란 병아리들 소풍 나선 분위기다.

 


쉴 들이 없고 쉴 곳도 마땅치가 않아 묘지들을 지나 임도에 내려선다.
앞에다 활공장과 작은 봉우리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다.

 


누적된 산행 피로감에 힘겹게 올라 와룡저수지의 푸른 담수의 원수가 된 와룡골을 굽어 보는데 전원주택단지가 들어 설 만큼 명당이다.

 


공원에서는 사람 소리도 들려 오고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니 운동하는 주민들과 사람들로 도시공원이 맞다.
따스한 물까지 나오는 화장실에서 세면을 한후 램블러의 산행을 종료 시키고 버스에 오르니 어째 많은 빈자리들이 있어 의아스럽기만 하다.
결국 중탈한 사람들을 모시러 골짜기를 올라가서야 최종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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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산 뜻 밖의 설경 **

-.일자 : 2024년 2월 7일

-.코스 :선암사주차장-선암사-장군봉-연상봉-굴목재-보리밥집-작은굴목재-선암사주차장(13.8km / 4시간 53분)

 
풍만함이 사라져 버린 앙상한 이 계절에 뭇 짐승들은 먹잇감을 찾아 동토를 헤집고 다니지만 풍부한 자원의 혜택 속에서 안락함에 순응해 버린 나의 몸만은 날로 비대해지고 있다. 

 


매순간에 결심했던 산행은 쉴 때마다 내린 비가 핑계가 되어 주었고 다치면 오래간다며 함께 놀자는 마눌님의 꼬임이 자의가 아니란 위로를 주었지만 언제까지나 구실만을 찾아 구걸할 수는 없어 조계산을 찾기로 한다.
선암사 주차장의 주차 라인을 재정비하였고 화장실이 호텔 급으로 바뀌었다.
주차장에서 올라다 본 스카이라인이 구름인 듯 눈 인 듯 하얗게 덮여 있어 가슴이 쿵쾅거린다.
장맛비처럼 연일 내렸던 비와 함께 입춘을 넘긴 터라서 전혀 기대치 않았던 풍경인 지라 그새 녹아 버릴 새라 마음이 바빠진다.
마눌님이 출타로 빨리 들어 오지 말란 명령이 있었고 모처럼의 입산에 천천히 즐기고자 했는데 사람 맘 참 간사함이다.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듯 절차를 밟아야만 했던 관리소는 하이패스를 통과하듯이 걸 거침이 없으니 또 기분이 좋아 진다.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뻗어 있는 나목들에 비해 바닥은 싱크홀이 생기듯 패인 곳들이 있지만 사찰의 진입로는 연제나 정갈함을 준다.
싱그러운 바람에 육체를 샤워 시키고 청아한 물소리에서 정신에 쌓여 있던 고민들을 씻어 낸다.
항상 그렇지만 나서기만 하면 이렇게나 좋을 걸 왜 매번 편안함과 타협하고 있는지 모룰 일이다.

 


천년고찰 선암사가 동안거에 들어 간 듯 인적이 없고 내딛는 나의 발자국 소리에 내가 절로 겸손해 진다.
올려 다 본 산릉에는 눈이거나 상고대가 확실하게 목격 된다. 

 


천년 세월의 덧깨가 씌워진 대각암은 폐가를 연상케 하지만 여전히 건제하면서도 세속과는 무관한 듯이 비켜나 있고 담벽을 끼고 산행길이 열려 있다.
조용한 숲에 나무를 찍어 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울리고 나는 조급증에 새가슴이 되어 촉삭거리고 있다.
나의 이런 습성을 잘 알기에 산행 의지를 다지기 위해 이미 산악회에다가 산행신청을 해 놓은 터라 체력 테스트를 하기로 한다.
유연성이 없고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함이 스스로 느껴지고 있으나 뚜벅이 기질은 그대로 있어 쉼 없이 향로암터에 올라 가쁜 숨을 고른다.
음, 그 동안에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기본 운동은 틈틈이 해 놓아서 인지 아직은 쓸만 하다.
샘터는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해골물은 아니더라도 몸에는 좋을 것 같은 데도 도구가 없어 그냥 오른다.

