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백운산 산행 **

-.일자 : 2025년 5월 23일

-.코스 : 한재-신선봉-상봉-억불봉 삼거리-노랭이봉-동동마을(11.2km / 4시간 16분)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비가 오지 않는 오늘, 지금 당장 백운산 산행을 나서며 친구들 톡방에 알림을 한다. 마침 백운산 지킴이인 참수리가 도솔봉 정비를 한다고 하여 한재까지 차로 올라가 버렸다.

 


같이 산행을 하면 좋겠지만, 돈을 받고 하면 일이 되고, 나처럼 즐거움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취미이기에 참수리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으로 나뉜다.
요즘은 장거리 산행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고, 임도는 기피하는 터라서 여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지천에 놀거리가 깔려 있는 요즘 세상에는 개고생을 해야 하는 산행인은 확 줄었고, 자연스럽게 회복된 자연 속에서의 야생동물들은 경계심도 없어졌는지, 날지도 못하는 꿩 새끼들이 생존 본능에 퍼덕거리는데, 보호색으로 가만히만 있었으면 더 안전했을 것 같다.

 


인공 구조물인 계단이 기억을 되돌려 놓았고, 능선에 접어들며 꽃길이 펼쳐진다.

 


역설적이지만 등산을 하고자 찾아와서는 친구 덕분에 일상 운동하듯이 쉽게 능선에 올라 버렸다. 이제부터는 산보길인데, 산행이 너무 무덤덤할까 봐 바람이 거세게 불어 푸르른 숲을 마구 흔들어대며 환영한다.
문어가 알을 품을 때 알다발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다리로 부채질하듯, 대지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있어 상쾌하긴 하지만, 땀에 젖어 있는 나는 추워 동태가 될 것 같다.
날씨는 여차하면 비를 쏟아낼 듯, 눈이라도 뿌릴 듯이 잔뜩 흐려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백운산은 남도의 수장답게 듬직하여 잔망스러운 오르내림 없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나름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산철쭉의 분홍과 연보라색 꽃이 가냘퍼 보인다.
바람이 봄을 붙잡고서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산철쭉을 집단 괴롭힘이라도 하듯 마구 흔들어대고 있어, 보는 내가 힘들다.
요즘은 정맥꾼들도 드물어서 의지의 상징이기도 한 표지기조차 보기 힘들고, 시에서 매달아 놓은 등산로 리본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데, 국토종주의 안내 리본만 같아 정감이 간다.

 


계절의 연속성에 봄꽃들은 피었다 지고 또 피어난다.
푸른 산하에는 버짐처럼 알록달록하게 꽃들이 피어나 있을 뿐, 초록은 동색이라서 내 마음도 새파랗게 물들어 가는 길이다.
참 좋다.
고요와 적막이다. 이 산속에는 새와 나밖에 없는 듯하다.

 


이렇게나 좋은데도 왜 여태껏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살아왔는지, 산과의 몰아일체가 되어 가면서 자책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신선대에 올라선다.
바람, 바람, 바람...
차라리 구름에라도 덮여 있었더라면 이름값이라도 할 텐데, 매몰차게 불어대고 있는 바람에 모자 단속이 급선무다. 바위 틈새에 철쭉꽃이 피어 있고, 상봉으로 흐르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은 마치 도원경만 같아 신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톱니로 오를 수 없는 바위 군락지의 우회로가 바람막이가 되었고, 갑작스러운 적막감에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느껴지고 땀이 솟는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봉이다.
얼마 전 친구가 전망 데크에 부식 방지용 페인트를 도포했다고 했는데, 신발의 접지력이 느껴질 만큼 끈적거림이 남아 있다.
흔들림 없는 상봉에 올랐으나 바람의 밀착 경호에 인증만 남기고는 바람의 눈치를 보며 주변을 조망한다.
초원처럼 무척이나 평온해 보이는 남사면과는 달리, 북사면에는 꽃들로 알록달록해졌고 정상부의 산철쭉은 바람을 타며 계절을 즐기고 있다.

 

 


정상을 내려와 조망터에서 섬진강을 바라본다.
진안군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212km를 유유히 흘러온 강줄기, 하얀 모래톱을 따라 남해로 합수되는 풍경은 분수령을 가르는 정맥꾼들에게는 남도의 향수다.
푸른 물결이 출렁인다.

 


이 산속에서 망경평야의 보리밭을 거닐었던 서해랑길이 겹쳐진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잎이 매달려 녹음이 짙어졌고, 자연의 순환 속에서 꽃들이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 생명의 연속성이 경이롭고 역동적이기만 한데 나는 노쇠하여 다리가 아파 온다.
몸을 그렇게나 단련시켰으면 공중부양도 하련만, 자꾸만 지하로 파고들고 있으니 매번 바닥을 기고 있는 발가락이 아우성이다.

 


바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 발 아래 세상 모든 것이 존재하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산은 백운암으로 인해 풍경화가 되었고, 총천연색의 자연의 밥상을 펼쳐 놓고서 편의점 김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다.
그러고 보면 노동주를 겸한 반주용 막걸리조차 생각하지 못한 것은 몸이 받쳐주지 않아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 같아 씁쓸하다.

 


능선은 단순하다.
물에서 헤엄치듯 푸르른 숲속을 그저 걷는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다.
시에다 쉼터 하나 만들어 달라고 민원을 넣었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이건 아마도 마땅한 장소가 없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마냥 걷고 있다.
가끔씩 잡스러운 생각들을 끌어모아 근본 원인을 추적해 보지만, 느닷없는 잡생각일 뿐이고, 무상무념의 걷기에 점차 고도가 낮아지면서 길에 떨어진 꽃잎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헬기장인 억불봉 삼거리다.
이른 시간이고, 이왕 산에 들었으니 억불봉을 다녀와도 되련만, 몸은 발가락을 인질로 삼아 하산을 요구한다.
매일 만 보 이상씩 걷고 수시로 산을 오르내리고 있어도, 조금 거리를 오버했다고 몸이 즉각 반응한다.

 


수련관 삼거리의 길목에 억불봉의 액자는 나무가 자라면서 그림이 미완성될 것 같고, 쉼터가 있는 삼거리는 야영장의 텐트 자리만 같다.

 


철쭉나무가 자라 터널이 되어가고 있고, 자그마한 오름도 힘에 겨워 겨우 노랭이봉에 올라선다.
무슨 바람이 종일 따라다니며 나를 쫓아내고 있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커피를 마시고 파노라마 속의 지나왔던 능선을 더듬는다. 어쩌다 보니 철쭉 구경도 못 해본 국사봉 능선상에는 광양만이 걸린다.

 


이제 동동마을까지의 내리막만 남아 있다.
이미 나무의 새싹들은 푸른 잎들로 성장하고 있는데, 갈색의 낙엽이 깔려 있는 내리막길이 위협적이다.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듯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야 하는데, 뻣뻣하게 굳어 유연성을 잃어버린 몸으로 버티자니 종아리까지 아파온다.

 


에라이...
아무리 안 가려고 버텨 봐야 어차피 내려가야 끝이 나니, 제발 좀 가자...
행위가 진짜 힘이고 능력이다.

 


동동마을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는데, 어째서 이곳에 마을회관만 자꾸 늘어나고 있다.
마을회관에 깃발이 나부끼고, 나무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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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 계절 오월 ***

-.일자 : 2025년 5월 19일

-.장소 : 중마동 장미공원-광양읍 서천변 - 광양읍 장미공원

 

나무와 풀들이 본격적으로 자라 초록빛이 짙어지고 꽃들이 만개하는 바쁜 계절입니다. 기념일이 많은 시기에 처가 가족 모임을 잡았습니다. 재 재용으로 휴가가 없는 나를 배려해 주었지만, 환갑이 넘었어도 막내인 내가 모든 스케줄을 잡았고, 서울에서 또 평택과 충주에서 이동해야 할 처가 식구들의 고달픔이 그대로 전이되어 미안스럽습니다.


