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대지를 토닥이면서 새싹들을 우고 있지만 마지못한 개나리만이 샛노랗게 꽃을 피워 냈다. 계절이 어쩐다 해도 웅덩이 속에는 개구리 알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고 벚나무는 꽃눈이 탱탱해져 가고 있으니 게기고 있던 영취산의 진달래도 이때쯤에는 어쩔 수 없이 만개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 우산 하나 챙겨 집을 나선다. 축제가 끝난 돌고개의 주차장에는 상인들이 자리를 잡았고 올려다 본 산비탈은 제법 분홍빛이 비친다.
하늘을 가득 덮은 먹구름의 위협성 때문만이 아니라 저 여린 꽃들이 버텨내 주질 못할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급하다.
기대치가 너무 컸나 보다. 꽃은 듬성듬성 피어나 있고 비 때문에 꽃잎을 활짝 펼치지 못해 화려함이 없다.
건너다 본 가마능선의 진달래군락지도 갈색을 탈피하지 못했고 새어 나온 연분홍 빛이 영 어중간하다. 햇살의 조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급변하고 있는 기온의 틈새에서 기를 못 편 탓이다.
매년 찾아 왔었기에 지금쯤에는 살갑게 대해 줄 만도 하련만 이렇게 밀당 만을 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내가 지칠 것만 같다.
듬성 듬성 피어나 있는 진달래꽃과 스리살짝 아이콘택으로 유대감을 쌓으며 진달래터널로 들어 간다. 역시나 진달래는 꽃망울도 내밀지 않았고 여전히 쌩 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난 너에 대한 기대치를 놓을 수가 없으니 어쩌니.
개화 상태를 확인 했으니 구름에 가려 있는 정상을 놓아주고는 가마봉의 진달래군락지로 내려간다. 집착 이라기 보단 관심 에서다.
군락으로 피어 나 있는 꽃들 마저도 화려한 자태도 요염함 도 없이 쇼윈도 안의 마네킹만 같아 생동감을 잃었다. 철쭉 터널 안은 꽃이 채 피지도 않았는데도 낙화한 꽃잎이 활주로 유도등만 같다.
당산나무처럼 우뚝한 오동나무쉼터가 개화의 경계가 된다. 꽃은 피어나 났으되 봄을 시기하는 날씨가 조력자가 되어 올해 진달래꽃은 봄의 전령사 역할로만 만족해야겠다.
임도에는 푸르른 녹음이 짙어가고 있고 벚나무에 하얗게 꽃을 피웠던 게 언제 였었던가 싶다.
*** 수락산-불암산 연계산행 *** -.일자 : 2024년 3월 10일 -.코스 : 수락산역-백운계곡-깔딱고개-독수리바위-철모바위-수락산-도솔봉-덕룡고개-불암산-볼암산성-화랑대역( 15.6km / 6시간 14분)
와~ 서울 진짜 역동적이네... 해도 뜨기 전인데도 식당 안이 떠들썩한 열기로 가득 차 있고 테이블마다에 술병들이 위태롭다. 내 익히 분위기가 이럴 줄 알고서 부인을 대동하였지만 역쉬 나는 시골쥐임을 직시하고서 한쪽 테이블에서 순대국밥 만을 먹고는 수락산으로 향한다.
수락산으로 이어진 수많은 루트들을 다 탐익 할 수는 없어도 그 동안의 단편적인 루트에서 벗어나 일신 우일신 하기 위해 백운동코스를 택했다. 이곳은 서울둘레길을 완주 할 때 스쳐 지나 갔고 얼마 전 백운동계곡을 오르다가 비가 와서 중도에서 내려왔었던 곳이였기에 이곳이 도심지의 어디 메쯤에서 연결 되는지가 궁금해서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 같은 답답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썰렁하고 싸늘한 공기가 휴일의 평온함을 지키려는 안간힘처럼 느껴지고 있는 도로를 따르자 수락산 이정표가 있다.
반갑다 백운동표지석아. 도로 갓길에 나무테크가 설치 되어 있고 상가와 운동시설 화장실 등으로 근린공원과도 같다.
도로에 붙어 있는 시산제 알림 표지가 공원으로 꺾어 가고 계곡을 따라서는 수락산의 이정표가 길을 수시로 안내 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길을 되짚어 가면서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것이 썩 괜찮다. 빗질을 하고 있는 배드민트장도 타프를 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계곡도 반갑다.