 


급경사는 산의 골격을 붙잡고 있는 잔돌들로 정돈되지 못하였고 그만큼 오름길은 길다는 뜻이라서 등로에만 집중을 한다.
등산의 고달픔은 정신의 느슨함과 집중력을 높여 놓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치유제가 되어 준다.
햇살에 투영된 나목에 하얀 눈가루가 덧씌워지게 시작하고 눈이 얼어붙어 있는 난간의 밧줄은 몸의 의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세상에나 이게 웬 횡재야~
전혀 기대치 않았고 올라 버린 기온으로 전혀 기대를 않았던 풍경으로 기쁨은 탄성으로 흘러 나온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는 온화한 날씨 속에서 피어난 눈꽃으로 산정은 화려해졌다.
하얀 설원에 둥그런 묘지 같이 봉우리들은 두둥실 떠 있는 섬처럼 펼쳐진다.
이런 날씨에도 눈꽃이 핀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신부가 버진로드를 거닐 듯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공존하면서 마음은 까닥 없는 조바심으로 요동친다.
오직 나만을 위한 듯 온통 눈꽃의 산정 속에서 거닐기도 좋게 등로만이 눈 하나 없이 말끔하니 오히려 이것이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가만 보면 봄날 마른 나뭇가지 마다에 함박지게 꽃송이를 피워낸 봄날의 벚꽃 나무만 같다.

 


우주를 관장하고 있는 전지진능한 신의 작품처럼 느껴지고 나의 모습도 어디선가 지켜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진공상태인 듯 적막감만이 있던 산길이 참새들의 날갯짓처럼 숲이 바스락거리고 있다.

 


하루의 정점에 이르면서 자기들의 역할은 여기까지 인 듯 눈이 낙화하기 시작하여 검은빛이 들어 나면서 동양화가 되고 연산봉에 올라서자 순천의 젖줄인 상사호가 펼쳐지면서 세속과 일체화가 되어 간다.
연공서열이 있어 정년까지 잘 지내 왔지만 엄연히 조직의 평가가 있고 서열이 존재한 직장이기에 지금은 묵언수행으로 버텨 내고 있어 이 평화와 자유로움이 한없이 좋다. 
기온이 한껏 올라 부유한 미세먼지로 뿌옇지만 마음만은 맑음이다.

 


질퍽함을 예상했던 내림길은 얼어 있고 사면에 쌓인 젖은 낙엽이 여지 것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산보 길이다.

 


굴목재에서 내림길 조차도 질퍽거림이 없고 물소리가 들려 오는 계곡의 배도사대피소를 지나 빗자루로 쓸어 놓은듯한 길을 따라 보리밥집으로 들어 간다.
연기만 피어 오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만치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가만 문을 열고 들어 가 손님인 내가 쭈삣대며 점심이 되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보리밥집은 나만을 위한 세프가 되었고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 커피 한잔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 피크닉 기분도 내보지만 혼자 이니 금방 시들하다.

 


밖에 나와도 봄날 마냥 따스 하여 눈 속을 걸었던 게 꿈결인 듯하다.
식후의 오름길은 대비하고 있어도 항상 고달픔이고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힘듦만큼 몸은 건강해져 가고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도 헥헥 거리는 현실성에 금방 다리에 힘이 풀린다.

 


작은굴목재에서 시작된 급경사가 스키장의 최상급처럼 급하게 내려 가고 있고 유연함이 빠져 나간 몸에서는 다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내어 걸음이 절로 잘게 디뎌진다.

 


해빙기의 계곡은 이미 봄이고 빗물까지 더해져서 레프팅을 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편백숲을 지나며 숲을 벗어 난다.
쏟아진 햇살이 부담스럽고 마술을 부렸던 듯 싹 모습을 달리한 조계산이 낯설기도 하다.
선암사의 진입로에는 그나마 몇몇 사람들이 있어 덜 쑥스러운 길이다.

 

 
이미 봄이다.
홍매화가 피어나고 양지바른 곳에 연분홍의 꽃잔디가 피어나며 생동감이 느껴진다.
다음에 올 때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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