리조트의 체크인은 키오스크로 대체되어 정확히 3시부터 열리는데, 정말 인정머리가 없고 기계까지 버벅거립니다. 뭐 할 일이 있나요. 먹고 마시고 놀다 보니 그토록 기대하였던 하루가 후딱 지나가버렸고, 너무 분위기에 오버되어 아침 운동도 나서지 못한 채 체크아웃을 하고 장도를 찾습니다

 

 

처가 쪽은 사진 찍기를 극도로 기피하여 여행은 스텔스화가 되었고, 순천의 명지원으로 이동하여 숯불갈비로 점심을 하는데 1인분에 19,000원이나 하여도 웨이팅이 있습니다.

 

 


이 좋은 봄날의 한복판에 동반자의 생일이 있고 생일날이 야근 때라서 미리 축하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간단하지만 자기가 손수 준비를 하였고 나는 술만 마시면 되는데도 좋아라 하니 나도 더불어 좋습니다. 다만 5월에 기념일이 집중되어 일일이 챙겨야 할 아이들의 부담이 걱정이 되지만 이 또한 자식된 도리이니 노후 보험 차원에서라도 꼭 받아 둬야만 합니다.

 


요즘 기후변화를 실감할 만큼 비가 잦은데 출근길에는 모처럼 동녘이 붉어지고 있는 해오름에, 달은 게으름을 피웠던지 하얗게 질려서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어제 회식으로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 백운산행은 자연스레 취소되었고 주변 산으로 대체합니다. 운동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웃풋보다 인풋이 많았으니 체중 증가로 몸이 둔해져 있어 강도를 높입니다. 길섶에 핀 야생화 하나도 어여쁜데 무덤가에 피어난 보랏빛 엉겅퀴가 이렇게나 예쁘게 군락을 이뤘습니다.

 



애초에 나의 건전한 생각과 실천력이 좋았습니다. 점심의 뼈다귀해장탕에는 기어코 소주를 배석시켰고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서 오늘 하루를 잘 즐기는 것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5월은 붉은 계절입니다. 민주화운동에서 흘린 피와 뜨거운 열망의 5월에는 넋을 위로하듯 붉은 장미가 본격적으로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이사 전에는 집 앞이 장미공원이었는데 지금은 여행지가 되어 있습니다. 폐속 깊이 들어오는 장미의 향에 마취되어서 몸이 붕 떠오르고 온갖 빛깔의 장미꽃밭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개량종이 화려한 모양과 빛깔로 치장했지만 농익어 꽃잎을 떨구고 있고, 울타리에 걸쳐진 토종의 장미넝쿨꽃의 자태가 더 곱습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서천변을 찾았지만 양귀비꽃은 없고 장미공원의 개화는 이릅니다.

 


요즘 술만 마시면 "도심의 터"에서 모이자는 친구로 인해 구옥을 찾는데 프라이빗한 공간에 열려 있는 방문으로 물소리가 들려 오는 정원이 격을 높여 줍니다. 홍어회는 딱 소주 한 병에 막걸리 한 병이면 족할 양이고 배불러서도 못 먹겠습니다.

 

 

 

친구가 점점 없어지고 활동 범위가 좁아지고 있는데 이렇게 부부가 하루를 오븟하게 보내는것도 복이고 소소한것에도 감동해주는 마눌있어 난 참 행복합니다.

** 망운산 늦은 철쭉 산행 **

-.일자 : 2025년 5월 7일

-.코스 : 화방사-화방고개-망운산철쭉동산-망운산주봉-망운산상봉(방송탑)-망운고개-망운사-화방사(8km/3시간20분)

 

서해랑길이 철쭉의 개화기와 겹쳐서 급하게 날짜를 잡았는데 유독 봄비가 잦습니다. 작년만 해도 우중에서도 황매산을 찾았었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서 수분 매개체를 자처하며 꽃밭을 누볐었는데, 어제는 일기예보만을 검색하다가 포기해 버렸기에 실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가까운 망운산을 찾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사위를 감추고 있어 매우 우중충한데,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던 여인 하나가 뒤를 따라 올라와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닙니다. 초파일이 지난 화방사에는 연등만이 매달려 있고, 유골을 안치한 봉안당이 산자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대나무숲을 벗어나면서부터 능선의 거친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계곡의 등로를 돌려 놓은 것인데, 능선상에 돌출된 잔돌이 이렇게나 많고 거친 곳은 몇 군데 보질 못했습니다.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밑만 집중해야 하여 몰입도는 있지만 푸르름이 짙어가는 5월과의 친밀도는 없습니다.

 


망운고개에 올라서자 시야가 밝아졌고, 부드러운 흙길이 되면서 신체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연은 초록으로 물들었고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대지는 점점 따스해지고 있어 한결 산행의 여유가 생깁니다. 싱그러운 초록에서 여유로움이 생기고 생명의 기운을 느껴가는 산행이 나를 재생시켜 주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차량이 올라오는 공터의 철쭉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헉헉거리는 숨과 흐르는 땀방울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고, 이러한 꾸준한 운동이 나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진분홍의 철쭉이 능선을 물들여 놓았는데, 막상 마주한 꽃잎은 시들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철쭉꽃이야 우리 아파트의 조경에 활짝 피어나 있고 사촌 격인 연산홍은 거리에 지천이기에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이 좋기만 합니다. 

 

 

신록의 산하와 대비되어 펼쳐진 화원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어제 황매산을 약조했던 친구는 지금 아들과 황매산에 있고 나 홀로인 게 조금 아쉽긴 하나 실행력에 만족합니다.

 


위로 올라설수록 어째 꽃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방치되다시피 했던 군락지에 잡목이 정리되어 있고 빈 곳은 식재까지 해 놓아서 내년에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소리가 철쭉 터널에서의 망중함을 깹니다. 뱀이나 동물들을 쫓는 게 아니라 내가 여인에게 뒤를 쫓겨서 괜시리 바빠지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간격을 벌려 보려 해도 꽃을 바라보는 것은 같은 마음인지라 불편함 속의 철쭉 산행은 망운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운해는 연기처럼 퍼져서 남해읍을 감추고 광양만을 지워 놓아 볼거리가 없는데, 방송탑으로 이어진 능선을 물들여 놓은 철쭉이 멋집니다.

 


관음봉의 바위에 여인이 올라섰고 새는 감시 드론처럼 치솟아 올랐다 사라질 뿐 적막하기만 합니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능선은 수목 한계점마냥 나무들이 없이 초록의 풀과 관목들뿐이라 이색적이고 산비탈에 연분홍의 철쭉이 색칠을 해 놓았습니다.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도 시야가 탁 트여서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이 철쭉 군락지에는 억새와 관목의 저지선이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아 관광용으로만 지나쳐서 산불 감시 초소에 올라섭니다. 

 

 

여수의 사라진 해안선 사이를 배가 하얀 물줄기로 가르고 있고 제철소와 이순신대교는 상상으로 그려 넣습니다.

 

 

임도로 되돌아 나오며 바라본 철쭉군락지는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온통 진분홍입니다.

 

 

파란 하늘에 구름 떠 있고 분홍색만 있으면 그려지는 단순한 풍경이지만 그림대회에 나가면 유치원생이나 일반인들 누구나도 입상할 것만 같습니다.

 

 

 망운고개에서 망운암으로 내려가는 초록초록했던 길이 너덜길로 바뀌어 조심스럽습니다.

 


망운산 아래 망운암에는 스피커에서 불경만 흘러나올 뿐 인적이 없고 나 홀로 길은 하산 시까지 계속됩니다. 