여름을 연상할 만큼 계곡의 물은 시원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고 내가 흘리고 있는 땀은 목수건을 적신다.
넓적한 공터에 쉼터와 간이화장실을 지나자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삼거리의 갈림길이다. 여지 것 계곡 트레킹이더니 이제 부터가 진짜루 오름길이 시작되려고 하는지 깔딱고개 이정표가 긴장을 하게 만든다.
발에 잔뜩 힘을 실은 다. 조용하던 산속이 아줌마들 목소리로 떠들썩 하다. 이른 시간에 단체 산행을 온 줄 알았는데 동네 지인들이 반상회 하듯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데 그녀들만의 화통 한 수다가 나의 숨을 깔딱거리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떨쳐내기 위해 깔딱고개을 단숨에 올라선다.
이곳만 올라서면 끝난 줄 알았는데 암릉과 난간에 걸쳐진 밧줄이 위협적이다. 2천원에 구입한 코팅장갑이 정말 요긴하다. 다리가 아닌 팔의 힘으로 버텨 내면서 오른다. 요즘 젓가락질을 하다가 포크 질을 하면은 팔에 근육통이 생기는지라 낼은 알아 눕게 생겼지만 어쨌든가 지금은 살아서 내려가야만 한다.
조망이 트이고 도봉산과 북한산이 미모 자랑질에 나섰다. 저 두 곳도 멀리서 쳐다 볼 때만 아름답지 꼴값을 하기에 교감을 하기까지는 만만치가 않다.
표석 같은 바위가 솟아 있는데 나중에야 이게 독수리 바위인 줄 알았다.
한참을 기어 오른 것 같아서 올려다 보면 정상은 좌측에 비켜나 있다. 바위들이 참 듬직 듬직하다.
능선의 철모바위를 지나며 흙길이 되고 계단을 올라 태극기가 펄럭이는 수락산정상에 선다. 쬐그마한 것이 참 야무지다. 정상인증을 하고 한 켠으로 비켜나 산멍을 한다. 산정은 금방 비워지고 채워지는데 이렇게 자력으로 국력을 키워가는 국민에게는 신발구입도 해야 하니 세금감면 혜택이라도 줘야 되지 않을까?
계단을 따라 내려서는데 뭔가가 아쉽다. 되돌아 올라가 막걸리 한잔으로 정상주를 하는데 술집도 아니고 주인장과의 30여분을 대화 하다 보니 술이 깨 3천원이 휘발되어 버렸다.
불암산을 가기 위해 도솔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코끼리바위인지 뭔지 모를 기암들이 압도한다.
치마바위를 지나면서 까탈을 부리던 산세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수락산역갈림길을 지나며 도솔봉을 살짜기 비켜난다. 산 하나가 암반과 흙길, 깔딱고개와 평길로 완전하게 상반된 길이 된다.
경직된 근육들을 스트레칭 하기에는 참 좋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수락산과 불암산의 접경지역이고 군부대가 있어서 인지 사람들도 없어 그지 없이 한적인 길을 따라 덕룡고개직전에 이르니 산악회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나 또한 무사 산행을 위해서 주관과 참관을 수 차례를 했었지만 지금의 이 시기는 아니었다. 오름길을 대비해 딱 일 잔의 음복주를 얻어 마시고 남양주를 잇는 덕룡고개에 내려선다.
차 소리를 떨쳐 내기도 전에 계단이다. 생활권까지 다 내려와 버렸으니 당연스레 올라야만 하고 지금은 사지를 안 써도 되니 이까이꺼 땅만 보면서 발만 떼면 된다. 더구나 이곳은 매일 운동하고 있는 울 동네 산과도 고도가 비스므리 하다.
날씨가 봄날이 아니랄까 봐 변덕이 죽 끓듯 하여 덥다. 오후의 정점에 이르러서 인지 인적도 없이 나 홀로 묵언 수행을 하면서 다람쥐쉼터에 올라 바위에 정좌하고 서울시내를 관망한다. 도심지를 감싸고 있는 산들이 멋찌다. 시간만 있으면 모두다 답사를 하고 푸나 시간관계상 인지도가 있는 몇 곳만 찾아 주기로 한다. 이곳에서는 컵라면에 김밥 한 줄도 호사다.