망운암

 

 

이 산에 와서는 항상 그렇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산에서 즐겨 보고자 왔는데도 딱히 쉬지도 못하고 챙겨온 점심을 그대로 가져 내려갑니다.
숲은 초록빛으로 환해졌고, 거친 돌길은 여전히 식은땀을 솟게 만듭니다. 오늘 기대하지 않았던 철쭉도 잘 봤고 운동도 적당히 했으니 어제 못 만났던 친구들과 시장에서 막걸리도 한잔해야겠습니다.

화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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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도장찍기(서해랑길 47코스,서해랑길 46코스) ***
-.일자 : 2025년 5월 3일

 

=== 서해랑길 47코스(변산해수욕장-격포항 14.3km) 중 일부 ===

펜션이 복층 구조이고 2층을 선점한 몰빵의 코 고는 소리가 주변의 소음을 흡수해버린 듯 옆에 주군의 숨소리가 새근거리는데 어쨌든간 날은 밝았습니다. 왜 이놈의 일기예보는 틀리지도 않고 모처럼의 서해랑길을 방해하는지, 거리가 휑하고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광양에서 출발하는 김 하사의 도착 시간에 맞춰 라면을 끓이고 소주로 경직된 근육들을 풀어 서해랑길 투입에 준비합니다. 조력자가 있어 출정 행사가 좀 길어졌고, 하필이면 송포항 직전의 산속에다가 필수 코스를 만들어 놓아서 방향 감각의 상실로 주변만을 맴돌다가 시간을 허비합니다.

 

 

바닷가라 비바람이 몹시도 몰아치고 있어 김 하사님의 눈길이 우리를 쫓고 있습니다. 어차피 흐려서 볼 것도 없어 차라리 걷는 게 편한데, 숲속은 바람이 없어서 걸을 만합니다. 

 

 

바람의 마중과 함께 백사장이 길게 펼쳐집니다. 비에 젖은 나그네들은 펜션의 온기가 그립고, 일상에서 벗어나 고기를 굽고 이야기를 나누는 캠핑카의 낭만이 우릴 더 초라하게 하는 해변입니다.

 


완충 지대를 벗어나자 다시금 고사포 해수욕장입니다. 고사포 해수욕장에 야영장이 생기기 전인 소나무만이 빼곡했던 때부터 이곳을 다녔던 터라서 이곳은 살갑지만, 그때를 회상해볼 여유조차 없이 텐트 존의 미로를 헤쳐 나갑니다.

 


이곳의 철조망은 텐트장의 영역 표시인지 군사시설의 유물인지가 궁금합니다. 해수욕장 출입이 자유로운 이곳에서 철조망은 과거 해안경계 등의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것인데, 폐철로처럼 남아 경관을 해칩니다.

 


마눌님이 고생하지 말라고 방수 신발을 사주었는데 발등이 아파 고문 수준이라서 김하사의 신발로 교체했지만 전달된 통증은 그대로입니다. 짝짝이 양말을 신어도 발에 물집 하나 없이 쌩쌩한 주근이 부러워집니다.

 

 


바다는 비를 포용했고 우리는 비를 튕겨 내고 있습니다. 성진항에 정박된 배들은 긴 여정 끝에 찾아온 안식처처럼 평온해 보이고, 김하사는 우리의 보호자처럼 적시적소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촉촉히 젖어든 몸을 차에 실습니다. 필수 경유지 3개를 찍었고, 오름길의 계단에는 수문에 몰린 물고기 떼처럼 도보꾼들이 있는데, 차로 이동하면서 해변로와 나란히 하고 있는 서해랑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운 건 왜일까요?

 

 

=== 서해랑길 46코스(격포항-궁항-해양수산-도정리 모항 10.1km) 중 일부  ===
적벽강에서 내립니다. 비는 의지를 시험하려는 듯 거세졌고, 후줄근한 우릴 바라보는 김하사의 눈길은 더 애처롭습니다. 붉은 색을 띠어야 할 적벽은 비에 젖어 시커멓고 경치도 별로인데, 당나라 성을 쓰는 주군이 뜬금없이 적벽강을 아느냐 묻습니다. 나도 삼국지에서 연합군이 바람이 부는 날 불화살과 불붙은 배로 조조군을 격퇴시킨 것쯤은 알고 있지만, 전통파 김씨이기에 말을 안 섞습니다.

 


서해랑길은 노랗게 유채꽃이 핀 수성당으로 들어가며 관광객들과도 함께 합니다. 이곳 용왕과 산신을 함께 모신다는 수성당은 부안 여행 시에 나의 산보 코스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자연의 신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져 있어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앞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 도로에 합류됩니다. 숙박형 프로그램도 있다는 변산반도생태탐방원을 찾아들기엔 우린 지금 너무 젖어 있습니다.

 

 


소노벨변산을 지나고 있고 곧 채석강이 있는 격포해수욕장입니다. 군산에 동생이 거주하고 있어 대명콘도 때부터 애용했던 소노벨변산은 매우 친숙하여 로비에서 커피 한잔하며 몸이라도 녹이려 했지만, 나의 의견에는 기피 현상이 있는 친구들이라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김하사가 대기하고 있을 격포항 주차장이 지척에 있으니 괘념치 않고 여인네 동상이 있는 해넘이 전망대를 넘어 격포해수욕장에서 또 하나의 코스를 마무리 짓습니다.
바다와 함께하는 제대로 된 서해랑길이나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어 괜히 격포항을 기웃거리다가 여객터미널에서 찻길이 막혀 되돌아 나와 해변길이 아름다운 궁항과 연포해수욕장을 차로 잘라 먹고 전북해양수련원으로 들어갑니다.

 

 

 

 


해변에는 솔섬과 해넘이 전망대가 있고 마실길과 함께 하는 길은 모항까지 4.7km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차에서 덮여진 몸이 훅 달려든 냉풍에 온몸이 떨려 와 앞만 보고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잖아도 알코올 주입이 안 되면 말수가 적어지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지켜가고 있는데, 이젠 제 살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 각개전투가 되어 도로에 올라섭니다.

 

 

조망되는 해안들은 어느 동남아의 휴양 분위기이고 몰빵은 프라이빗 해변을 가지고 있는 싱그릴라펜션 앞에서 기어코 머리에 꽃을 꽂고 경관 쉼터에서 박쥐처럼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그래, 미치자. 제정신이 아니어야만 이 현실에서 헤어날 수가 있습니다.

 

 


도로에서 해변으로 내려가고 데크와 흙길의 고운 해변로를 따라서 전망대를 만납니다. 평소라면 술 한잔 나누며 풍월을 읊거나 오침 때리기 딱 좋을 장소입니다.

 

 

모항해수욕장이 펼쳐지며 모항전망휴게소에 올라서고 보니 아무래도 지금쯤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서 종점인 대항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김하사를 호출하여 점심을 겸해 에너지 충전으로 몸을 덮입니다.

 

몸은 생각과는 달리 비를 피하고 온기 속의 휴식에서 안락함과 편안함에 적응을 하여버려서 더 이상 진행하는 의지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김하사는 한 구간이라도 더 진행시켜 보려 했지만, 즐기자고 왔다가 죽자고 진행을 했다가는 아예 주저앉을 수도 있기에 우리들의 노쇠한 몸이 이끄는 본능에 결국 귀가로 결정을 봅니다.

 

 


귀가의 이동거리가 짧아졌지만 그만큼 긴장도가 떨어져서 전부 기절하다시피 졸다 보니 순천이고, 가계의 브레이크타임을 밀고 들어가 염소탕으로 2박 3일의 해단식을 합니다. 길 위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팔도를 유랑할 수 있는 것은 전생에 무언가 하나로 엮여진 그런 인연이지 싶습니다. 기적은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고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 또 기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음에 또 걸어야 겠습니다.

 

*** 서해랑길 도장찍기(서해랑길 49코스,서해랑길 48코스) ***
-.일자 : 2025년 5월 2일

==== 서해랑길 49코스(부안군청-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 19km)  중 일부 ====

해는 어느 곳에서나 뜨기 마련이나 올해 들어선 우리보다 빨리 떠 있는 건 또 처음이지 싶다.

 


편의시설 없는 만경평야를 분석하면서 숙박과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는 부안읍을 선택했었기에, 호텔 바로 앞 식당에서 애호박국밥으로 조식을 먹고는 곧바로 택시에 올라 서림공원과 매장공원을 건너뛰고 부안 구암리 지석묘까지 순간 이동을 한다. 비록 김하사의 조력이 없지만 우리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경험을 활용하는 학습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필수 코스 하나가 찍히고 고인돌 공원으로 들어가자 주군은 사후 무거운 돌 대신 화장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여 수명의 서열을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마을 구경을 시켜주고 나온 도로는 자연스럽게 농로로 이어진다. 농토에 젖줄인 수로가 냇물처럼 넓고 양쪽의 공유 땅은 밭이 되어 있는데 이쪽에서는 힘깨나 쓴 사람 일거라는 우리끼리의 판단이다.

 

 

전국토를 연결하는 코리아둘레길이니 만큼 연결로가 필요할 것이고 궁리 끝에 안전이 확보된 이런 길은 자연스러운 선택이겠지만 농로와 수로만을 따라가는 길은 돌을 옮기는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의미 없는 반복적인 행위이고, 농부들에게는 배짱이의 한량처럼 비쳐질 것만 같다. 그래도 이런 걸음들이 우리들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근원이 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기에 길 위의 깨달음이다.

 

 

쉼터 하나가 없어 술 한 잔을 나누지 못하지만 밀착된 시간만큼 동지애가 깊어지고 서로 간 의지가 된다. 카톡의 짧은 단편적인 정보로 자기식 해석에 의한 오해도 해소시켜 가며 우리 앞에 남은 세월을 재설계해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굴다리를 넘어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는 마을로 들어간다. 안쪽에 등용성당이다. 성당 안에서 구원의 길을 찾은 몰빵은 화색이 돌아왔고 수선화꽃과의 눈맞춤에서 영원히 맑아져서 서해랑길로 되돌아온다. 호랑이 새끼 같은 고양이가 앞서가다 풀숲에 숨어버리고 고랑에는 미나리가 가득하여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연상된다. 

 

이곳에서의 농사는 파밭도 양파밭도 대단위라서 괜히 언덕 위에 트랙터도 위풍당당하게 멋져 보이는 곳이다.

수로와 함께하는 길이다.

둠벙에는 수경재배를 한 듯한 수생식물이 가득하고 물을 퍼내 물고기들의 은신처를 습격하잔 작당 모의를 한들 우린 어제 날 잡아가란 잉어도 그냥 두고 와 별의미가 없다. 이젠 주군이 생리현상으로 고독의 시간을 가진다.

 


햇살은 따스해졌고 초록빛 풀과 야생의 꽃들이 어우러진 대지에는 생명력이 가득하여 마음은 상쾌하지만, 너무 단순한 풍경 속에서 부안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의 풍력 발전기가 눈길을 끈다. 너른 들판에 배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인지 수로가 깊어 경운기와 펌프 등이 설치되고 논의 배수관 덮개는 생뚱맞게 높게 설치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단축해 보려고 논둑을 가로질러 걷는 주군이 선두 지휘를 하여 마을을 벗어난다. 변산 바다로 국도 아래 버려진 쓰레기에는 담금주 병이 있어 몰빵의 눈초리가 달라졌으나 행동은 없어 다행스럽다. 

도로는 사방 넓고 집 한 채가 없는 곳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있고 월포 경로당과 유리창까지 달린 정자가 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단축 48코스를 마쳤고 쉼터가 있어 우리들의 주특기인 오침의 최적 장소이나 청결도가 영 거시기하여 기웃거리다가 만다.

 

 

 

=== 서해랑길 48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변산해수욕장 9.8km) 중 일부 ===

 

48코스는 이곳 부안 신재생에너지 파크에서 변산 해수욕장까지 9.8km로 짧고 변산 해수욕장에 코지 캐빈을 사전 예약해 두었기에 더 진행할 수도 없는데 현재 10시도 안 되었다. 건물들이 번듯할 뿐 인적 하나 없는 휑한 신재생센터는 마땅히 머물 곳도 없어 전시관 건물을 지나 버스가 정차되어 있는 새만금 메타버스 체험관으로 들어간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 등의 실습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많은 학생들로 인해 체험 예약은 받지 않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겐 관심사 밖이라서 야외 쉼터로 옮겨 휴식을 한다. 비 내리는 어제와는 달리 주변에는 온통 봄꽃들로 봄내음 물씬 나고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양지바른 곳은 모두를 눕게 했는데 주군의 드러난 짝짝이 발가락 양말은 손이 많이 가는 나잇대임을 말하고 있다.

 


오늘은 엄청 시간이 널널하다, 그냥 저냥 늙어가도 좋고 이렇게 시시하게 서해랑길을 이어가도 나쁠 것 없다. 다만 무뚝뚝한 머시마들의 침묵을 깨우고 동심을 찾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보나 휑한 사무실뿐이라서 그냥 나온다.

 

 

역대 잼버리 대회 개최탑은 왜 여기에 있는겨?

 

 

도로로 나오자 칼국수집의 입간판이 부안에 진입했음을 알리고 주군의 생리 현장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쉼을 하는데 하필이면 차가 그곳으로 진입하더니 정차를 하고 여성 운전자가 나온다. 뻔뻔한 주군은 그냥 추스르고 일어서는데 어째 지켜 보고 있는 우리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굴다리를 통과하여 구도로를 따르는데 우리에게 자유로움을 안긴 변산로와 나란히 하고 있는 변산 바다로의 잼버리 공원 졸음 쉼터가 여느 휴게소만 하고 잼버리 공원 정자와 조형물들이 조망된다. 23년 8월의 뜨거운 햇살에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그대로 노출되었을 새만금 간척지가 펼쳐진다.

 

 

이젠 종점까지 7.2km 밖에는 남아 있지 않고 비웠으니 채워야 하는데 대광 슈퍼의 가성비 대신 럭셔리한 조개 칼국수집이다. 관광지라 그런지 이른 시간임에도 문을 열었고 손님들도 연신 찾아 들고 있어 이곳이 맛집인가 본데 조개 무침은 안주용으로는 뭔가 부족하여 만두를 추가시킨다. 뽕주를 제조하여 뽕 갈 때까지 마시고 햇살이 가장 강한 대낮에 서해랑길을 나서지만 우리들뿐이라서 위장을 안 해도 된다.

 

 

끝이 없는 간척지의 벌판이 펼쳐지고 있고 갯벌에 뭔 장승같은 전시물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젠 관심사가 아니다, 도로를 건너야 되는데 주군은 실익 없이 신호등과 대치를 하고 있어 이참에 버리고 간다. 

 

 

뭐여? 왜 꽃이 분홍색이여... 처음 보는 꽃이라 이것에는 눈길이 간다.

 

 

새만금 방조제는 부안 변산면 대항리에서 군산의 비옹도를 잇는 33.9km의 방조제인데 김제와 부안을 삥 둘러서 진행을 해왔었어도 저 방조제를 걷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새만금 홍보관은 점심시간이 휴관이라 야외 화장실만을 이용하고 곧바로 나와 국립 새만금 간척 박물관을 마주한다.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 나라의 간척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국립 새만금 간척 박물관은 가을 구절초 마냥 하얗게 피어 있는 야외 꽃구경으로 대체한다. 