산정이 산꾼들에게 점령당해 버렸다. 우리나라 해역은 낚시꾼들이 지키고 육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은신처까지 구축하면서까지 산꾼들이 수호하고 있다. 퇴역인 나는 정상쪽에 얼굴만 삐죽이 내밀고 곧바로 하산을 한다.
계단도 아찔한데 이 허연 암반을 기어 올랐을 때가 아득하게만 느껴져 현기증이 난다. 여길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세상은 요지경이다. 난 군 시절 영내에서 모래주머니 차고 맨발로 구보는 했어도 그런 게 지금에 와서 트렌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암사에서 불암공원으로 깔딱고개를 내어 주고 불암산성으로 오른다. 쬐그마한 고도에서도 피로가 느껴진다. 산성은 복원 의지가 없는지 여전히 공터만 있어 이정표에서 상계역까지의 거리만을 확인한다. 빨리 내려 오면 술만 더 마신다고 천천히 내려오라는 부인의 엄명 때문이다.
거친 길을 내려선다. 여기는 조금만 경사가 있으면 깔딱고개라고 하는데 노원고개에서 길은 산보 길이 된다. 천천히를 주문처럼 옹알거리지만 공원의 산책길보다 더 아늑하니 거리만 좁혀져 가고 있다.
*** 용마산 / 아차산 산행 *** -.일자 : 2024년 3월 11일 -.코스 : 양원역-망우역사문화공원-용마산-아차산-긴고랑입구-양원역(10.6 km / 3시간 10분)
귀향을 위해 짧은 코스를 택하다 보니 용마산과 아차산이 간택 되었으나 또 너무 짧아서 양원역에서 출발하는 서울둘레길로 한다. 조식을 간단하게 우동으로 한다. 역세권의 특권이다. 전철에 올라 6분만에 내린다, 외곽지에 사는 혜택이다. 이곳은 직장인 대신 학생들이 역사를 꽉 채워 생기발랄하나 미완성의 자가발전에는 눈살도 찌쁘러진다. 어쨌든 내가 서울둘레길로 이곳을 지날 때는 전부 개발지였었지만 이전 산악회를 따라 여길 산행 했을 때는 이곳이 어디였는지도 헷갈렸었다. 이젠 나의 기억에서는 건물들을 지우개로 지우고 둘레길만을 남겨 놓았고 둘레길 안내도 너무 잘되어 있기에 시간만 조율하면 된다.
싸늘한 아침 바람에 세안을 하고 맑아진 정신으로 출발을 한다.
중량숲켐프장의 쉼터인 이곳에서 서로간 인사를 했었던 첫만남의 쑥스럼이 볼을 따스하게 한다.
공원 안의 과수원이 참 인상적인 곳이다.
산보길을 따라 도로에 내려서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 가며 차 소리를 떨쳐 낸다. 오늘은 산행보다는 걸음수 채우는 것에 만족해야 될 것 같다. 도로를 따라 태극기가 걸려 있는 역사공원으로 들어간다.
공동묘지의 혐오감에 망우리공원으로 다시 망우리역사공원으로 개정되어 신규 매장이 없어 공원화가 진행 되어가고 있는 곳이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유명인사들이 묻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례가 없다는데 정년이 된 지금까지도 산업역군으로써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것도 나라를 지켜 내고 있는 원동력이다.
슬며시 282m의 망우산에 미련이 생기나 그냥 부인과 걸었었던 추억 밟기를 하기로 한다. 도로가로 시비와 인사들의 묘역 이정표들이 수시로 나오고 있어 역사 의식의 새싹들이 움을 트고 있는데 보행로 테크 공사가 사색을 앗아 간다.
중량의 전망대에서 북한산이 펼쳐지고 꼬물꼬물 밀집해 있는 도심지가 깨어나고 있다.
소음 때문에 산으로 올라 가려고 해도 샛길이 묘역에서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그냥 도로만을 따라서 망우역사공원을 떨쳐내고 용마산구역의 깔딱고개에 이른다. 깔딱고개가 지리산 삼도봉을 올라 가는 550계단과 숫자가 같다. 이깟지꺼 꾹 참고 힘 한번만 쓰면 된다. 아직은 찬바람이 데이터센터의 액침 냉각을 하듯 과열을 식혀 주고 있어 무념의 상태에서 바라 본 한강변의 조망에 힘듦이 반감된다.
보루가 공장에서 쓰는 보류로 느껴지니 직업은 어쩔수가 없나 보다. 산이 도시에 근접해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 있고 공원화가 되어 배낭을 맨 것 자체가 쑥스럽다.