 

 

 

 

기온도 많이 올랐고 마실 길의 샛길을 따르다 올라선 도로가 쉽지 않다. 종점이 1km 밖에는 안 남았고 모처럼 제대로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기회지만 갯벌로 유도된 안내판을 개무시하고 도로만을 따르다 보니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쉼터도 우회하여 버리고 만다. 하여간에 뭔 구신들이 들었는지 내가 하는 말은 죽어라 반대로만 움직이고 있다. 

 

 

이번 구간에 제대로 된 바다가 펼쳐지고 있고 모래사장에는 갯벌 체험으로 사람들이 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도로에 우리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변산 낙조 공원에 정자가 있지만 출입 금지 줄이 쳐져 있어 서해랑길 안내판에서 48코스를 클리어 하고 각자가 쉴 곳을 찾는다.

 

 

 

 

 

저 해수욕장에 펜션이 있는데 입실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해수욕장에 내려서는데 밀물에 밀려난 갯벌 체험객들의 수확물이 솔찬하여 그저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님이 증명된다. 엄청스레 시간이 남은 우리도 저 체험이나 해보자는 의견은 당연스레 패스되었고 물욕 없고 술에 대한 욕심만 있는 우리는 펜션 앞의 편의점으로 스며든다. 

 

 

토박이들과 자연스레 합석이 이뤄진 자리는 흥겹고 저 에너지들이 일상생활에서도 계속될까 싶을 만큼 보통의 입담들이 아니다. 서해안을 대표하는 이 해수욕장이 국립공원에서 해제되면서 땅값만 올랐다는 한탄은 유익한 정보다. 

 

 

그저 헤헤거리다가 펜션에 입실을 하여 주군은 주특기인 잠자기 신공을 펼치고 몰빵과 두리서 해변을 거닐며 변산 노을 바다 전망대를 다녀와 김치찌개로 회포를 푸는데 뒤늦게 합석한 주군의 계란찜은 단순했던 오늘의 서해랑길에서 하나의 해프닝이 된다.
우리가 숱한 날 숱한 밤들을 함께 지내고 있음에도 맞지 않은 롯또와 같은 부부의 인연으로 만났는지 아직까지 식성 하나가 맞는 게 없다.

 

 

 

 

*** 서해랑길 도장찍기(서해랑길 52코스,서해랑길 51코스, 서해랑길 50코스) ***
-.일자 : 2025년 5월 1일

=== 서해랑길 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 18.4km) 중 일부 ===

계절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1800km의 서해랑길을 시작했을 때가 22년 11월 24일이니, 한시도 머물지 않는 계절의 변화에 자연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집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이 마무리되고, 장미의 계절인 5월의 첫날이자 근로자의 날에 서해랑길을 출발합니다. 그 사이 김하사의 차량이 바뀌였고, 주군의 야근 퇴근과 동시에 출발하여 계획하였던 정확한 시간에 픽업들이 이루어져서 출발이 좋습니다.

 


여지껏 태안을 벗어나지 못해 애를 먹었었는데 짐검다리로 남아 있던 군산까지를 깔끔하게 연결하여 이제부터는 전라도권이라서 이동 시간이 단축되었고 53코스의 새창이다리에서부터 역행으로 이어갑니다.
일상에 익숙해지면 늙습니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있어 그동안 고집하였던 코스 완주라는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자 필수코스와 완주를 병행하는 인증으로 바꾸었고 올해 내로 완주를 목표로 세웠는데 이건 바램입니다.
우리들의 퇴직과 함께 김하사까지 휴가를 부담해야 하는 부담감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김하사의 차는 편리함을 기동성과 바꾸었습니다.
만경강을 사이에 두었던 54코스를 이어가고자 마을길로 접어들었는데 차폭이 길어서 골목길에 막혀 버려 어쩔수 없이 농로를 통해 서해랑길로 접근합니다.

 


바람이 몹시 불어 보리밭에는 파도처럼 물결이 일렁이며 지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해저드 같은 수로가 만경강과의 경계를 가르며 이어지고 있고, 푸른 산하를 하얗게 까뒤집어 놓던 바람은 기어코 비를 데리고 왔습니다.

 

 


허허벌판에서 비를 피할 수는 없고 냅다 뛰었습니다. 차가운 비바람은 주군도 뛰게 만들었고, 젖어드는 옷이 레깅스가 되어서 종아리를 압박합니다.

 


진봉면의 마을정자에서 비를 피하면서 이때쯤이면 김하사가 달려올 거란 기대감을 가졌지만, 지역 편차가 있는 스콜성인 탓에 비는 곧 그쳤고 의지의 시험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시골 마을들이 그렇듯 폐가들이 많고 인적도 없는 마을을 빠져나왔고, 고사교회가 수호신을 자처했습니다. 

 

진봉방조제가 광활한 갈색의 억새밭과 푸른 물결로 출렁거리는 논을 가르며 이어져 있고, 바람과 맞짱을 뜨고 있는 팔랑개비들은 삐거덕거리며 위태롭습니다.


뭐든 입에 넣고 보는 몰빵에게 찔레가 걸려들었습니다. 봄의 새싹들이 다 식용이 가능한 게 아니라 독성이 있는 것들도 있는데, 저렇게 튼실한 걸 보면 내성이 생긴 듯합니다.

 

비가 그치며 바람은 드라이어기가 되어서 옷을 말려 주었고, 신선하게까지 느껴지고 있어 기분 좋은 힐링의 길입니다. 강물을 보여주지 않은 드넓은 갈대밭은 순천만과 비교가 안 될 만큼 광활하고, 논에서나 있을 법한 공룡알이 널려 있습니다.

 


뚝방에 자라난 풀들을 맑끔하게 정리해 놓았고, 차량 진입 금지 경고판은 그동안 마구 달리고 보는 김하사를 염두한 것만 같습니다. 새만금바람길과 함께 하고 있는 서해랑길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집니다.
푸른 새싹들이 싱그러운 길이고 군초소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강줄기가 펼쳐지고, 살결에 닿은 바람이 끈적거리더니 기어코 비를 쏟아내며 비상 대응 능력을 시험하였고, 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 여린 새싹을 가림막으로 이용합니다.

 

 


뚝방에 사람들이 포착됩니다. 연령들이 있어 보이는 단체인데 배낭이 없는 우리가 회피를 하여 인사만 건네고 지나칩니다. 언덕에서는 소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거세고, 막상 올라선 조망대는 바람길을 돌려 놓고 아늑하게 우릴 맞이합니다.
망경강은 물안개에 지워져 바다와의 경계를 지웠습니다. 

 

 

 

 

망해사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연분홍의 겹벚꽃잎이 뿌려져 있고 아래에는 망해사의 지붕이 보이는데, 비를 흩뿌리고 지나간 지금의 분위기는 한적한 고갯마루에 성황당만 같아서 내려갈 생각은 없습니다.

 



진봉산 전망대는 올라봐야 보이는 게 없기에 패스입니다. 평야가 대부분인 이곳에서 야트막하지만 이 진봉산은 산책코스로 애용되는 듯 길이 무척이나 좋고 운치도 있습니다.
숲이 검어지면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까지 합세하여 위협하니 가진 게 많은 주군은 삶의 애착에 날다람쥐처럼 내빼버리는데 속도가 우사인 볼트 급입니다. 그렇다고 비 사이를 뚫고 갈 수는 없어 진봉산을 내려설 때는 이미 다 젖어 버렸고, 음식점의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망연히 쳐다만 보다가 김하사의 차량에 올라 심포항으로 이동하여 스탬프를 찍습니다.

 

 


이젠 이 시스템도 익숙해졌고, 김하사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서 미리 예약해둔 중식집에서 해물짬뽕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순간이동을 해왔고, 낯선 공간에서 타인들과 섞여서 먹는 식사는 여행의 기분을 들게 만들었고, 뿌옇게 흐려진 창가로 보이는 강은 아련한 향수를 가져다줍니다.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는 사람과의 식사에는 만두 하나도 나눠 먹는 챙김과 정감이 있습니다.

 

 

=== 서해랑길 51코스(심포항-동진강휴게소 23.4km) 중 일부 ===
군대에서 5보 승차처럼 자동 차량 탑승을 하여서 필수 경유지를 찍기 위해 이동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민망했던 것도 이제는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 지대로 산 하나가 걸리지 않은 지평선이 펼쳐져 있고, 밀과 보리밭이 초원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이런 곳을 처음부터 마냥 걷는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도 싶습니다. 

 

 

기상대가 단합대회 날도 예측 못한다는 일기예보가 요즘은 정확하여 봄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교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주군은 일회용 우의를 몰빵은 3천 원짜리 판초우의를 챙겨 입었고, 나는 메이커 방수 옷을 입고 필수 코스 인증에 나섭니다.

 

 

푸르른 초원이 펼쳐집니다. 고창의 청보리밭이 관광지가 되고 있는 요즘에서 그저 오는 풍광은 호사스럽지만, 드넓은 들판에 일직선으로 된 농업로는 공사 중이라서 걷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청보리밭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고 이런 싱그러움이 넘실거리고 있는 들판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길이지만, 너무 단순함은 정신을 멍하게 만듭니다.

 

 

지평선에 다릿발이 걸리고 마을에 교회의 첨탑이 솟아 있는 지극히도 농촌스러운 풍경입니다. 수로에는 안전 확보와 보행자 보호를 위해서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이는 통행자 하나가 없는 곳에다 핸드레일을 설치하는 회사의 시스템과도 유사합니다.

 


푸른색 도화지와도 같은 들녘에서 걷고 있는 건 오로지 우리들뿐이지만 긴 세월을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비를 맞으면서까지 걷고 있는 게 미친 짓 같지만 토닥거리는 비는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가 되고 우리들만의 색다른 경험입니다.

 

 

멀리 거리를 두고 서로 각자가 걷고 있지만 말보다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해창마을버스정류장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고 동진강의 지류인 원평천의 해창관문을 지나는데 물가에서 새들의 노림이 포착됩니다. 배수관문이 닫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잉어들이 헐떡이고 있고 새는 덩치의 위압감에 난 내려갈 방법이 없어 주변만 배회하다가 포기를 하고 마침 마중을 나온 김하사에게 인계를 하지만 어느 쪽이나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김하사는 농로로 우리는 뚝방길을 택해 평생선을 그으며 51코스 종점을 향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평선이 보이지 않은 김제평야 입니다. 그동안에 간척지 등을 지나 오면서도 이런 광활한 농토는 지겨움의 대상이었는데 푸르른 들녘이 기분을 상쾌하게 합니다.

 

 마을정자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하사는 비에 젖은 우리가 측은하게 보였던지 승차를 권하나 우린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는 어디를 향해 가느냐가 중요하고 아직 필수 경유지가 남아 있습니다.

 

 

황해로 흘러드는 동진강이 곁에 붙고 배수관문이 카페처럼 우뚝 서 있는데, 알콩쌀콩교류센터는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 소리를 따라서 동진대교가 흐릿한 강을 가르고 있고 도로가에는 서해랑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인증을 남겼으나 아쉽게도 우리들의 주유소인 휴게소가 길 건너편에 있어 대기하고 있던 김하사의 차에 올라 김제와 부안을 잇는 동진대교를 넘어 50코스의 중간지점인 고마제까지 순간이동을 합니다.

 


=== 서해랑길 50코스(동진강휴게소-부안군청 10.8km) 중 일부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사적지로 지정되었다는데 산이 없는 평야에 있어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고 필수 경유 지점을 지나치고 있어 차를 급하게 세워서 고마저수로 들어갑니다. 

 

 

저수지가 제법 넓습니다.

 

 

 

 

수면에 빗방울이 토닥거리고 있는 호수를 빠져나와 작은 고갯마루를 넘어 도로를 따라서 신흥마을을 접하는데 저 백로와 왜가리들의 먹이사슬이 어떻게 되는지 나뭇가지마다에 집을 지어 놓아서 나무들이 고사되고 있습니다.

 

 

 


 마을을 비켜나 봉황교차로를 삥 돌아서 납골묘를 지나 도심지를 향해 들어갑니다.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한옥의 부안 선은재 카페에는 둥그런 달이 떠 있고 닭구이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어 저곳에서 몸을 녹이는 불멍에 한잔술로 여행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전원주택지 같은 마을길을 지나 신석정고택을 앞에 둔 시공원의 정자에서 촉촉해진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합니다.

 

 

날씨가 추워 쉬는 것도 쉽지가 않아 그냥 대로를 따라서 이동합니다. 지역축제를 알리는 깃발들이 감성을 건들지만 도보꾼이자 이방인인 우린 할 일이 있습니다.

 

 

군청의 건물이 꽤나 커서 두루누비의 앱을 따라서 서해랑길 안내도에서 종지부를 찍습니다.

 

 

역시나 김하사는 적시적소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군청 앞의 식당에서 삼겹살을 안주로 오늘의 완주 축하와 함께 석별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에는 따뜻한 불판에 구워 먹는 돼지고기가 최고지 싶습니다. 위로와 관심을 전하는 말로 밥 먹자란 것만 있을까요? 그나마 저녁을 함께 먹고는 김하사와 헤어져서 모텔에 아지트부터 구축합니다. 

 

 

우중충한 날씨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서 선술집에서 취침주를 하고 이른 잠자리에 듭니다.
나이는 세월을 비켜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 우리들의 일탈도 일상도 점점 단순해져 갑니다.

 

 

 

*** 사자산 & 일림산 철쭉 산행 ***

 

-.일자 : 2025년 4월 29일

-.코스 : 용추계곡-제암산자연휴양림-사자산-골치-일림산-용추계곡

 

전국에 산불이 도깨비불처럼 날뛰면서 지인의 본가를 다 태워버려 안타까웠는데, 또 대구 함지산에 대형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지면서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라니 산행을 나서는 게 무척 조심스럽다. 

마음은 다 같은지라 산악회들도 잠잠하고, 홀로 조용히 다녀오고자 일림산 입구에 들어서는데 그래도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안심이 되었으나 용추 주차장에는 차량 하나가 없어 불안스럽긴 마찬가지다.

 

 

용추 주차장에서 농로를 따라서 제암산 휴양림으로 이동한다. 벌써 논에는 벼가 심어져 있고 생뚱맞은 나의 등장이 주민들에게 걸려 들어서 강제 브리핑을 받고 이동을 하는데 저분들이 나만큼이나 주변의 산들에 대해서 알까 싶다

 

 

제암산 휴양림 입장료가 1000원이고 지역 할인으로 500원을 지불하는데 아가씨가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놀라워하며 추켜세워준다. 이동 거리가 3km밖에 안 되었는데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출발이다.

 

 

오늘은 제암산은 버리기로 했고 마음의 흩어짐인지 계곡길을 선택하지 않고 지겨움의 대상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무장애 데크로 갈아타고서 곰재에 닿는다. 

 

 

요즘 겉으로 봐선 나이 구분이 안 가는데 남녀란 시너지 때문인지 활기로 넘쳐나는 어르신들이 지나가고 철쭉 군락지가 시작된다. 기대치만큼은 아니지만 잘 왔고 휴대폰 인증을 하려는데 전화다. 내 차의 꽁무니를 쫓다가 초암산으로 틀었다는데 전화질이나 하지 말것이지 왜 내가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하는 레이더망을 가동시키는 거야?

 

 

참 좋다. 내 작은 발걸음에서도 이런 풍광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 4월의 초록 초록한 푸르름은 생명의 환희이다. 곰재봉에는 혼성팀이 벌나비가 되어 철쭉 군락지를 넘나들며 숨바꼭질로 서로 간을 어필하고 있는데 이 유치한 걸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는 내가 방해꾼이 되어 버렸다. 내가 꽃터널 속으로 숨어들어서 곰재산에 올라선다.