노익장들을 과시하고 있는 운동터를 지나 용마산에 올라 선다.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지만 오늘은 화질이 선명하지 못하다. 참 멋찐 뷰다. 상경 시 야경을 담고 싶어 랜턴도 챙겨 왔는데 술 마시는 시간도 부족해서 실행하지 못했다. 서울의 미니어처를 사진으로 담고 아차산으로 향한다.
보루가 안내하고 있고 정작 아차산 이정표가 별로 없어 이거 참 헷갈리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도 제각기의 목적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흐름에 따를 수도 없고 옛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아차산을 찾아 간다. 인내와 지구력 그리고 강인함의 상징인 소나무가 아차산을 보호하고 있고 바위에 자라난 소나무들이 산길을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산정 같지 않은 산책로를 따라 보루로 이동하여 솟아 있는 도심지에 롯데타워와 한강변을 조망한다. 분지도 아닌 그냥 등로상에 아차산이 있는데 왠만 하면 정상 인증을 하게 큼직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해맞이 공원에서 북한산과의 이별을 고한다.
고려정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지 잠시 고민을 하게 된다. 서울둘레길을 따라서 아차산어울림공원으로 하산하여 광나루역으로 아님 아차산역 방향으로 하산하여 원조할아버지손두부집에서 막걸리로 아쉬움을 달랠까? 그냥 발걸음이 고려정 방향으로 들어 서고 있다.
많은 갈림길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것처럼 순간의 결정에서 아차산역을 버리고 데크의 둘레길을 따라서 용마산방향으로 간다.
용마산역까지 조금 더 걸어볼 요량이었는데 긴고랑에서 둘레길이 끝나고 용마산으로 올라 간다. 어쩐다... 다음을 남겨 둬야 하지 않을까? 대기하고 있는 마을버스를 보내고 걸어서 종곡역까지 간다. 근 2km의 거리지만 도시 산보도 썩 괜찮다.
-.코스 : 돌고개-골명재갈림길-가마봉-영취산진래봉-봉우재-가마봉들머리-가마봉-골명재-돌고개(7.6km / 2시간 53분)
산비탈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었던 매화꽃은 바람에 꽃잎이 휘날리고 가로수 벚나무는 꽃망울이 곧 터질 듯이 탱탱해져 있어 바쁜 계절이 왔다. 산에 푸른빛이 감돌고 생명이 없을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 연분홍꽃잎이 불을 밝히듯 퍼지기 시작한 이때쯤엔 영취산의 진달래가 궁금해 진다. 어차피 일상운동을 하고 있는 가야산이나 이순신대교만 건너면 되는 영취산이나 별다른 게 없으니 진달래꽃의 개화 상태나 점검해 보고자 함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비옷 하나만 챙겨서 돌고개주차장에 도착하니 23일부터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주차된 차들이 제법 있다. 매년 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져서 예년 보다 이른 축제를 알리고 있는데 우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할 수 밖에는 없다.
시멘트 임도가 꽃나들이에 몰랑해져 있던 감성을 등산의 본질로 돌려 놓는다.
계단 또 계단이 지속되는 오름길에서 에고 소리를 토해 낼 때야 골명재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와 합쳐지면서 외고집을 내려 놓는다. 거칠어진 숨을 토해내며 내려다 본 골명재는 벚꽃으로 하얗게 덮여 있고 광앙만의 푸른 바다와 산업군들이 역동적으로 다가 온다. 요즘은 환경규제가 엄격해져서 여천공단에서 풍기던 역한 냄새가 없으니 이 또한 볼거리가 된다.
역시나 마음의 성급함을 깨닫는다. 붉어 야 할 진달래군락지는 아직은 동면 중인 듯 갈색이고 간간히 꽃잎을 내밀어 놓고는 호객만을 하고 있다.
가마봉 능선은 푸른빛 조차 돌지 않고 있어 산행에 집중하기로 한다. 꽃 몽우리도 맺혀 있지 않는 진달래터널은 꽃이 화사하게 피어 난들 눈높이 위에 있어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는 곳이다.
가마봉까지 진달래의 군락지가 이어 진다.
가마봉의 둥그런 전망대는 영취산진달래의 개화를 지휘하고 있고 있는 듯 사방 막힘이 없다. 남해의 망운산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 금오산이 그리고 울 동네의 가야산으로 펼쳐진 산그리메가 바다를 호수로 만들어 놓았다.
가마봉 능선에 분홍빛이 새어 나오고 있으니 화장의 시간을 쬐금이라도 더 주기 위해 정상으로 간다. 바위가 조망을 만들고 거침없이 불어 오는 맞바람에 얼굴이 알싸해 진다. 바위와 진달래꽃과의 어울림이 참 멋찐 곳인데 아쉽긴 하다.
영취산진례봉에 올라 선다. 변덕스런 차가운 봄 날씨가 부유 하는 수증기를 가라앉혀 여수와 광양이 모조리 조망 되고 있어 이곳에서 이런 멋진 뷰를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정상에 홀로 서서 광양만을 조망한다. 율촌공단에는 왜성의 흔적이 있고 남해도에는 왜군을 전멸시켰던 노랑해전의 격전지와 관음포이충무공전물휴허지가 있는데 그 해변들은 이제 산업지가 되어 나라의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산너머 여수 앞바다에 새떼처럼 수많은 배들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말해 준다.
내림길의 계단이 도솔암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이어 받은 침목의 계단이 보폭을 잡아 먹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굳이 계단까지 안 만들어도 될 경사에까지도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계단 지옥이 되어 봉우재에 내려선다.
철쭉군락지에 햇살을 튕겨 내고 있는 도발적인 진달래가 군데군데 박혀 있지만 다가가서 봐줄 정도는 아니다.
임도를 따라 산허리를 잘라 간다. 삼나무의 푸름 속에서 노란 개나리꽃 그리고 간간이 피어 있는 벚꽃으로 이미 봄이 왔것만 바람의 시샘이 만만찮다. 벚꽃은 꽃을 피워내자 마자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 마음이 안타깝고 관목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진달래꽃이 애처롭다.
봄 풀들로 파릇한 임도가 무척이나 생동감이 있다.
임도에서 진달래군락지인 가마봉으로 올라 간다. 작년만해도 진달래군락지에 관목들이 제거되어 보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미미한 개화상태 마냥 주변이 어수선하다. 양지바른 곳이라서 따스함에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만 같은데 또 어떨지는 다음에 확인해 봐야겠다.
진달래 터널은 그늘의 용도다.
가마봉에 다시금 올라 올라 왔던 돌고개로 내려간다. 꽃 향기도 퍼지기 전에 찾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의 유명세를 말해 주고 있다. 땀에 젖어 고달픔이 느껴지는 이들과 계단을 회피하기 위해 돌고개 방향을 이탈하여 골명재로 내려선다.
그래도 임도는 지겹지만 벚꽃 피어나 봄이 참 이쁘다. 돌고개에는 평일인데도 산악회버스까지 있어 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계절을 이끌고 있다.
*** 동면 중인 북한산 *** -.일자 : 2024년 3월 8일 -.코스 : 북한산우이역-만남의광장-하루재-백운암-백운대-북한산우이역(8.6km / 3시간 31분)
어제 관악산 산행을 했다고 오랫동안 기름칠을 안한 로봇의 관절과 같은 삐걱 거림으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니 정신마저 개운치가 못하다. 그래도 상경을 했으면 조상을 뵙듯이 북한산 산행은 다녀와야 만이 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계획한 일정들을 순리 있게 해나갈 것 같다. 새벽부터 출근을 해야 할 아이들을 깨울 수도 없고 하여 부인을 대동하고 국수로 요기를 하고 지하철에 오른다. 어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봉산행에 잘못 올랐다가 북한산우이역을 찾아 가는 여정이 참 한심스럽다.
그래도 일찍 나선 터라서 여유가 있는데 전철 안에서 몇몇 보였던 산행 차림의 사람들 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어째 나 홀로 도로를 타박타박 걸어 썰렁한 우이동만남의 광장을 지나고 우이동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상으로 1km의 거리다.
도로와 나란히 하는 도선사길의 등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 간다. 온화한 날씨 속에 뽀송하게 말린 등로가 마을길처럼 정감 있게 이어진다. 바람 한 점이 없는 적막하기만 한 산길에서 나목 사이로 쏟아져 들어 온 햇살은 따스하여 병아리처럼 스르르 눈이 감겨 들고 있다. 걷는 것 외엔 할게 없는 잠잠한 길에 육모정능선이 잠시 잠깐 길동무가 되어 줄뿐이다.