 

 

올망졸망한 꽃망울이 앙증스럽기만 하고 전국 제일의 철쭉 평원이라는 것에 토를 달지 않기로 한다. 봄바람 솔솔 불어오고 조막만한 새싹들이 몸을 뒤척이는 생명력 넘실거리는 등로다.

 

 

 

사자산 사면이 해풍의 바람막이가 되어 땀이 솟고 오름길이 고되다. 오늘의 조망은 연분홍으로 채색된 철쭉 군락지로 한정짓고 정상석과 인증을 남긴다.

 

 

비박을 했던지 자기 키만큼이나 큰 배낭을 짊어진 동호인들이 거친 내림길에서 삶의 무게에 허덕거리고 있어 간단하게 추월을하여 자연휴양림과 연결되는 고산이재에 내려선다. 

 

 

이제부터는 보성과 경계를 가르는 완충지대로 푸르른 숲속의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골치재로 향한다. 

 

 

현란한 색이 섞이지 않는 푸른 숲은 안정감을 준다, 골치재에서부터 본격적인 일림산 산행이 시작되기에 사람들도 많아졌고 오프로드 자전거가 휙휙 지나간다. 오르막길에 쉬운 길의 안내문은 유혹이고 세상사 쉬운 길은 없어 곧바로 골치산 작은 봉에 올라선다. 쉼터는 다른 팀에게 양보하고 나무 아래에서 동반자가 급조한 김밥을 먹는데 왠지 쓸쓸하긴 하다. 

 

 

와우~~ 철쭉이다. 만개를 앞둔 싱싱한 꽃잎들이 너무 너무 예쁘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철쭉 평원을 올라 정상에 선다. 

 

 

 

바다가 보이지 않음은 이곳을 위한 배경일 뿐이고 많은 사람들은 들뜸이 축제의 풍선 소품처럼 여기저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정상에다 술상을 차린 것은 좀 너무했구만.... 한쪽 구석지에서 철쭉 평원과 교감을 시도하나 머시마의 감성은 금방 메말라 버렸고 꽃밭에서 다시금 수혈한다.

 

 

수풀이 제거되고 철쭉나무만 남아 있는 게 분재만 같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철쭉평원과는 다음을 기약하고 용추 계곡에서 나오니 봄의 축제를 만끽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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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봄나들이 ****
일자: 2025년 4월 24일~25일
루트: 광양백운산수련원-노랭이봉-순천 선암사
 
산행과 걷기로 단순화된 나의 일상에 수영이 추가 되면서 산행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관심에서도 밀려나 있지만 일상 운동으로 가야산을 다녀온다.
진달래가 꽃잎을 떨군 자리에는 애도를 하듯 누런 송홧가루가 뿌려졌고, 이를 모른 척하며 산하를 물들여 가고 있는 푸릇푸릇한 새싹들 속에서 벌레들이 거미줄을 타고 있다.

 


연분홍의 등나무꽃은 나무들을 칭칭 감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하얀 벚꽃이 지고 난 거리에는 이팝나무꽃들이 눈처럼 피어난 이 봄날에 나들이란 명목으로 수련관을 찾는다.
항상 인적 하나 없는 진입로는 미지의 긴장감을, 예쁜 조경은 휴양지로의 설렘과 안정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긴 지붕 개량 공사와 함께 진행되었던 백운산 수련원의 바비큐장이 오픈했지만, 퇴임을 한 내가 이를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기업의 시설답게 에어컨과 환기시설까지 갖춘 시설이 참 깔끔하다.
무엇보다도 즐길거리가 단순하기만 한 휴양시설에서 그나마 주당들은 숨통이 트였다.
고기를 굽고 마시다 보니 식당에서 석식을 마친 사람들이 새로운 바비큐장의 구경 나섰고, 인사를 나누는 지인들과 술잔을 나누고 같은 공장의 동료와도 자연스럽게 합류된다.

 

 

 


난 술자리에서 한 번 엉덩이를 붙이면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는 고질병이 있다.
이건 분명 치명적인 결함이다. 호의를 성의로 받아들여 바비큐장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여 부부간의 오붓한 시간에 민폐를 끼쳤고, 룸으로 이동하여 옛 산행 동지와 합류하여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한다.
남해에서 펜션을 경영하는 친구는 새롭게 둥지를 이룬 이웃들과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었고, 밖으로 장소를 옮긴 우리는 바닷가도 아닌데도 기타의 연주에 맞춰 모닥불 피워놓고를 외치며 산중의 적막을 깨뜨리다가 경고에 각자 룸으로 흩어진다.
이게 휴양인지 먹고 놀자의 여행인지 모르지만 참 기분 좋은 밤이고, 재 채용으로 이런저런 고민과 갈등도 많은 요즘이지만 회사 생활의 연장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그동안에 수면장애는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영향 때문이었을까?
알코올이 약이 되었는지 아님 맑은 자연환경 속에서의 심신 안정 때문이었는지 한 번도 깨어나지 않고 아침을 맞이했고, 머리도 맑다.
호텔과는 달리 이곳에서의 조식 시간은 8시로 늦어 노랭이봉을 오르고자 휴양소를 나선다.
발걸음은 삐거덕거려도 산속의 상큼한 공기와 물소리에 몸이 정화되어 가고 있다.

 


햇살이 스며들지 않은 숲에 초록초록한 나뭇잎들로 환해졌고, 거친 길을 올라 노랭이봉 삼거리에 올라선다.
아침의 운해가 노랭이봉을 덧칠하여 더 몽환적으로 만들어 놓았고, 몽울진 철쭉은 꼬마전구처럼 반짝거리는 싱그러운 산정이다.

 


해는 떠올라 옅은 구름층을 뚫고서 세상을 밝혀 주고, 국사봉으로 흐르는 철쭉 능선은 산불 방지로 금지시켜 놓았는데 너무 행정편의적인 통제다.

 


혈기왕성할 때 세워 놓았던 노랭이봉의 정상석은 의연하고, 내림길은 갈수록 정비가 되어 가고 있어 봄철 미끄럼도 없이 안전하게 수련관에 안착한다.

 

 

 


백운산 수련관은 맛집이다.
푸짐하게 음식을 담아서 테라스에 자리를 잡아 경치를 눈요기로 추가 시켜 놓았는데 오늘따라 춥다.
평소 만류하던 아내도 오늘은 순순히 따라 주어서 괜히 폼 잡다가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추위를 달래 보지만 몸은 방어 시스템을 무시해 버린 독단적인 행동에 면역을 포기해 버려서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수련원과 수련원 임도와는 자매품이다.
퇴실을 하여서 임도를 걸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이 학창 시절에 봄 소풍 나온 느낌이다.
초록초록한 자연의 바다 속을 유영하는 모든 사람은 편안해 보이고 재잘거리는 새처럼 서로 간 소통들을 하는 산책길이다.
이런 푸르른 숲과 깨끗한 공기가 있는 자연 속에서의 휴식은 심적인 안정을 주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최적이다.

 

 

 


요즘 겹벚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어 부산의 중앙공원과 사천 청룡사, 서산 개심사의 명소가 SNS에 올라오고 있는데 가까운 선암사가 겹벚꽃으로 유명한 줄은 이번에야 알았다.
선암사의 길목인 승주의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김치찌개 속의 돼지고기에는 숟가락이 안 가고, 반찬은 한 젓가락이면 없고, 특히나 술은 5천 원이라서 정이 안 가 다음엔 패스다.

 


평일인데도 겹벚꽃을 보러들 왔는지 주차장은 만차이고 선암사의 진입로에 사람들이 꽤나 많다.

 


이곳을 다녀온 후 왜 사찰에 겹벚꽃이 많은지를 GPT에게 물어보았다.
겹벚꽃이 사찰에 많은 이유는 불교의 무상함을 상징하고, 경관을 아름답게 하며, 꽃이 오래 피고, 전통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용적인 이유도 있습니다라는 대답이다.
주변에는 흔한 진달래꽃도 연산홍도 없어 혹시나 했는데 선암사의 겹벚꽃은 화려하게 피어나 사찰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겹벚꽃은 일반 벚꽃보다 꽃잎이 많고 오래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꽃이 지는 시기가 일반 벚꽃보다 늦어, 봄철 사찰을 더 오래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다는 설명답게 탐스럽게 피어나 사람들을 환호 짓게 한다.
어느 여인의 배려로 모처럼 둘의 사진도 찍고 벚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망중한도 한다.

 

 


파란 하늘과 푸른 산하에 연분홍 꽃잎이 살랑거리는 사찰은 경건함 속에서의 아름다운 경관이다.

 


주 진입로에서 비켜나 있는 전통 찻집에는 찾아드는 이 하나 없고 목 빼고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할미꽃은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얘져 버렸다.
공짜 시음이란 차 대신 제기차기 체험 한 번 하고 선암사를 내려와 스벅에서 쓴 커피로 여행을 마무리를 하는데 어머니로부터의 호출이다.
상추며 김치며 먹거리들을 한 보따리 차에 실어서 집에 안착하는데 아직도 햇살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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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진달래 산행 **

-.일자 : 2025년 4월 5일

-.코스 :무기마을-작대산-양미재-상봉(농바위)-달천고개-천주산-만남의광장-달천주차장(13.3km/6시간 8분)


전국적인 산불로 인해 마음은 편치 않지만 벚꽃이 탐스럽게 피어났으며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지라 여기저기 산행지를 알아보다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천주산을 예약했는데 하필이면 비 소식이 있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나 오지 벚꽃만 다 질 것 같습니다.

 


3개의 산행코스 중에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긴 코스이고 또 A코스인 함안의 무기마을에서 모두가 내려 버립니다.
식당에서 계산하는 것도 아닌데도 친구의 신발끈 묶는 시간이 길어 꼴찌입니다.

 


마을길을 벗어나자 산행안내도가 있고 일렬로 길게 줄을 지으며 등반이 시작되고 차가운 봄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간간히 보이는 진달래꽃은 이미 떨어졌고 메달려 있는 것도 햇살이 없으니 볼품이 없지만 아직은 천주산 진달래군락지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용띠 3명이 자연스레 뭉쳐졌고 세상살이의 얘기 속에서 삶을 통달한 것 마냥 이렇게 산에 다닐 수 있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오솔길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등산로가 무척이나 좋고 산불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된 소나무도 돋보입니다.

 


안내도도 잘 되어 있습니다. 줄기차게 올라가던 등산로에서 작은 정상은 인증 장소가 되고 휴식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속도가 급격히 저하되어 있어 추월을 시도하다가 놀자에게 걸려서 이젠 정말로 꼼짝없이 후미에 묶여 버렸습니다. 산행이야 후에 만회할 수가 있고 이런 우정은 마음을 풍족하게 해줍니다.

 


이곳은 봉우리마다에 이름을 챙겼고 듬직한 표지석도 있어 포토타임에 간격을 줄일 수는 있으나 우리라고 증명을 안 날 길 수가 없으니 그게 그겁니다.
산불 조심 재난 문자가 오고 있는데 나무를 뒤흔드는 바람은 꽃잎을 떨어뜨릴 냉기를 품고 있습니다. 비 냄새가 묻어납니다.
천천히 걷는다고 몸에 무리가 없는 게 아니라서 허리의 통증에 나이가 들었음이 실감하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우회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봉을 기어코 올라가 인증하는 건 무슨 오기인지?

 


수직의 길이 평탄화되어서 정자가 있는 적대산에 오릅니다.
광장에서 보물이라도 찾고 있는 것인지 다들 바닥을 기고 있는데 할미꽃을 담기 위해 꼬부랑 노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산 아래는 골프장이 만남의 광장에는 벚꽃이 피어 하얀 종잇장을 펼쳐 놓은 것만 같고 붉게 물들어 있어야 할 천주산 능선은 갈색입니다.
봄에는 모든 것들이 꽃입니다.

 


천주산까지 그냥 곱게 흘러가면 좋으련만 양목이고개까지 하염없이 내려갑니다.
오늘은 그나마 흐리고 바람이라도 불어주어 다행이지 햇볕 쨍쨍한 마른날이라면 다리에 힘 빠지게 생겼습니다.이 코스를 회피하려 했던 이유입니다.

 


겨유 올려 놓았던 고도를 다 반납하고 나서야 산 아래로 고속도로가 뚫린 양미재가 함안과 창원을 가릅니다.

 


산행길이 인생길입니다.
묘지에 동백꽃 붉고 키다리나무는 하얀 목련꽃을 주렁주렁 메달아 봄을 오지게도 즐기는데 우린 오르락내리락에 등줄기에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앞서간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르막을 앞두고서 배를 불려 놓으면 나만 고생이고 그동안에 술을 절제하려고 식은땀 흘렸는데 건네는 막걸리 한 잔에 무너집니다.
나도 답례로 사람 관계를 원활하게 해주고, 분위기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기분 짱 좋게 만드는 마법의 하얀 물을 꺼내 시간마저 잊었습니다.

 


지속적인 오름길은 잡념이 없지만 시간도 정지한 듯 풍경속에 같혀 버린게 문제여도 거북이 걸음으로 상봉의 농바위에 올려 놓습니다.
천주산 능선의 진달래군락지가 조망되어 마음은 한층 가벼워졌는데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달천고개의 장사치는 장사를 접었고 긴 계단이 하늘길처럼 솟아 있습니다. 하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연 씨 때문인지 물어보지도 않는 정상의 생중계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진달래꽃은 아직 앙다문 채라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활짝 꽃잎을 펼칠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 덕에 정상석은 우리의 몫이 되어 보듬고 안고 막 찍어댑니다.

 


이젠 오르막은 끝, 관광코스와 하산만 남았습니다.
어쩌다 진달래군락지의 관람 데크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능선에서 쳐다보지만 시원찮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폭삭거리는 먼지를 잡아주는 비는 벽에 흙을 바르듯 바지에 흙을 붙여 놓아 걸음걸이는 더 거북해졌어도 이 또한 게의치 않습니다.
순천에서 비 핑계 대고 낮술을 마시고 있던 친구들이 소나기가 온다고 하여 뻥인 줄 알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배낭커버를 씌우고 능선을 벗어납니다.

 


아뿔싸...
계단 나무의 미끄럼을 피하려다가 흙에 미끄러져 공중부양하며 엉덩이 썰매까지 탑니다.
세상사 조심해도 안 될 일도 있습니다. 부끄러움에 큰 것만 대충 떨어내고 샘터에서 닦아 냅니다.

 


총무님을 만나 우리의 최후 보루가 생겼습니다.
주적거리고 내리고 있는 비를 피할 수도 없는 임도를 따라서 만남의 광장까지는 꽤나 긴 거리인데 오고가는 농담이 지겨움을 잊게 합니다.

 


산불로 진달래축제가 취소된 만남의 광장은 소방대 훈련으로 대체되어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정작 차량을 통제시켜 놓아 버스를 찾아 삼만리입니다.
총무님이 없었더라면 길거리의 미아가 될 황당한 도로가에 주차가 되어 있는데 또 이곳을 어떻게들 잘도 찾아와 있어 우리가 꼴찌입니다.
우리에게 집중된 시선이 부담스럽습니다. 타박보다는 새양쥐꼴을 보고 따스한 커피 한 잔을 건네는 정이 있는 산악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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