평일에는 천만시민 모두가 국가경제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지 이곳은 다람쥐조차가 없는데 도선사가 조망 되고 산 아래에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까지 차로 올라 와 버렸으면 이제 남는 거리는 별거 없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백운대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 온 길과 합류 되면서 사람들이 많아졌고 돌길의 지루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위가 그나마 등산로를 유지시켜 주지만 이 돌길을 지겹게만 올라 인수봉이 보이는 하루재의 쉼터에서 인수봉을 올려다 본다. 뭐야 이거, 등로에 하얀 눈이 그대로 얼어 있다. 같은 서울이라도 어제의 관악산과는 아주 딴판인 풍경에서 어찌해야 될지 판단이 안 선다. 지금 막 고향의 벗들과는 울 동네의 매화꽃축제장 사진을 공유했기에 이런 생경스런 풍경은 상상 하지도 못했다.
이곳만 벗어나면 되겠지 하는 아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인수암을 지나고 오름길로 들어서자 이젠 두발로 지탱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얼마 전 동료가 눈 산행에 나섰다가 넘어져서는 허리를 반쯤 접고 다니고 있는 터라서 더욱 경직된다. 하산 하신 분이 아이젠 없이는 불가하다며 구조대에서 안전장구를 대여 해준다고 알려 준다. 한번 다치면 오래 가는 나이가 되어 버렸는데 구세주다. 곁다리로 길쭉길쭉한 신체로 땡칠이처럼 거침이 없어 보이던 외국인들까지도 혜택을 본다. 세계 어느 수도권에서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산이 있어 누구든 자유 산행이 가능하고 또 이런 대여 서비스를 하여 주고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이젠 아이젠을 반납하여야 하기에 어쩔수가 없이 극도로 회피하는 회귀 코스로 바꾸어야 했지만 오후대의 시간은 확보 되었다.
얼음으로 덮인 깔딱고개를 두발로 성큼성큼 걸어 박물관이 된 옛 백운대피소에 올라 선다. 옷에서는 밥솥에서 취사가 완료된 것 마냥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오지만 이곳 까지의 산행에 숙성된 듯한 과정들이 참 기분을 좋게 한다. 이곳도 계절의 변화만은 어쩔수가 없어 처마에서는 빗물처럼 물이 떨어지고 있고 쉼터에서 쉼을 하고 있는 산객들은 어느 산막에서의 분위기다. 점심 먹기 딱 좋은 분위기지만 일단은 정상에 오르는 게 우선이다.
백운대는 성벽에 앞서 눈과 얼음과 들어난 바위로 스스로를 방어 하고 있는데 견고한 성벽의 용암문은 소통의 통로다. 장터 마냥 산객들이 합류되고 이미 올라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핑계거리 만을 찾았던 소심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소식적 스릴을 즐겼던 백운대의 암반도 이젠 점프를 위해 막타호에 올랐던 것처럼 도전이 된다. 폼은 엉거주춤 하고 바위와 스킨십을 해가며 기어서 오르더라도 허세에 인생 걸 필요는 없다. 어제 다이소에서 코팅 장갑을 구매한 게 와이어를 움켜 쥔 손은 시럽지만은 미끌리지가 않아 요긴하다.
백운대에 차가운 바람이 사람들을 낙엽을 쓸 듯 밀어 내어 기다림 없이 정상 인증을 한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하는 지리산과는 달리 외국인들과 공유하는 위 아 더 월드의 산정이다. 인수봉과 망경대가 수호하고 있는 널찍한 암반에는 개와 고양이까지 노니는 산상의 공원화가 되어 있고 한 켠에서 시가지를 관망하며 김밥을 먹는다. 개의 애처로운 눈망울에 고양이의 애교에 김밥을 나눠 먹는 인류애를 실현하고서 하산을 한다.
회색의 도심을 감싸고 있는 수락산과 불암산은 낼 가야 할 곳인데 또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하다.
먼 시야에 대동문으로 이어진 등로가 하얀 눈에 덮여 있어 무섭기도 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와 아이젠을 반납한다.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 왔습니다.
하루재를 넘어서자 몹시도 불던 바람도 따스한 기온에 자취를 감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푹신한 흙길과 포근해진 봄 날씨가 몸을 흐늘거리게 만든다. 짧았던 시간 이였지만 계절의 강력하고 다이내믹함 속에서 환절기산행의 준비성을 느끼게 만든 산행이었다.